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애는 일주일에 삼일동안 고정적으로 아기를 맡겼다.
깔끔한 성격이 맘에 들었는지 서연에게 편하고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지희 역시 서연을 잘 따랐고, 아기 보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서연은 방문할 때 늘 10분 정도 여유 있게 도착하는 습관이 있었다.
베이비시터라는 직업은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는 규칙도 있었지만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서연의 평소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낮시간에 방문하는 나미애의 집은 외진 곳에 있어서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한적한 소로를 걸어가다보면 내리쬐는 햇살로인해 땀이 흘러내렸다.
서연은 양산을 쓰고 이름없는 풀꽃들을 눈여겨 보며 천천히 걸었다.
강렬하게 시선을 끌진 않지만 애잔해보이면서도 꿋꿋히 피어있는 들꽃을 볼 때마다 서연은 자연스레 미소를 떠올리게 된다,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들꽃,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아 더 빛이 나는 들꽃은 늘 서연의 눈길을 오래도록 머물게 했다. 몇해 전에 들판을 거닐다 앙증맞게 피어있는 들꽃이 너무 이뻐서 집에 있는 화병에 꽂으려고 꺾어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화병에 꽂힌 들꽃은 더이상 꽃이라 할 수 없게 초라해 보였고 빛을 잃어버렸다. 들판에 피어있을 때는 누가 손질하지 않아도, 다듬지 않아도
빛이 있었고 이뻤는데, 집안에 놓인 들꽃은 자기 자리를 이탈한 까닭인지 초라하고 슬퍼보였다.
그때 서연은 깨달았다. 들꽃은 들에 피어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나미애 집 앞에는 항상 나미애의 고급 승용차가 햇빛아래 노출된 채 세워져 있다.
그런데 오늘은 나미애의 차 대신 지프형 차가 세워져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기위해 손을 뻗치자 육중한 문이 스르르 열렸다.
아기가 자고 있는 듯 했다. 초인종 소리에 깰까봐 서연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미리 문을 열어 놓은 듯 했다.
현관문 역시 열려 있었다. 여유있게 도착 했기에 서연은 욕실에 가서 손을 씻고 땀을 식힌 뒤,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거실로 나왔다. 이층에 있는 아기를 데리러 시간에 맞춰 올라 갔다. 그러나 나미애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거실에 서민호가 웃통을 벗은채 누워 있고, 그의 넓은 가슴위에 딸 지희가 엎드린 채 낮잠을 자고 있었다.
곤하게 자고 있는데다 서민호의 웃통을 벗은 모습을 보니 서연은 공연히 가슴이 뛰었다. 못볼 것을 본 것만 같아서 당황스러워졌다. 서연은 나미애의 모습을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열려 있는 침실에도 나미애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서연은 아래층으로 다시 내려와 케이블 티브이를 멍하니 보면서 지희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오전 스케줄이 있었던 나미애는 남편 서민호가 촬영을 쉬는 날이라 아기를 맡기고 먼저 나간 것 같았다.
삼십 분이 지나서야 아기를 안고 계단을 내려오는 서민호의 모습이 보였다.
서연은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 서민호에게 다가갔고, 아기를 받아 안았다.
따스한 서민호의 손이 서연의 팔을 살짝 스쳤다.
-아주머니 지희가 배고픈가 봐요. 우유 좀 주세요.
-네 곤하게 주무시는 것 같아 깨울 수가 없었어요.
-네 깜빡 잠이 들었나 봐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민호는 냉장고로 다가가 물을 마시고는 이층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