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애의 모습은 가끔씩 케이블 티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잘 나가는 남편 서민호에 비하면 나미애는 빛을 보지 못하는 배우였다.
남편의 후광으로 그나마 교양프로에 얼굴을 내밀거나 의상 카탈로그를 찍는 일이 고작이었다.
자신과 달리 갈수록 인기가 상승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나미애의 심정이 편하지만은 않았으리라는 추측을 하며 같은 여자로서 나미애가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점점 귀가 시간이 늦어지던 나미애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허망한 감정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불안정한 시간들은 자연스레 흘러갔고 서연은 차츰 평정을 찾아갔다.
마음 아프지 않게 그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서민호와 나미애 소식을 듣게 되었다.
파경에 이른 서민호와 나미애가 이혼했다는......
그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지희의 까만 눈망울이었다.
지금쯤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텐데. 지희를 생각하자 가슴이 아려왔고 서민호의 쓸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스포츠 신문과 여성잡지마다 두 사람의 기사를 앞다투어 다루고 있었지만 서연은 기사를 읽지 않았다.
두 사람이 왜 파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가슴 한켠이 짜안하게 아파올 뿐이었다.
잘 나가던 영화배우 서민호는 이혼한 뒤로 한동안 브라운관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고 팬들의 기억에서 빠르게 잊혀져 갔다.
국지적으로 쏟아 부었던 게릴라성 호우도 다 물러가고 기승을 부리던 불볕더위도 한풀 꺾인 듯 어느새 여름은 뒤로 물러가고 있었다.
자기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한 딸아이는 엄마보다 핸드폰이 더 좋은지 손에서 놓질 않았고 성실하지만 회사일로 늘 쫓기듯 일에 묻혀 사는 남편은 얼굴 보기가 더 힘들어졌다.
한바탕 모래 바람이 휩쓸고 간 마음자리는 아련한 쓰라림으로 남아있지만
시작도 끝도 없이 찾아왔던 지난 여름날의 사랑은 사막과도 같이 황량했던 서연의 일상에 아름다운 신기루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