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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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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즐기는 법을 배운다


BY 데미안 2004-08-27

 

이별이 쉬울까

만남이 쉬울까...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 만나는, 그 만남 자체가 참으로 어려울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이별을 견뎌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별이 쉽다...

만남보다 이별이 쉽다...는  하늘 바람의 그 말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재희는 자신의 이별을 생각했다.

헤어지잔 말도, 이렇다할 변명도 없었다.

재희가 그를 가장 필요로 했을 때 홀연히, 갑작스레, 연락조차 없이 그녀에게서 사라져 버린 그...그 남자.

그래서 재희는 이별이 쉽다는 하늘 바람의 말에 공감하는 것이다.

재희도 이별이 쉬웠다. 아주...

 

재희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툭툭 쳤다.

요즘 들어 자신이 많이 약해지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오랜세월 꽁꽁 묶어 둔 채 물도 음식도 주지 않았던 과거의 한 토막. 그 놈이 뭔 힘으로 삐질삐질 기어나와 파고 드는지...재희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재희는 시내로 나왔다.

자신의 애마인 빨간 프라이드를 몰고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잘 어울리는 청바지와 검정색 스판 티를 입고 말이다.

그리고 혼자다.

단짝 친구 미혜는, 주말은 꼼짝없이 남편과 애들에게 저당잡히는 행복한 유부녀인 까닭에 나올수가 없댄다.

 

-애인이 있지만 난 혼자 다니는 걸 즐겨-

언제든가 하늘바람이 한 말이다.

-혼자 공원 등산로를 걸으면서 바람소리, 새소리, 바람의 향기, 물소리, 깊은 숲의 향기,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대화...그 모든 걸 혼자 느끼면서 걷다보면 하루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거든-

재희는 그래 본 적이 없다. 산길을 걸어 본 적도 없고 파란 나뭇잎 사이로 하늘을 우러러 본 적도 없다.

-그리고 쇼핑도 가끔 혼자 다녀. 백화점을 한바키 돌아. 딱히 뭘 사려는 건 아니고...이런 말 한다고 해서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줘. 난 아가씨들을 구경 해. 입고 있는 옷, 화장한 모습, 머리 스타일 등등...형형색색 이잖우. 똑같은 건 절대 없거든. 난 그런 걸 보고  있으면 그냥 즐거워. 저 여잔 저 옷이 어울린다. 너무 아니다. 화장도 잘 받는다. 오늘은 영 아니네. 저 색깔보다 이 색깔이 나은데...머리도 금방 했구나. 할 때가 됐구나. 저 여잔 기분이 좋구나.  남자 친구가 있구나, 없구나 등등...혼자 추리하면서 결론내리고...그러면 시간이 언제 가는지 몰라.  그냥 즐거워. 그건 대형 쇼핑몰도 마찬가지고...

또 있어. 길가에 서서 떡볶기랑 어묵을 먹으면서 음악을 듣지. 입도 즐겁고 귀도 즐겁고...

난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어. 마지막으로 극장가가 내려다 보이는 조용한 커피숍 창가에 자리라고 앉아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하지. 세상에 사람 구경만큼 흥미로운 게 없거든. 시간의 흐름도 잊고 내 존재도 잊어.

머리가 아주 복잡할 땐 차를 몰고 바닷가를 한바퀴 휙 돌다 오기도 해. 그럼 개운 해.

하지만 극장엔 혼자 안가. 영화를 혼자 보게 되면 좋은 기분마져도 나락으로 곤두박질 치거든. 내가 애인이 필요한 이유도 그거야.ㅎㅎㅎㅎㅎ-

하늘바람의 그 말이 있고 후 재희는 혼자 영화 보는 걸 관뒀다. 대신 그녀는 음료수를 손에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아이 쇼핑을 즐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설프고 쑥스럽고...그랬으나  시간이 지나자 제법 그녀는 우아하게 즐기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윈도우 너머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사기도 하고 거리 카페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것이 솔솔찮게 재미 있다는 걸 재희는 이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재희는 레코드 가게에 들려 흘러간 팝송을 찾기 시작한다.

마치 흘러간 시간...청춘...사랑...추억...그런걸 대신하기라도 하듯 재희는 옛노래에 빠져 들었다.

저니의 open arms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

비틀즈의 hey jude

존 레논의 imagine

lady in red right here waiting more than words the rose knife because l love you......

 

밤이다.

재희는 방에서 내려와 사무실에 앉았다. 블라인드 사이로 바깥의 네온사인이 스며 들어 오고 간간이 자동차 소리며 음악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는 01:30분이다.

신디 로퍼의 true color가 애잔하게 흘러 나온다.

컴퓨터를 켰다. 오즈를 누른다.

감각의 지대 - 세이지 타운으로 들어 간다.

나르시스와 애로숙녀, 하늘 바람이 들어와 있었다.

바다를 헤엄쳐 그들에게로 다가가는 재희는 재희가 아니라 얼음공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