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빗줄기가 제법 굵은 게 시원스런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공 재희는 틀어올린 머리위에 쥐고 있던 연필을 대충 꽂고는 배란다 창가에 섰다.
갑작스런 비라서 그런지 우산을 받쳐 들고 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나같이 뛰느라 바쁘고 피할 곳을 찾느라 바쁘다.
공 재희는 그런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기다렸다는 듯 우산을 펼치는 정돈된 이미지보단
우왕좌왕 하는 그 모습이 인간적이고 살아 있는 냄새가 나서 좋다.
공 재희는 미소 짓는다.
학창시절 참 많이도 비를 맞고 다녔다.
무작정 비를 맞으면서도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재잘재잘...깔깔깔...낄낄낄...
다리 아픈것도 잊은 채 어울려서 그렇게 비를 맞고 다녔다.
그래서인가 공 재희에겐 비에 관한 추억이 많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간에 말이다.
공 재희는 다시 미소 짓는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씁쓰레하게......
첫사랑도...
공 재희의 첫 사랑도 그렇게 비가 내리던 날 찾아 왔었다.
공 재희는 고개를 저었다.
스물스물 기어 오르는 옛 생각을 그녀는 재빨리 꾹꾹 눌러 앉혔다.
기억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딩동 딩동... 딩동 딩동...
컴퓨터에서 흘러 나오는 신호음이다.
공 재희는 재빨리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이다.
즐거운 웃음이 말이다.
공 재희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공주 안녕?-
상대방의 인사말이다.
-카제님 안녕? 오늘은 일찍이네여?-
공 재희 닉네임은 *얼음공주*
상대의 닉네임은 *카제짱*이다.
그들은 오즈에서 만났다.
얼굴도 모르고
서로의 이름도 모른다.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서로 묻지도 않았고 굳이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단지 하나 확실한 건 남자가 여자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연인이다.
오즈에서 만난 오즈의 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