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를 만나고 온 날은 꼭 회오리 바람속에 들어 갔다 나온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재희는 혼란스러웠다.
24시간.
무슨 시한부 인생도 아니고 24시간을 준댄다.
그렇게 아침이 밝았다.
재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청소도 밥도...
그냥 커피 한 잔 들고 소파에 앉아 밖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꼭 죽을 날 받아 놓은 사람처럼 말이다.
재깍 재깍...
시간 가는 소리에 재희의 혼란은 더욱 엉킨 실타래가 되어 갔다.
밤새도록 결심은 수십번도 더 바뀌고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했음해도 불구하고 잠은 오지 않았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에야 한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왔다.
밉지도 곱지도 않은...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의 심장이 쿵 했다.
몇 잔 째 인지도 모르는 커피 잔을 든 손이 떨리고 있었다.
러브 불루....
그 음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빨리 받아 보세요...하는 듯.
그때까지도 그녀의 마음은 반반이었다.
잠잠해졌다 다시 울렸다.
이름없음.
이라는 문자 아래 번호가 찍혔다.
[받지 않았음 찾아 가려고 했소]
경쾌하고 활기찬 그의 음성이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잘 잤느냐고 묻지 않을 거요. 당신도 나처럼 잠을 설쳤기를 바래요]
잠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재희는 알수 있었다.
그 웃음속에 녹아나는 긴장된 분위기를...
어떤 답을 줄지 그 또한 밤새도록 고민했을까...?
재희는 눈을 들었다.
창밖의 햇살에 눈이 부셨다.
[좋은 오후지 않소? 어떻소, 나랑 드라이브나 합시다]
밝은 음성이지만 역시 긴장이 묻어나고 있었다.
미소가 스며져 나왔다.
그래,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은 오늘이야...
[전...강은 별론데..]
그녀의 음성이 약간 떨렸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그가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는 소리를 희미하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1시간 후에 집앞에 가겠소. 그 때 봅시다]
조심스레 재희는 휴대폰을 닫았다.
홀가분했다.
오늘만 생각하자...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자...
다소 씁쓰레한 미소를 지으며 재희는 욕실로 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