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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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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미소


BY 데미안 2004-09-18

 

공 재희.

그녀는 오후 1시 30분에 <무랑 루즈>앞에 섰다.

잠시 망설여졌다. 굳이 따라 오겠다던 미혜를 뿌리친 게 후회 되기도 했으나 그녀는 걸음을 뗐다.

내 물건 내가 찾으러 오는데 뭐가 무섭다고...

또르르...문을 열자 어제와 다른 웨이터가 인사를 건넸다. 가벼이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재희는 조심스레 두리번 거렸다.

잔잔한 음악만이 가게 안을 흐르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혹시...누군가가 장난을 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저기, 실례지만...!]

[오셨습니까?]

굵직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한 남자가 계단을 내려 오고 있었다.

말끔한 정장 차림이 남자를 강렬하게 보이게끔 만들어 주고 있었다.

남자를 그녀를 보더니 한번 부드럽게 웃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요]

남자를 자리를 권했고 재희는 어색하게 쭈삣하며 앉았다.

[커피, 괜찮습니까?]

[네에, 하지만......!]

[미스터 최!]

남자는 거침이 없었다.  어림잡아 서른 다섯은 넘어 보일 것 같았고 표정이나 말투에는 성공한 자의 그 여유로움이 묻어 있었다.

남자가 시선을 들어 똑바로 재희를 보는 바람에 재희는 화들짝 놀랐다.

남자가 소리내어 웃었다.

[우선 제 소개부터 할까요? 이름은 이 진성입니다. 나이는 서른 여섯이고 아직 미혼이지요]

하면서 남자는 다시 또 웃었다.

 

따스한 커피가 앞에 놓였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밀크 커피는 뜨거울때가 제맛이고 블랙 커피는 적당히 식었을때가 제일 맛있다고...재희씨는 어떻습니까?]

재희는 놀랬다. 딱 자신의 스타일이 아닌가.

[전 뭐 그냥...]

재희는 그냥 얼버무렸다. 자신 또한 그렇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참, 점심은 하셨습니까?]

[네에? 아 예, 아직요...아니, 네에...]

재희의 말투에 남자는 웃었다. 재미있다는 듯...

그 모습을 보던 재희 또한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자신의 모습이 참 바보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제가 무섭습니까?저 놈이 어떤 놈일까...하고 머리속이 복잡한 겁니까?]

[아뇨...사장님의 사람 대하는 태도가 너무...격식이 없고 자연스러워서 제가 좀 ...그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쉽지 않죠]

남자는 부드럽게 동의했다.

[저도 사람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저한테 재희씨는 결코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서요]

[......무슨?]

그가 웃었다.

[잠깐 절 따라 오시겠습니까?]

남자가 일어서자 재희는 잠시 주저했으나 곧 남자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 갔다.

[여기는 이 곳의 사무실이기도 하고 저의 휴식 공간이기도 하지요. 보십시요]

재희는 남자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한 쪽 벽에 걸린 사진을 보는 순간 재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사진은...!]

[이곳을 인수할 때 벽에 걸려 있었는데 버리기엔 왠지...아마 재희씨의 웃고 있는 모습때문이었을 겁니다.]

[저건...고3때 미혜 생일날 이곳에서 찍었던 것인데...그때 사장님이 저희들한테 참 잘해주셨었죠. 그날도 샴페인을 공짜로 주시면서 기념으로 사진까지 찍어 주셨는데 아마...그 후론 이곳에 오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액자에 넣어서까지...]

[아마 그 분도 버리기가 아까웠을 겁니다. 재희씨도 그렇고 친구분들도 그렇고 저런 미소는 좀처럼 보기가 힘들지요.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절로 좋아집니다.  그 주인공을 이렇게 만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남자는 다시금 기분 좋은 듯 웃었고 재희 또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저 사진, 제가 가져가면 안될까요?]

[그건 안됩니다. 저 사진은 이곳의 수호천삽니다. 억만금을 준데도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설마 <무랑 루즈>가 문을 닫길 원하시는 건 아니겠죠?]

남자의 깊은 웃음을 지으며 재희를 밖으로 떠밀었다.

 

점심을 사겠다는 재희의 제안에 남자는 그녀를 주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남자는 손수 소매를 걷었다.

[제가 오므라이스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만드는데 같이 드시겠습니까?]

스스럼없는 남자의 태도에 재희는 혀를 내둘렀다.

휴대폰이 울렸다. 미혜였다.

-어디야? 아직 거기야?-

[음...]

-뭐? 너 혹시 잘못된 거 아니니? 혹시 공갈사기범들 아니야? 너 잡혔니? 그런거냐?-

[오버하지 마라 응? 아무일 없어. 점심 먹고 갈테니깐 그런줄 알어. 끊을께]

남자는 재희의 통화 내용에 싱긋이 웃기만 했다.

 

식사가 끝나자 그는 지갑을 재희에게 돌려 주었다.

[정말 감사해요. 지갑 찾아주신 답례로 점심을 살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신세만 졌어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죠?]

[갚고 싶으세요?]

[네?]

[그럼 다음에 재희씨가 점심을 사세요. 어떻습니까?]

[.......!]

선뜻 재희가 답을 하지 않자 남자는 웃었다.

[토요일 12시. 우리 만납시다. 장소는 재희씨가 정하고. 어떻습니까?]

 

[그래서 네에! 네에! 하고 대답했단 말이지?]

사무실로 돌아온 재희는 미혜에게 보고아닌 보고를 했다.

[아니 그 남자를 또 만나겠다는 소리야 지금?]

[그럼 그냥 입을 싹. 닦어?]

[그 남자 혹시 너한테 딴 맘 있는 거 아냐? 사진 속의 네 모습 보며 군침 흘렸다며?]

[넌 말을 해도! 그 속엔 너도 있고 진희도 있어. 코흘리게 고딩들한테 군침은 무슨!  그리고 그게 언제적 사진이니?]

[얘는. 고딩은 여자 아니니? 내가 보기엔 그 남자......!]

[됏네요, 아줌마. 지갑 돌려 준것만도 감지덕지야. 점심한끼 사는데 뭔 의심이 그리도 많으셔! 가서 일이나 해]

재희는 미혜를 밀다시피 하고는 컴퓨터를 켰다.

그러나 자신이 선뜻 그 남자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믿기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알수 없는 일이었다.

남자는 사람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었다.

리드쉽이라고 해야 하나...묘하게 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와 있던 그 순간이 유쾌했었다. 지루하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그런 느낌을 가져 본 지가 얼마만인지......잊고 지냈던 감정들이었다.

 

재희는 커피를 탔다.

손봐야할 원고를 손에 들었다.

그 전에 재희는 마우스를 움직여 오즈를 열었다.

세이지 타운...

하늘 바람이 들어와 있었고 나르시스왕도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아이디가 하늘 바람옆에 있었다.

*별 무지개*.....

노랑 머리에 파란 줄무늬의 짧은 스커트에 위에는 브레지어만 하고 있었다.

과감한 의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