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
기억은 억지로 안된다.
기억이 존재하는 건 현재의 나를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
영화 메멘토에 나왔던 대사이다.
-영화, 보셨군요?
-그 영화 감독이 하도 천재라는 수식어 때문에 봤어요…
그는 내 말에 웃더니 자신의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또 묻는다.
-왜, 기억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순간, 난 난감했다. -.-;
이런식의 묻고 대답해야 하는, 시험형의 질문이 너무도 싫다.
-글쎄요…뇌에 그런 공간이 있나보죠 모…
아뿔싸~ 난 가끔 이렇게 나 자신이 너무나 바보스럽고 멍청하고…
분위기도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100의 천만배쯤 났다.
질문의 의도를 고작 저렇게… 아~ 죽고싶당~ -.-
나름대로 수습하려고 했으나, 저 남자…매너 좋다.^^;
-그렇구나…선경씬, 가만 보면 유머스러운 구석이 참 많아요~
<내가 유머스럽대…ㅎㅎ 아직 그를 좋아해도 되는 걸까?>
-나에게 있어 기억이란 잊지 못하는 사랑뿐이에요~
잊을 수 없는 그녀에 대한 기억들…
역시, 그와 나는 인연이 없나 보다.-.-
아직까지도 박선배에게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그의 눈빛을 보고 말았다….
-이런, 다 마셔버렸네~ 바텐더 아저씨, 나 이거 한 잔 더 주세요~
-괜찮겠어요?
그가 정말 걱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걱정을 더 하게 놔두고 싶다.
-인표씨… 인표씨의 기억에 있는 그녀, 지금도 가슴에 있나요?
그에게서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그의 미소만 볼 뿐이다.
<남자들은 이런 상황에 저런 미소지은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말 웃기셔~하나도 안 멋있네요!!! -.-
나 술취했나봐…나 왜 이러지…-0-;; 근데, 사실 그의 웃는 모습이 정말 멋있다…>
-나에게 있어 그녀는 또 다른 나였어요…
사실, 그래서 더 아픔을 주고, 상처를 줬었죠…
아니, 어쩌면 또 다른 나였었기에 나랑 똑같았기에 그런 느낌을
함께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저게 무슨 말인지…내가 술에 취해서
못 알아듣는건가…난 그의 말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날 떠난 건 그녀였어요…
-그건, 인표씨가 떠나게 한건 아니었나요?
나의 질문에 그는 데낄라를 주문한다.
-난, 그 당시에도 홍인표였고, 지금도 홍인푠니다.
사랑을 한다고 해서 저인 제가 달라지진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변한거지...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 점차 변하죠…소유하려고만 해요…
인정하려 들지 않고…
-글쎄요…무슨 말인지 알 듯 모를 듯 하네요…
하지만 인표씨의 사랑이라는 거…너무 어려운거 아닌가요?
그에게선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길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의 마음속에 박선배라는 연인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술이라는게 참 오묘하죠?
기분을 제곱해 주거든요…기쁠 때는 한 4만 배쯤 제곱 되어지고,
우울할 땐, 10만 배쯤 제곱되어 느껴지는게…
-지금은 어떤 기분인가요?
그가 물었다.
-지금은… 기분이 안 좋아요…아주아주….-.-
그의 눈이 동그래진다.
-왜, 안 좋아요? 무슨 일 있어요?
<그럼요…무슨 일이 있죠…>
눈을 떠보니 my song 노래가 들리지 않았다.
아침 햇살이 내가 지금 바라보는 천장이 낯설지 않음을 깨우쳐주었다.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 귀소본능이란 대단한거 같아…
어젯밤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않아도 이렇게
우리집에 들어와 있잖아..^^
하지만 그 안도는 정말 잠시뿐이었다.
누군가가 내 옆에서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 마이 갓!!!>
그의 얼굴이다.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가슴이 콩닥콩닥 한없이 뛰고 있다.
<이러다간 이 사람 깰지 몰라~ 어떡하지…>
-일어났어요?
그의 목소리다.
난 얼른 이불을 덮었다.
-미안해요…어제 나도 너무 많이 취했나봐요…
<취했나봐요? 모야….몰라, 나 그냥 자는척할래….>
-아직 자나요?
<몰라, 모른다니깐!>
그는 일어나서 어디론가 간다.
<어디 가는 거지? 자기집에 가는걸까? 빨리 나가줬음 좋겠다….>
그의 발자국소리가 멀어졌다. 방문 여는 소리 하나가 들린다.
<화장실 가는 걸까?>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젯밤 그와 난 이 침대에서 함께 잔거 같다.
<아이~정말….이게 무슨 일이야… 도대체…>
한탄하기에 앞서 난 내 속옷들을 살펴 보았다.
<어제 입고 나갔던 핑크색 브래지어… 그대로 있군…휴우~
그리고…핑크색 팬티…어…다행이다. 모두 그대로 있다.
아~ 다행이야…>
그의 발자국 소리가 다시 가깝게 들린다.
무언가 꺼내는 소리 그리고 한동안 조용하다.
-저 선경씨, 선경씨?
그가 날 깨운다. 일어나고 싶진 않았지만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불을 조금 들었다.
-네?...
그가 눈만 내민 나의 얼굴을 쳐다본다.
-미안해요, 일찍 깨워서…어젠…아마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리려다…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되었네요….미안합니다.
나의 눈은 바닥만 볼 뿐이다.
-그럼, 이따가 회사에서 다시 뵙죠…먼저 가 볼께요…
-아..네…
난 일어나서 배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다시 이불을 덮었다.
그가 현관문을 여는데 고심하는 것 같다.
-모두 석삼자가 되게 하고 여세요….
-아…네..그럼 가보겠습니다. 문 잠그세요….
어젯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현관 앞에서 나누었던 키스만은 또렷하게 기억 난다.
<아…창피해…어떡해….>
내가 좋아하던 칵테일은 하나같이 그 맛들이 화려하다.
그 화려한 맛에 속아 한잔으로 시작해서 몇 잔을 마셨는지
모르는...결국 후회하게 되는 뒷끝을 만든다.
왜, 그가 간다는데 난 당당하게 일어나지 못했지?
난 일어났다. 그리고 밖이 보이는 베란다로 향했다.
걸어가고 있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순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 무슨 일은 왜, 없었던 거야!!!…-.-
난 도대체 여자로 안 보인다는거야!>
갑자기 화가 났다.
그런데 저만치 걸어가던 그가 뒤돌아본다.
창피했다. 내 마음을 들킨거 같았다. 난 뒤돌아섰다.
한데 분명, 누군가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덥수룩한 모습, 우리동네에 산다는 정팀장의 모습이다.
재빨리 다시 그 곳을 쳐다보았다.
정팀장과 그가 인사를 하고 있다.
정팀장, 그가 우리집에서 나간걸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