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민서는 힘겹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서있다. 그녀 소유의 건물 리모델링작업을 맡고 있는 인테리어 업자와 미팅을 하러 가는 길이다. 이런일에는 전혀 문외한인 그녀로서는 그들을 만나야 하는것만으도 부담스런 일이다.엘리베이터에 오르며 작은 한숨을 내쉰다.
'처음부터 시작하는게 아니었어...'
2년전 교통사고로 남편과 네살박이 아들을 떠나보내기 전에는, 그녀에게 있어서 삶이란 행복 그 자체였다. 그녀의 남편은 좀 무뚝뚝하긴해도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전문직이어서 경제력도 있는데다 무엇보다 아들 지원과 그녀를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하는 믿음직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과 하루가 다르게 말이 늘고, 토실하게 살이 오르는 재롱둥이 아들 지원과의 일상은 언제나 기쁨이었다.그런 그녀에게 2년전의 사고는,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도 남는것이었다.지금도,평생 만날일이 없을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긴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며, 슬쩍 손목시계를 들여다 봤다. 한시간 사십분...
"잘 알았어요. 이 서류들 다시 읽어보고 결정해서 연락드릴께요."
무슨 말인지,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일단 결정을 보류하기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눈앞에 왠 커다란 남자가 떡 버티고 서있었다. 청바지에 흰색 폴로셔츠를 입고, 레이벤 선글라스에 입가에는 낯익은 미소를 머금고서...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익숙한 페라리 향수의 잔향에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역시 누나였구나! 근데 왜이렇게 말랐냐? 못알아 볼뻔했잖아!"
"어머, 너..."
"그래 너, 뭐? 나한테도 연락 끊고 이렇게 삐쩍 말라가지구는, 보기좋게 살이라도 좀 쪄있든지 할것이지. 이게 뭐냐?"
언제나 그랬듯이 경민이는 이렇게 투덜거리는 말투로 그녀를 먼저 걱정부터 해주었다.
"누나 안바쁘지? 아니, 바뻐도 그냥 못가."
"......."
2년전 사고 이후로, 그녀는 모든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다시피 했었다. 할수만 있다면, 그전의 기억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왔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