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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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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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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화음1


BY 주 일 향 2004-06-17

 

나미애는 현관으로 들어서며 베이비시터를 찾았다. 그러나 거실에 켜진 텔레비전만 왁자하게 떠들 뿐 인기척이 없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곧장 지희 방문을 연 미애는 침대 위에 곤히 잠든 지희를 확인하고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자는 지희의 볼에 살며시 입을 맞추자 평화롭게 잠든 지희의 고른 숨소리가 느껴졌다.

방문을 닫고 나온 미애는 베이비시터를 찾기 위해 집안을 뒤졌지만 어디에도 아줌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기다리다 집에 가버린 것일까?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눈에 보이지 않는 베이비시터의 무책임한 태도에 화가 났다.

씩씩거리며 이층으로 올라가 화장을 지우고 샤워를 하며 마음을 가라앉혀 보려고 했지만 쉽사리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설사 시간을 어겼다해도 보호자가 오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를 방치한 채 돌아갔다면 분명 베이비시터의 과실이 훨씬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끝낸 그녀는 전화 수화기를 들었지만 다시 내려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영화배우가 아닌 평범한 여자였다면 아마 당장 무책임한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따졌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감정적으로 행동해도 별 상관없는 평범한 주부가 아니라 사람들 시선을 의식해야하는 공인이라는 생각이 불쑥 머리를 스쳤고, 전화를 걸기엔 너무 늦은 시간임을 확인하고는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나 자정이 훨씬 지난 시계를 보자 다시 화가 치밀었다.

‘이 인간은 오늘도 회식있나? 대체 결혼은 뭣하러 한거지?’ 미애는 마음속으로 대뇌이며 남편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생기발랄한 신인 탤런트들 틈에서 지내니 세월가는 줄 모르겠지.

미애는 외로운 가슴을 쓸어내리며 울컥 치미는 감정을 삼키듯 마른 침을 삼켰다.

그 때.현관문이 열리며 남편이 들어왔다.

미애는 얼른 표정을 바꾸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남편을 맞이했다.

- 당신 지금 오는 거야?

- 미애 너 약속좀 지켜라.

대뜸 큰소리를 내는 남편에게 불쾌감을 애써 감추며 다시 물었다.

- 무슨 소리야?

- 예약시간이 7시라며? 지금이 7시니?

미애는 베이비시터가 사라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당신이 와서 베이비시터 아줌마 갔구나?

  중요한 회식이 생기는 바람에 좀 늦었어.

- 좀 늦었다고?

- 늦을 수도 있지 뭘 그렇게 화를 내? 일하다 보니 그렇게 된걸 가지고...

  참, 아줌마 돈을 줘서 보냈어?

- 집에 와 보니 그 분 기다리다 지쳐 잠들어 있더라 얼마나 놀랬는지 아니?

- 그랬구나. 호호.

- 아줌마도 놀랬겠다.그치?

- 그래, 깜짝 놀래서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더라.

_ 그랬어? 호호.

미애는 베이비시터의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왠지 통쾌한 기분이 들어 큰소리로 웃었다.

- 웃음이 나오니?

-근데 당신은 지금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설마 아줌마 바래다 주고 오진 않았을테고.

_ 지금시간이면 버스 없다는 것 몰라? .그래서 바래다 주고 왔어.

- 뭐라구? 당신이 직접 바래다 줬다구?

순간 나미애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졌다.

_ 그럼 어떡하니? 혼자 가시게 해?

- 택시비나 좀 주면 될것을 직접 바래다 줬다구? 기가막혀서.

- 뭐? 기가막혀? 너 참 못됐구나.

- 내가 못됐다구?

나미애는 코웃음을 치며 이층으로 휙 올라가 버렸다.

 

서민호는 어이가 없었다. 자기만 생각하는 미애가 오늘따라 더더욱 철이 없어 보였다.

문득 베이비시터의 얼굴이 떠올랐다. 처음 봤을 때 어디선가 본 듯한 평범한 얼굴이라 생각했는데 몇 번 대화를 나누며 맑은 눈빛을 가졌구나 생각했고 문득 그녀의 나이가 궁금해졌었다. 어림잡아 자신보다 서너살 정도 많을거라는 생각을 했고 베이비시터라는 직업은 왠지 순수하고 착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오늘 밤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면서 알게 된 사실은 겁이 무척 많은 귀여운 여자라는 것이었다.

지희를 돌보고 있을 때의 그녀는 자상한 누님처럼 편안하게 느껴졌고 지희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 짬짬히 책을 읽는 그녀의 옆모습이 무척 이쁘다고 생각했었다.

간간히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된 것은 그녀 앞에선 무슨 말이든 거침없이 마음에서 쏟아져 나온다는 점이었다. 깊숙이 숨어있던 말들이 술술 입술을 통해 흘러나오는 게 너무 신기했었다. 그녀는 마음의 빗장을 쉽게 여는 신비한 재주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잔뜩 겁먹은 얼굴로 자신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던 그녀의 모습은 민호의 잠자던 보호본능을 강렬하게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