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일에 대한 욕심, 잘살고 싶은 욕심...사람에 대한 욕심..
- 공현 -
담배를 한대 물고 제법 추워진 바람을 느낀 준길은 옆을 돌아봤다.
며칠째 어울리지 않게 도서관에 쳐박힌 공현이 역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 너 그거 아냐?"
" 뭐?"
" 너랑 담배랑 참 잘 어울리는거.."
" 쳇! 기집애처럼...낮에 뭐 잘못 먹었냐?"
" 누군 고민있어서 담배를 물어도 불쌍해서 빈티가 줄줄 흐른다는데, 누군 그저 물고만 있는것도 예술이라면 그건 또 어떻게 생각하냐?"
" 왜 말장난이야? 뭐 할말있어?"
준길은 담배를 비벼끄고는 옷깃을 여몄다.
" 아니. 할말은 네가 있는것 같은데, 뭐..아님말고...아~춥다. 나 들어간다..앗싸~이제 이틀만 고생하면 방학이다."
" 준.."
공현은 준길을 부르려다 말고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기말고사를 준비한답시고 도서관에 다닌지 벌써 이주일째..그것도 준길의 말마냥 이제 이틀만 하면 되는 고생이다.
웬만한 과목들은 대충 레포트나 다른 시험들로 대체되기도 해서 정작 공부해야 하는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대학에 들어와 처음으로 도서관에 와보니 그 많은 사람들하며 방대한 공부량에 나름대로 반성이란것도 해본 공현이었다.
등떠밀려 들어온곳이지만 적어도 낙오는 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도 생겼다.
특히나 누구 한사람에게만은 그런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후~ 길게 담배를 뱉어낸 공현은 자리를 털며 새롭게 갖게 되는 많은 생각들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사람들이 이런 욕심으로 하루하루 사는건가?
자신의 일에 대한 욕심, 잘살고 싶은 욕심...사람에 대한 욕심...
공현은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들며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는 겸이에 대한 마음을 정리해보리라 마음 먹었다.
우선, 시험을 끝내고 난 후에...
" 너네 집은 어째 절간 컨셉을 못버리는거야?"
" 뭐?"
책에서 고개를 든 겸이는 불평이 한가득한 은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서관이 꽉차서 딱히 공부할곳이 없다고 불쑥 집으로 들어닥친 사람이 누군데...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를 다 뒤져 먹을것을 찾아대더니 이젠 집이 조용하다고 난리다.
" 하긴, 오빠랑 단 둘이 산다는데 뭘 기대해~겸아, 나 오빠방 구경해도 돼?"
" 아니..거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빠 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은정을 바라보며 겸이는 고개를 저었다.
공부는 무슨 공부...
" 와~ 남자 방이 이렇게 생겼구나.."
무남독녀인 은정이는 아마도 남자방은 처음인가보다.
" 뭐, 별거 없을텐데..오빠가 책을 좋아해서 책이 좀 많을 뿐이지.."
" 정말 그렇네? 음...뭐 남매가 똑같구나. 다들 어려운 책만 골라 읽나~ 쳇! "
궁시렁 거리며 이곳저곳 기웃거리던 은정은 갑자기 발을 멈추고 방그레 웃었다.
" 와~ 이게 네 가족 사진이야?"
은정의 말에 눈길을 돌린 겸이의 얼굴이 굳어진 것도 모른체 은정은 연신 떠들어 대고 있었다.
" 엄마가 미인이셨구나..그래서 네가 얼굴이 괜찮은 거였어. 어머? 오빠 넘 귀엽다..지금도 이런 모습이니? 여자친구는 있어? 완전 내 스타일인데..기집애 이런 킹카가 가까이 있음 언니한테 얼른 상납해야지..그동안 왜.."
겸이는 은정의 손에서 사진을 휙 낚아채다시피 하고 책상위에 엎어놓았다.
" 그만 나가자."
자리에 돌아와 책에만 얼굴을 묻고 있는 겸이를 은정은 가만히 지켜보다 손을 들어 겸이의 등을 세게 내리쳤다.
" 아! 윽~"
" 야! 이 기집애야. 오빠가 그렇게 아까웠어? 나 보여주기도 싫을만큼? 젠장~ 오늘 기분 완전 꽝이야~ 가서 얼른 라면이나 끓여와! 난 기분나쁘면 마구마구 먹어줘야 하거든~"
" 뭐? 아까 먹은게 소화되지도 않았을텐데 뭘 또 먹어? 이 돼지야~"
" 얼른 끓여오라니까? 아님, 나 여기 들어눕는다? 엉?"
" 알았어..공부하러 와 놓구선 먹기만 해.."
궁시렁 거리며 주방쪽으로 걸어가는 겸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은정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내색하지 않는 녀석인데..사진만으로 그런 반응을 보였다면 뭔가 아픈 기억일거라고 은정은 내심 미안했다.
이런 은정의 마음과는 다르게 라면을 끓이면서 겸이는 이유를 묻지 않고 밝게 말해주는 은정이 고맙기만 했다.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가족이야기...
은정에게 언젠가 말해줄수 있을만큼 자신이 훌쩍 자라기를...쉽게 얘기해줄수 있을만큼 아프지 않기를 겸이도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내려앉은 분위기처럼 성큼 다가온 초겨울의 저녁은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 으흠~ 으....아함~~"
" 아주 늘어지는구나."
" 음? 겸아..지금 몇시야? 졸려 죽겠다.."
" 지금이 새벽도 훨씬 지나 아침을 향해 달려가는 4시다."
" 뭐? 아씨..진작 좀 깨우지 그랬어? 나 공부 하나도 안했는데.."
" 아무리 깨워도 반응이 있어야지. 원래 그렇게 한번 잠들면 들고가도 몰라?"
" 흠흠..내가 요즘 공부하느라 피곤해서 그렇지, 원래는 안그런다?"
" 퍽도 그러시겠다. 얼른 입가에 침닦고 남은 시간이라도 공부좀 해."
" 기집애~ 아주 눈이 벌겋구나..친구는 재워놓고 너는 공부가 되냐?"
" 벌써 10분 지나가거든?"
궁시렁 거리며 방을 나서는 은정을 바라보며 겸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라면을 다 먹고 졸리면 안된다고 커피까지 챙겨마시고 나서 채 한시간도 안되어 은정은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몇분 눈좀 붙이겠지 했는데 한시간을 지나 두시간이 다 되도록 일어나지 않는 은정을 별의별 방법으로 깨워보려 했지만 은정은 꿈쩍하지 않았다.
겸이는 잘먹고, 잘웃고, 잘자고....그런 은정이 부러웠다.
그래서 내버려 둔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편한 모습으로 얼만큼 자는지...겸이는 궁금했다.
갑자기 새벽마다 강의실을 찾아와 자신을 위해 커피를 준비해주던 공현이 생각났다.
늘 먼저 와 있긴 했지만 간혹 겸이가 온지도 모르고 졸고 있을때도 있었고 얘기중에도 연신 하품을 해대던 녀석..
이주일이 가깝게 더이상 새벽에는 볼수 없었고 강의실에서 마주치는 가끔도 그저 눈인사만 나누게 되어버렸지만 겸이는 갑자기 왜 이렇게 상황이 달라졌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저 이른 새벽이 귀찮아진 것이라고 생각할밖에...
그러고보니 참 변덕스런 놈일세...참나~
하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공현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게 되는건 어쩔수 없었다.
가끔 눈에 띄는 녀석의 뒷모습에도 겸이는 왜인지 모르게 한참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차피 방학하면 수영장에서 보게 될텐데..뭘...
그럼 무슨 이유인지 꼭 물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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