그가 왔다.
언제나 웃는 얼굴 그대로...
그는 여자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편안함을 가진 남자다.
어디 한군데 모나지도 않고 흔히 말하는 '척'도 하지 않는 남자다.
배려할 줄도 안다.
함께, 더불어 사는 게 뭔지도 아는 남자다.
그는 사람에 대한 부담감도 주지 않는 남자다.
아마도 그에 대해 그런 평을 내리는 건...
......아마도 내가 그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일까.....
[완연한 가을이네. 그래, 쇼핑 뭐 했소?]
앉자마자 그가 물었다.
[오늘도 그 ...미혜라는 친구?]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친구군. 나라면 노처녀 친구대신 남편이랑 애들이랑 놀겠구만]
그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농담했고 그녀는 다시 웃었다.
[제가 빚이 많죠. 그 친구가 없었음 전 아마도.....!]
......비참하게 무너져 내렸겠죠......
차마 재희는 그 뒷말을 뱉아내지 못했다.
그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무슨 말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재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음으로 얼버무렸다.그리고 화제를 돌렸다.
[토요일, 일요일은 바쁘지 않나요? 일부러 시간 내지 않아도 돼요]
[하늘이 무너져도 당신 만날 시간은 항상 있어]
종업원이 왔다.
커피를 시켰다.
그는 밀크, 재희는 블랙.
[당신은 왜 블랙을 좋아하지?]
참 많이도 듣는 말이다.
[그냥요...깔끔하잖아요]
쉽게 그녀가 답했다.
그가 웃었다.
[그거 알어? 당신은 나를 전적으로 믿고 있다는 인상을 줘]
맞는 말이다. 재희는 그에게 믿음이 갔다.
[그러나 당신 자신은 내보이지 않아]
뜨끔했다. 그것도 사실이다.
그가 살짝 그녀의 볼을 쓸었다.
[긴장하지마. 내가 그랬지? 난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고...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난 당신에 대해 많이 알아]
이상했다. 가끔 그는 그녀에게 알쏭달쏭한 말을 한번씩 내비쳤다.
그럴때의 그의 눈빛은 연민에 젖어 있었다.
단지 ...느낌 탓인가?
[너무 자신하지마요. 저에 대해 다 알게 되면 당신은 아마..크게 실망할 거예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닐지도 모르고...]
[내가 생각하는 여자는 어떤 여자일 것 같소?]
부드럽게 그가 그녀의 말을 막았다.
[왜 그렇게 자신 없어 하는거요? 내게 무언가 얘기하고픈게 있다는 거 알아요. 얘기...하고 싶소? ...지금은 아니지? 그렇다면 묻지 않을 거요. 그러니 그런 슬픈 표정 짓지 마. 웃어요. 당신에겐 그 모습이 제일 근사하니깐]
얘기하고 싶었다.
아니 얘기하기 싫기도 했다.
어쩌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얘기하기 싫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웠다.
비밀을 안고 있다는 건 무거운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과 같다.
더 늦기 전에...!
[어디 가보고 싶은 곳 있소? 오늘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리다]
그가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