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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귀가


BY 주 일 향 2004-06-16

 

나미애는 귀가시간이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7시 까지 예약되어 있었지만, 나미애는 전화 한 통화 없이 두시간 이상을 넘기기 일쑤였다.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고 무작정 늦는 나미애가 불쾌하게 느껴졌지만 서연은 밖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무례한 나미애 보다는 종일 같이 지내는 지희가 너무 순하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엄마 없이 자신과 지내야하는 지희가 가엾게 느껴질 때도 있었기 때문에 서연은 지희에게 따뜻한 사랑을 주려고 정성껏 돌보았다.

그러나 서연을 대하는 나미애의 태도는 점점 나빠졌다. 나이로 봐도 한참 위인 서연에게 허물없이 대한다기보다는 막 대한다는 느낌이 들때가 자주 있었다.

사치스럽고 화려해 보이는 나미애의 성격은 외모와 너무 달랐다.

일급으로 받는 돈을 줄 때도 잔돈으로 바꿔주기 보다는 수표를 내 놓으며 거스름돈이 없다고 하면 서연에게 가게에 가서 잔돈을 바꿔오라고 시키는 것은 예사였고, 서연이 있거나 말거나 혼자서 밥을 시켜 먹곤 했다.

서연은 차츰 나미애의 이기적인 면이 노출될 때마다 자존심이 상했다.

서연은 나미애의 당돌함에 점점 불만이 쌓여갔다.

지희를 목욕시키고 우유를 먹인 뒤. 잠을 재우고 집에 갈 준비를 했다.

나미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서연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기는 여전히 꺼져 있었다.

나미애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나미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외진 곳에 있는데다 차편도 뜸한 동네라서 서연은 점점 마음이 조급해졌다.

넓은 집에 잠든 아기와 덜렁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기도 했다.

넓은 통유리로 바라다보이는 정원은 어느새 어둠에 싸이고 바람소리에 창문이 덜컹거렸다.

서연은 텔레비전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무서움을 쫒으며 나미애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다.

밤늦게 귀가한 서민호는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이 환했다. 민호는 소파에 쪼그린 채 자고 있는 베이비시터 아줌마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랬다.

지금 이 시간까지 집에 있는 아줌마를 보자마자 민호는 아내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민호는 시간을 확인했다. 시계 바늘은 열한 시를 향하고 있었다.

- 아주머니,

깊이 잠이 들었는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민호는 베이비시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서연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고, 동시에 시계를 보았다.

- 어머나 벌써 열한시네.

- 아직 안 왔어요?

서연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방을 챙겨들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왔다. 어둠에 싸인 골목을 막 벗어나려는데, 뒤에서 환한 불빛이 비쳤다.

뒤를 돌아보니 자동차 한 대가 좁은 길을 서둘러 빠져 나오고 있었다.

옆으로 비켜 서려는데 창문이 열리며 서민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타세요.

-녜에? 

-빨리 타세요. 지금 시간에 버스 타기 힘들어요.

서연은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민호의 차에 올랐다,

-지희는 어떡 하구요.

-지희 걱정 마세요. 밤에 잠들면 오래 자는 아이라 괜찮을 겁니다.

-그래두...

서연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갈 일이 꿈만 같았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홀로 집에서 잠든 지희가 걱정이 되었다.

- 집이 어느 쪽이세요?

_ 시내 쪽으로 가시면 되요.

- 죄송해요, 미애가 시간 잘 안 지키죠?

운전하는 도중 간간히 서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을 건네는 서민호가 고맙게 느껴졌다.

평소 브라운관을 통해서 보아왔던 개성이 강한 마스크와 달리 섬세하고 지적이며 따스하고 매력이 넘치는 남자였다.

서연은 민호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다행히 밤이 늦은 시간이라 도로는 막힘이 없이 잘 뚫렸고 차는 거침없이 달렸다.

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둠속을 빠져나오며 두려움에 떨었는데, 매력있는 영화배우 서민호 옆자리에 앉아 서민호가 자신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현실로 와 닿지 않고 꼭 꿈을 꾸고 있는 듯 몽롱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달콤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아기를 돌봐주는 아줌마에 불과한 자신을 걱정해주고 배려해주는 서민호의 따뜻한 마음이 서연의 마음을 감동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