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남.
20살. 만으로 18살.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의 회사를 다닌지 6
년째다.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대기업이지만 고졸 월급은 너무 적다. 한달
에 50만원 조금 넘는 돈으로 저축하고 생활하기에는 너무 빠듯하다. 얼마
전 기숙사 사감과 싸우고 기숙사를 나오고 나서는더 쪼들린다. 방세에 세
금 기타등등등....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할까보다...
"헤이 영미.. 뭐하노?"
"공부"
"으그 가시나. 취직은 안하고 맨날 되지도 않는 공부만 하노. 이번엔 또 무
슨 공부고?"
"공무원공부한다. 왜 가시나야. 갑자기 전화해가 시비고."
"그냥. 답답해서. 어디서 돈좀 안떨어지나."
"내한테나 떨어졌으면 좋겠다. 왜 또 뭔일 있나?"
"아이다. 공부해라. 끊으께"
"그래"
저노무 기집아는 맨날 공부한데.. 머리도 나쁘면서... 취업이 안돼서 졸업
한 지금까지도 공부한단 핑계로 놀고 있다. 그래도 먹여줄 부모나 집이 있
어 좋겠다. 부럽다.
얼마전 그룹전체 체육행사에서 같은 나이의 남자를 만났다. 볼 것도 없는
앤데 그냥 좋았다.
그래서 같은 부서에 있는 동기한테 소개팅을 부탁했다. 물론 난 시치미 뚝
떼고 나갔지.
그애(민기)도 싫지않았는지 바로 넘어왔다. 그래서 계속만나고는 있는데
민기 사정이나 내 사정이나 그게 그거였다. 그래도 민기는 계속 만나고 싶
다. 이유는 없다.
슬슬 정리하고 퇴근하려는데 과장이 부른다. 보나마나 일이겠지.. 왜 꼭
퇴근시간이 다 돼가면 일을 시키는지... 도무지 알수 없는 사람이다. 퇴근
하고 민기랑 발레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빨리 끝내야 겠다. 뭐 발레
같은 공연을 좋아해서 쫗아다니며 보는게 아니고 그냥 회사에서 공짜 티켓
이 나와 민기것까지 얻어서 보러가는 거다.
발레가 어떤건지 견학차 가는 거다. 어제 미리 약속을 해두었기 때문에 오
늘 출근할 때 미리 정장을입고 왔다. 아무리 견학차가는 거지만 그래도
발레의 체면을 생각해서다. 민기에게도 얘기해 두었으니까 정장 비슷하게
입기는 하겠지. 부랴부랴 작성한 문서를 넘기고 탈의실까지 뛰었다. 이놈
의 공장은 너무 넓은게 문제다. 서둘러 화장고치고 옷입고 정문으로갔다
벌써 약속시간이 십분쯤 지나있었다. 그런데.. 이런... 민기가 없다. 어
찌된 일일까.
기숙사로 전화해봤다. 없단다. 이런 .. 떠그랄... 야구동호회모임 때문
에 운동장에 있단다.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수 있을까. 씩씩대며 운동장까지 가는데 온몸에 힘
이 다 빠져버린느낌이 들었다. 정말이지 여긴 너무 넓다. 운동장에 도착했
을 때 내 눈에 보이는건 야구유니폼을 입고 운동장에서 수비를 하고있는 민
기였다.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아무것도 안보였다. 난 치마수트를입고 씩씩
하게 운동장을 가로질러 민기에게로 갔다.
그런 날 보는 민기는 당황해 어쩔줄을 몰라 했다.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돼었다.
난 어찌된일이냐고 물었고 당황한 민기는 더듬으며 퇴근할때쯤 돼서 동호회
회장이 연습이 있으니 모이라해서 어쩔수 없이 운동장으로 나온거라했다.
그럼 나는?? 전화도 없었고 찾아와서 얘기도 하지않았고... 바보같이 수
트를 멋지게 차려입고 정문에서 여기까지 뛰다시피 찾아온 나는 뭐지?? 분
명히 어제 약속을 했는데 오늘이 아니고 어제 약속을 했는데 아무 얘기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러는게 어딨지?
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기가 막혀서.. 어이가 없어서.. 그냥 돌아서
서 걸었다.
날 잡으러 뛰어올줄 알았는데 뒤쪽에선 중단되었던 야구연습을 계속 하고있
었다.
나에게 어찌 이런일이 일어날까... 다른 사람에 비해 쳐지는 얼굴도 아니
고 키 170에 몸무게51kg의 늘씬한 나에게 어찌... 한 장의 티켓은 찢어버
리고 옆자리를 비워둔채 공연을 봤다. 뭔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화가
나고 우울하기만 하다.
민기는 왜 그모양일까. 약속이 있다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왜 아무말도
못하고 운동장으로 끌려나간 걸까. 사회생활이 더 중요해서? 하지만 이건
부서의 일도 아니고 동호회활동일 뿐이잖아. 이것도 나 보다 더 중요한 사
회생활의 일부여서 일까?
그럼 난 왜 만나는데? 도대체 여자친구를 왜 만드냐고.. 그냥 회사일, 사회
생활이나 열심히 할것이지.. 남자들이 전부 이런 건가. 아니면 내가 매력
이 없나.
동기인 은주에게 전활했다. 이런 엿같은 기분을 떨쳐내는덴 나이트가 최고
다.
둘이서 제일 물(?)좋은 나이트로 갔다. 음.. 입구에서부터 꽝꽝대는 음악
이 좋다.
입구에 서서 전체를 휘 둘러봤다. 오늘은 어째 별론거 같은데... 그냥 춤이
나 춰야 하나 어쩌나..... 뭐 룸도 있으니까 쪼금은 기대(?)를 해봐도 될
꺼 같다.
기분을 풀겸해서 우린 신나게 춤부터 췄다. 그래 무대를 장악해야지..흐흐
흐.
DJ가 두 번을 바뀔때까지 내려오지 않고 신나게 추던 우린 밴드가 나오고
나서야 자리로 돌아와 헥헥대며 이젠 나이가 들어오래 추지도 못하겠다고
엄살을 떨었다.
5월의 그리덥지 않은 날씨지만 이 안엔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고 있었
고 그럼에도 우린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 땀을 닦고 있으려니 친
분이있는 웨이터가 다가왔다.
원래 부킹은 은주가 전문이다. 난 키가 너무커서인지 아님 나이트에오는 남
자들이 너무 작아서 인지 부킹이 잘 되지않았다. 반면 은주는 키가 아담하
니 작고 몸도 마른체형에 눈은 쌍꺼풀져 아주 예쁜 얼굴이다. 그러니 남자
들이 가만 놔둘 리가 있겠는가. 어쩔땐 질투도 나지만 뭐.. 덕분에 부킹
은 많이 해서 좋다. 뷔페처럼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고 해야하나??
오늘도 역시나 은주다. 그럼 그렇지.. 난 왜이리 키가 클까... 에혀...그
래도 난 더 커보이고 싶어서 꼭 힐만 신는다. 그러니 웬만한 남잔 내 옆
에 오려하질 않는다. 주눅든다나 ..
룸으로 들어간 은주는 잠시후 나오더니 날 잡아끈다. 킹카란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소리인가. 킹카.. 그래 그동안 너무 민기만 만나다 보니까 어느
새 민기에게만 집착하게 되버린걸꺼야. 그럴지도 몰랐다. 난 새로운 남자
가 필요했던 것이다. 새로운 남자.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