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나 해. 취미생활로 즐기기엔 수영이 참 괴롭다
- 공현 -
늘 이시간엔 사람이 없어서 좋다.
그래서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이시간을 즐겨 외출을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어젠 야근을 하고 늦게 들어온 오빠를 맞이하느라 조금 피곤하지만, 그렇잖으면 서로 얼굴 볼일이 힘든 남매사이라서 하루쯤 잠을 양보하는 일에 그다지 인색하지 않은 겸이다.
사실, 오빠와 함께 살게 된지는 3년밖에 되지 않는다.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나서 겸이는 쭉 이모와 살게 되었는데 겸이와 무려 8살 차이가 나는 오빠는 서울의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겸이가 고등학교 2년이 되었을때 의사가 되겠다는 뜻에 따라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오빠랑 살게 되었다.
처음엔 무뚝뚝하고 별말없는 오빠가 서먹하기만 했다.
사실, 늦둥이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겸이가 싫기도 했을테고, 또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된 배경또한 겸이와 무관하지 않기에 오빠가 그런거라고 겸이는 생각했다.
" 그렇지 않아! 설사 그렇다고 해도 넌 내동생이야!"
언젠가 너무 쌀쌀맞은 오빠의 태도에 화가나서 생각을 그대로 내뱉은적이 있었다.
화를 내는 무서운 모습의 오빠보다도 너무나도 슬퍼하는 오빠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 뒤로 겸이는 오빠앞에서는 늘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너무 일찍 지니게 된 책임감이 오빠를 말없는 과묵한 사람으로 만든듯 싶었다.
뭐..어쨌든 지금은 많이 사이가 좋아지긴 했지만...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은 신입이라서인지 일도 많고 또 겸이도 공부가 많다보니 말이 같이 사는 사람이지 얼굴보기는 한달에 서너번 밖에 되지 않는다.
학교앞의 커피전문점에서 오리지널 커피한잔을 들고, 조금은 쌀쌀해진 새벽공기를 맞으며 늘 찾곤하는 빈강의실로 들어갔다.
" 하함~ 너무 좋다."
빈강의실 넓은 창문 사이로 뿌옇게 피어오르는 새벽안개, 그 틈으로 조금씩 새어나오는 햇살을 바라보는 기분이란...
커피를 홀짝이며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던 노래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그렇게 맞이한 또 하루가 시작된 터였다.
" 그날 이후로 난~ 늘 미안하게 지내요~ 단 하루라도 난~ 그댈 잊을까 걱정하면서..그대 없이 숨을 쉬는게 미안해~ 한숨이 느는지~ 그날 이후로 늘 이렇죠~"
" 거참~ 열나 시끄럽네"
헉! 소스라치게 놀란 겸이는 커피를 쏟을뻔했다.
" 누구..?"
" 뭐냐..왜 여기와서 시끄럽게 구는데?"
공현이였다. 저 녀석은 그간 학교에선 콧빼기도 보이지 않더니..여기서 뭘하는 거지?
" 너야말로 뭐하는거야?"
" 보시다시피 곤하게 주무시다가 웬 미친 여자가 아침부터 질러대는 소음때문에 단잠을 방해받았잖아!"
저...저...저 자식이..
" 누가 여기서 자빠져자래?"
" 기집애 말투하곤...젠장, 잠이 다 달아났네. 뭐야..너 실연당했어?"
" 누가 실연당했다고 그래?"
미친자식...자다 일어나서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 그런데 왜 청승맞게 노래는 부르고 그래?"
우...우....내가 참자...저건 자다 일어나서 사지분간 못하는 인간이야...그래...인간이야...인간으로 보자...인간...인간...인간...인...
" 어? 그거 커피냐?"
휙~ 어느새 겸이 손에 들려있던 커피는 공현의 손으로 넘어가 꿀꺽꿀꺽 놈의 뱃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 너 뭐하는거야?"
" 뭘?"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멍청한 얼굴을 하고 머리를 긁적이는 공현을 보자 겸이는 할말을 잃었다.
" 됐다. 내가 사지분간 못하는 인간하고 뭘하겠냐."
" 뭘?"
" 됐다고~ 그냥 적선한셈 치겠다고~"
" 커피? 야..박하게시리 뭘 이거 한잔 가지고 그러냐~"
" 그래..맘대로 해"
할수 없이 겸이가 뒤적뒤적 가방을 꾸리고 강의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공현이 옷깃을 잡는다.
" 왜?"
" 왜 가?"
" 그럼 여기서 뭐해? 아침부터 기분 다 잡쳤는데."
" 야 그래도 우리 인연이 있지..스승과 제자..자고로 스승을 홀대하면..."
" 그래서 여기까지 봐준거야. 앞으로도 너한텐 수영을 배워야 하니까. 더 자라. 아직 이른 시간이니까. 아마 앞으로 두시간은 더 잘수 있을거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겸이를 공현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듯 머리를 긁적이며 쳐다봤다.
빈속에 커피를 마셨더니 뱃속이 난리를 치고 머릿속도 엉망이다. 어제 그렇게 많은 술을 마신건 아닌데 어쩌다가 여기서 잠이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함~ 두시간이라~~"
다시 잘 생각으로 자리를 잡고 누운 공현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정신이 퍼뜩 떠올랐다.
그럼 지금이 몇시란거야? 주머니를 뒤적이며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한 공현은 기가 찼다.
" 허! 이시간에 학교에 온다고? 밤을 새운건가?"
갈수록 모를 녀석이다 싶어서 이젠 두번 상종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돌아누운 공현은 스스륵 잠이 들면서 방금 겸이가 부른 노래를 흥얼거린다.
자식~ 노래는 좀 되네.
" 아~ 내 커피..."
" 웬 아침부터 커피타령?"
사람좋게 생긴 미소를 띄운 은정이가 어깨를 치며 반갑게 인사했다.
" 늘 아침이면 마시는 내 커피를 강탈당했어..흑흑.."
" 누가 그랬는데? 누가 감히 우리 겸이 커피를.."
짐짓 화난 체 하며 입가에 걸린 미소를 지우지 못하는 은정을 보니 겸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 몰라~ 암튼, 오늘 하루 난 카페인 부족으로 힘들거야."
" 다시 한잔 마시면 되잖아? 지금 사다 줄까?"
" 아니, 아침이면 늘 치루는 의식같은 거야,그건...다시 마신다고 해도 별 의미없어."
" 참 , 특이해~ 너란 사람.."
" 뭐가?"
" 그냥.."
다시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은정이...그런가? 내가 이상한가?
거의 1년 가까이 버릇처럼...정말 무슨 의식처럼 해오던 일상인데...그걸 망쳤는데..기분이 나쁜건 당연한거 아닌가?
어떻게 하루 수업을 버텼는지 모르겠다. 카페인 부족으로 오는 두통과 멍함을 떨치려고 애쓰다가 하루가 갔다는것 외에는...
나쁜 자식...그런데 정작 그 나쁜 자식은 오늘따라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수업내내 말똥거렸다는 것이다.
젠장, 내가 수영만 아니면...
사실, 공현이 아니라도 수영을 배울곳도 가르침을 주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한번은 오빠가 직접 가르쳐주려고 한적도 있다.
하지만 물에 대해 가끔 정말 죽을듯한 공포가 엄습하는데,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모르는 사람앞에서 당하는게 싫어서 매번 미루고 미뤄왔다.
그러다가 학기초 녀석이 아르바이트로 수영강사를 한다는 얘기에 배울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흔쾌히 대답했고 일하고 있다는 스포츠센터를 일부러 찾아갔다.
친하진 않지만 그래도 동기생이니 조금은 덜 챙피하고 이해해줄거란 기대때문이었다.
얼굴을 대면한적은 있으니 그래도 좀 나으리란 기대도 있었다.
첫수업시간...녀석은 날 알아보지도 못했다.
두번째 시간 역시..그저 엄청난 초보쯤으로 여기고 귀찮아하는듯 싶었다.
세번째 시간..안되겠다 싶어서 먼저 같은 학번, 동기라고 말했더니.." 그래?"
하며 어깨만 으쓱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한달이 지났을때.." 공부나 해라. 취미생활로 즐기기에는 수영이 참 괴롭다." 라는 이상한 말만 했다.
하지만 그래도 녀석은 날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다른 어떤 강사보다 솔직하게 채찍질하며...
그 점이 맘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이 녀석이면 내가 수영을 할수 있게 해줄거야.
그렇게 석달이 지났고...난 여전히 물을 무서워하고...재수없지만 그래도 녀석은 내가 반드시 수영을 할수 있게 해줄거란 기대를 유일하게 하게된 수영강사다.
해서 참을수 밖에 없는거다.
오빠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가장 큰 이유는 나를 위해서..내가 조금이라도 편해지기 위해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