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는 거야...
- 공현 -
동그스름한 얼굴, 오똑하진 않지만 그렇게 낮지 않아 나름 봐줄만한 코, 쌍꺼풀진 커다란 눈, 갸름한 입술..
강이오빤 늘 예쁜 동생이라고 하지만, 그건 어차피 주관적인 생각이고 정작, 겸이 자신은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맘에 들지 않았다.
왕방울이란 별명을 얻게 할만큼 얼굴의 반이상을 차지한 커다란 눈이며 살집이 없어서 가느다랗게 뻗어있는 팔다리가, 걸을 때마다 휘청거렸기 때문에 그렇잖아도 어려보이는 외모에 더욱 약해보이는 자신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거울보는 일이 세상에서 싫은 여러일들 가운데 하나지만 이른 아침부터 전화해 예쁘게 하고 나오라는 은정의 성화에 어쩔수 없이 한참을 거울만 바라보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 예쁘게 하고 나오라는 친구의 전화는 대충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누군가를 소개받는일...
활발하고 사교적인 은정이를 친구로 둔 덕에 이미 1학기에 서너명을 소개받았고 그중 한둘에겐 애프터 신청이란 것도 받아본 경험은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겸이로선 선뜻 이성친구를 만나고 사랑하게 된다는게 쉽지가 않았다.
후~ 오늘은 또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낸다지?
" 겸아..?"
피할수 있다면 이렇게 갈등하지 않으련만...은정이가 날 생각하는 그 마음만 아니라면..
" 겸아?"
" ..엉?"
화들짝 놀라서 바라보니 강이오빠가 언제인지 모르게 앞에 와있었다.
" 뭘 그렇게 넋놓고 있는거야?"
" 아니...그냥.."
자신이 방에 들어오는것도 모른체 거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겸이는 언제 그랬냐는듯 웃음을 짓는다.
늘 피곤에 절어있는 눈망울하며 녀석이 웃음지으면 왜 그 웃음이 내겐 눈물처럼 보이는지...
" 어디 가는거야?"
" 응.. 은정이가 남자친구를 소개시켜 준다네.."
얼핏보면 중학생쯤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녀석이 그새 얼굴을 바꾸고 쾌활하게 대꾸한다.
" 오빤 오늘 안나가?"
" 응. 오늘은 좀 쉴까해서.."
" 아하~ 그럼 오늘은 오빠가 밀린 빨래랑 청소랑 좀 하면 되겠네~ 그렇잖아도 남자손이 좀 필요했는데 오늘 그간 밀린 일 다하면 되겠다. 집에 남자가 있음 뭐하냐고~ 이 액자도 내손으로 직접 못박은거 알지? 암튼, 이 파릇한 청춘은 데이트 하시느라 늦으실것 같으니 오늘은 저녁까지 완벽하게 준비해놔. 알았어?"
" 야 임마! 내가 그걸 다 어.."
" 어허! 말이 많다! 살림에 남자손이 필요한게 얼마나 많은줄 알아? 그리고 밤이면 당연히 집에 들어와 여자를 지켜주는게 남자의 몫이거늘 오빤 그 중에 아무것도 해준게 없잖아! 그러니까 웬 미친놈이 새벽에 전화질이나 해대는거 아냐! 오늘 확실히 연습해! 어휴~ 이래서 내가 장가를 못보내요..쯧..."
" 그 전화가 계속 와?"
왜 새삼 걱정은 되니? 후후..
" 아니, 하지만 오빤 너무 불성실해..오늘은 기대하겠으~ 알았지? 나 간다~"
쾅!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해 있던 강이는 웃음을 짓는다.
그래...그렇게라도 웃어..자식~
익숙하게 가방안에서 mp3를 꺼내 귀에 꽂으며 웃음을 짓던 겸이는 순간, 그 밤에 걸려온 전화가 궁금해졌다.
그 뒤로 전화가 없는걸 보면 잘못걸린 전화가 분명한데, 신경이 쓰이는건 왜지?
무심코 바라본 시계가 약속시간에 거의 다다랐음을 알리자 흠칫 놀라며 뛰기 시작했다.
귀에 울리는 서영은의 '웃는거야' 노랫말처럼..그래...웃는거야...그렇게...하며...
" 미안해 공현아, 내가 조금 늦을 것 같은데.. 기다려 줄꺼지?"
애교섞인 콧소리를 흘리며 민선이의 전화가 끊어졌다.
젠장, 이제 슬슬 끝낼때가 된것 같다.
착한 몸매에 애교많은 성격에, 옆에 세워 다니면 썩 그럴싸한 그림은 되지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민선에게 어떤 개념이란 축복은 내리지 않으셨나보다.
시간개념, 분위기개념, 지식개념, 교양개념..그 외 여려가지 개념들...
취향이 속물근성 강한 여자들은 아니지만 의대를 다닌다고 하면 우선은 자기 옆에 두려고 안달들 하니 공현으로서는 딱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공현의 외모가 배경에 비해 초라하다는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공현의 핸섬한 외모, 훤칠한 키와 수영으로 다져진 날렵한 몸매가 의대생이라는 명함과 더불어 여자들을 안달하게 했다는건 공현도 잘알고 있다.
덕분에 아직까지 여자친구가 아쉬웠던 적이 없으니 스스로에게 감사할 일이다.
해서, 굳이 만나자고 졸라댄 민선이를 황금같은 일요일에, 사람많은 이 커피숍에서 기다리는 일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공현이였다.
지루함을 얼굴가득 머금고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를 향해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던 공현에게 톤 높은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린것은 그때였다.
자신과는 다른 기분으로 즐거운 주말을 맞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게 불쾌해진 공현은 무심히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시선을 던지다 우뚝! 멈춰섰다.
놀라서 껌벅이는 두 눈만 아니라면 시간이 정지해 버린듯 공현은 한참을 그러고 서 있었다.
지난 이틀동안, 핸드폰을 들고 걸까 말까를 고민하게 만든 녀석이 그곳에 있었다.
전화를 걸어 녀석이 받으면 또 아무말 없이 끊게 될까봐..알지 못하는 이유로 계속 전화를 하고싶은 자신을 다그치느라 이틀동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자신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녀석은 한참을 그렇게 밝게 웃고 있었다.
순간, 떠오른 반가운 마음과 그 감정의 반영인 미소를 띄우며 녀석에게 한발 다가서는데,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다시한번 공현은 걸음을 멈추었다.
겸이의 상대쪽엔 웬 사내녀석이 앉아있었다.
그 역시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고 손짓, 발짓까지 섞어가며 뭔가를 열심히 떠드는 녀석은 겉으로 보기엔 제법 잘 생긴 사나이였다.
그 앞에 열심히 배를 움켜쥐며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듯 겸이는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다.
뭐야~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는거야..?
그러고 보니 겸이의 차림새가 좀 달라보였다.
늘 청바지에 후드티셔츠 차림이였는데, 오늘은 미니스커트에 쟈켓이 멋스러웠고 어딘가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그간 잠깐 스쳐 지나던 보통의 녀석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애인인가?
불쾌함과 동시에 궁금해진 공현은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 하하..오빠가 그렇게 하셨다니 믿을수가 없어요."
오빠~ ? 아주 신났네, 신났어..오빠?
" 이래뵈도 내가 예전엔 16대 1로 싸움을 벌렸던 사람이야. 무시하지 말라고..후후.."
아주 지랄을 한다. 지랄을...꼭 샌님같아선 무슨 16대 일이야 16대 일이. 공현은 앞에 있던 물잔의 물을 한번에 비워버렸다.
" 그나저나 겸이는 무슨 과를 전공할 생각이야?"
" 음..아직 결정된건 아니지만 신경정신과 쪽으로 생각중이예요."
" 어? 그럼 나랑 자주 보겠는데?"
" 정형외과랑 신경정신과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자주 봐요?후훗"
" 왜~ 네가 우리 병원으로 오면 내가 자주 얼굴보러 들르면 되지~"
" 어멋! 정형외과가 참 한가한 곳인가봐요..나도 그럼 정형외과로 할까? 호호.."
어라? 이젠 교태를 다 부리네..저 녀석이...
이미 비워버린 잔에 얼음을 우적거리며 공현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 우리 이거 너무 잘 통하는거 아냐?"
" 그러게요..호호.."
" 그럼 우리 이참에 확 사귈까?"
갑자기 손에든 물잔을 쾅! 하며 탁자에 내려놓은 공현은 벌떡 일어섰다.
주위가 조용해지며 시선이 모아진것도 모른체 공현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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