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나라...
환상의 나라 오즈... ...
무슨 채팅방이냐고 하겠지만 아니다.
공 재희는 한 번도 채팅이란 걸 해 본 적이 없었다.
할줄 몰라서가 아니라 겁이 나서, 그녀 자신을 믿을수가 없어서 처음부터 시도도 하지 않는다.
외로운 사람에게 있어 사람은 가장 큰 위안이 될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공 재희는 잘 안다.
그래서 채팅은 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만난 누군가와 정 쌓는 게 겁이 나기 때문이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오즈는 낚시 하는 곳이다.
인터넷 낚시방이다.
오즈의 공간은 무한정이다.
오즈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낚시를 한다.
초보에서부터 기사 남작 백작...등등...
얼마나 고기를 많이 잡느냐에 따라 등급이 주어지고 레벨이 오른다.
고기 잡아서 판 돈으로 옷도 사고 신발, 머리 악세사리, 집, 가구 등등...
뭐든지 살 수가 있다.
오즈의 나라에서는 애인을 만들수도 있고 그래서 결혼도 할 수 있고 이혼도 할 수 있다.
친구를 사귈수도 있고 언니도 만들 수 있고 동생도 만들 수 있다.
어울려 함께 낚시를 할 수도 있고 그게 싫으면 혼자 조용히 낚시를 할 수도 있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고 수많은 사람이 있어도 결코 시끄럽지 않는 곳.
공주가 될 수도 있고 시녀가 될 수도 있는 곳.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거지가 될 수도 있는 곳.
그 곳이 오즈다.
공 재희는 작은 출판사에 다닌다.
그 곳에서 그녀는 원고를 교정하는 일을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의 큰 외삼촌이 경영하는 회사중 가장 작은 곳이다.
직원이라고 해봤자 공 재희를 포함해 네 명이다.
공 재희가 그들과 함께 일을 한 지가 벌써 십년이다.
일이 없을 때 그들은 함께 앉아서 비디오를 보거나 책을 놓고 토론을 하거나 인터넷 고스톱을 치거나 하면서 지낸다.
고스톱에 영 재미를 붙이지 못한 공 재희는 인터넷이란 바다를 이리저리 표류했고 그러다 우연찮게 찾게 된 곳이 오즈였다.
환상의 나라 오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라는 곳을.
호기심으로 들어간 곳이 이제는 공 재희에겐 없어서는 안 될 곳이 되어 가고 있었다.
-공주야. 레벨 업 ㅊ ㅋ(축하한다)-
-ㅎㅎ ㄳ(감사한다)-
-옷 한벌 보낸다. 확인-
공 재희는 씨익 웃으며 가방안을 들여다본다.
빨간 탱크탑과 빨간색 롱스커트. 그리고 빨간 슬리퍼...
섹시하다. 환상 그 자체다. 공 재희의 웃음이 더욱 커졌다.
공 재희는 마우스를 움직여 얼른 그 옷으로 갈아 입었다.
-예쁘다. 다시 ㄳ-
-ㅎㅎㅎㅎ...기달려 도 있다-
공 재희는 웃는다. 무엇이 올 것인지 알기에...
잠시후 그녀에게로 장미꽃이 무한정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군. 또 시작이야. 꽃밭에 묻히다못해 숨막혀 죽겠다야.]
옆자리의 미혜가 들여다보며 한 마디한다.
[이게 뭐가 재밌다고 하루종일이냐? 니들은 지겹지도 않어? 고스톱을 하루종일 했음 했지 이건 한 시간도 못하겠두만, 참 대단들하셔.]
[성격차이다]
공 재희는 친구인 미혜에게 입을 삐죽여 보였다. 미혜는 한 한달정도 하더니 따분하다며 관뒀다. 그 한달동안에도 고기잡을 생각은 않고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남자들 구경하느라 바빴다. 그것도 시들해지자 미혜는 관두고 다시 고스톱에 빠져들었다.
[니들 그러고 있은지 1년이다. 1년. 근데도 아직 진전이 없냐? 이름이 뭔지, 뭐하는 인간인지 궁금하지도 않냐?]
미혜가 쫑알대는 사이 입질이 왔다.
몇초후 공 재희는 잉어를 낚아 올렸다.
[이 재미로 한다. ]
재희는 그러면서 낚시를 다시 던졌다.
그러는 동안 장미선물이 마감되었다.
-에구 팔이야-
카제짱이 엄살아닌 엄살을 했고 재희는 웃음을 날려 보낸다.
[저 인간은 저 안에선 멋있어 보이는데 실제는 어떨까?]
미혜가 의자를 끌고와 옆에 앉으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것이 오즈안의 카제짱이란 인물은 그야말로 멋있다.
검은 긴 머리를 묶어 헤어 밴드를 둘렀으며 검은 쫄티에 검은 쫄반바지를 입고 검은 색 슬리퍼를 신고 있다.
처음 오즈상에서 카제짱을 봤을 때 재희는 그가 입고 있는 검은색 옷에 반했었다.
재희는 검은 색 옷을 입고 있는 남자들에게 항상 약했다.
카제짱이 재희의 눈길을 끈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는 재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재희에게 친절했다.
옷이 없으면 조건없이 옷을 선물해주었고 비싼 고기도 나눠 주었으며 낚시하는 법, 아이템 읽는 법, 대화하는 법. 전화하는 법... 오즈상에서 행해지는 모든 규칙과 방법을 가르쳐준 인물이 카제짱이다.
[재희 너 안 궁금해?]
솔직히 궁금했다. 묻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재희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면 왠지 그와의 만남이 끝날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카제짱은 다정하고 친절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그저 느낌일수도 있겠지만 어느정도 선을 긋고 여자를 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이상을 넘어오면 과감하게 그 만남에 종지부를 찍을 것 같은....
그래서 재희는 감히 그 무언가를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그가 편하고 좋았다.
[...안 궁금해.]
-공주야. 너 있는 그 곳에도 비가 와?-
-음...빗방울에 나뭇잎이 톡톡 튕겨 오르는 모습이 아름답네-
-ㅎㅎㅎ...언제나 넌 시적이다. 그 모습이 상상이 가네. 비 내리는 거리, 비 내리는 날 커피...좋아한다고 했지?-
-기억해줘서 고마워-
[아주 놀고들 있어요, 놀고들...니들이 무슨 십대냐? 쟤 혹시 십대 아니냐? 내가 함 물어볼까?]
미혜가 컴퓨터 자판기에 손을 대자 재희는 얼른 탁. 쳤다.
[니 자리로 가서 고스톱이나 열심히 치셔]
[야야. 가지말래도 간다. 근데 저 남자 하는 양 보면 어떤 남자 생각나는데 그게 누군지 모르겠단 말야...]
제 자리로 가면서 던진 미혜의 말에 순간 재희는 뜨끔했다.
어떤 남자......
비가 내리면 찾아오는 어떤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