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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


BY Silvery 2004-04-13

어김없이 울리는 아침 자명종 소리..

새벽 6시반이다.

서둘러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전기밥솥의 취사버튼부터 눌렀다.

어제 저녁에 준비해둔 찌개솥을 불위에 올리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표정이 내내 찌뿌려 있는걸 알지도 못한다.

 

"대체, 요즘 왜그래??"

아침식사를 하던 남편의 툭 던지는 말한마디에도, 짜증은 커녕 아무 느낌이 없다.

"... 내가 뭘..?"

".. 불만 있으면 말로 해! 말로!! 아침부터 짜증난 표정으로 출근하는 사람 쳐다보지 말고!!"

"... ..."

무언가 목에서 걸리는듯 한 기분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이 뭐였는지조차 알수가 없다.

 

"다녀오세요...."

남편이 출근한 아침 7시반..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날줄 모르는 아이들 곁에 잠시 누워본다.

'내가.. 내가 왜이러지..'

몇 달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머~, 너 희수 아니니? 어머, 얘~!! 너무 오랜만이다~!!"

"응?.. 어머.. 넌.."

호들갑 스럽게 아는척을 하는 여자..

그러나 나는 그여자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냥 모른척하면 서운할것 같아서 아는것처럼 행동했을 뿐이었다.

"호호.. 나, 기억안나니? 나 승미야~, 최승미!! 우리 고교 동창이잖니~!!"

그제서야, 희뿌연한 기억속의 승미를 떠올렸다.

무척 소박한 아이였던 승미.. 그녀는 언제나 앞줄에 앉아서 조용히 공부만 하는 스타일의 작은 친구였다.

나는 다시한번 내친구였을지 모를 그녀를 쳐다보았다.

세련된 외모에, 활짝 피인 웃음속의 그녀는, 예전에 보았던 순수하고 소박한 면은 줄었지만..

무척 아름다와 보였다.

"나, 여기 일보려고 나왔는데, 희수 너희집이 이 근처인가보다?"

"응?.. 응.. 여기 무림아파트 203동이 우리집이야.. 근데, 집이 좀 지저분해서.. 같이가자구 할수도 없겠네.."

사실, 어서빨리 그녀와의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 보다는, 그녀앞에서 푹 퍼진 아줌마꼴을 하고 있는 내가 더없이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 그럼, 나한테 전화번호나 명함 하나줄래? 내가 몇일있다가 다시 올일이 있는데.. 전화하고 한번 올게"

"응?? 명함 같은건 없고.. 전화번호는 알려줄게.."

그로부터 몇일후 그녀에게 연락이 왔지만, 나는 이핑계 저핑계를 대면서 그녀와의 만남을 피해버렸었다.

 

"엄마.. 나 쉬할래.."

"응? 그래.. 이제 일어나서 학교갈 준비하자.."

어느새 시간은 8시를 다되어가고.. 아이를 서둘러 씻겨서, 등교준비를 시켰다.

아침에 유독 입맛없어하는 아이인지라, 늘상 계란과 샐러드, 우유와 시리얼로 먹이곤 했는데

그나마도 다 먹지 못하고 나서는 아이가 늘 불안하고 안쓰럽다.

큰 딸아이가 학교에 등교하고 나면, 작은 딸아이와 나는 둘이서 집안에 덩그라니 남아있다.

무얼할까.. 집안에 빨래거리는 돌아다니고, 설겆이는 남아있지만, 아이만 끼구 앉은 나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텔레비젼의 채널만을 돌리고 있었다.

이렇게 지내게 된것이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신혼초만 해도.. 아니, 큰아이를 낳았을때만 해도.. 이렇게 사는 일상 하나하나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 출근준비를 하고, 다시 큰아이를 돌보고, 잠이들때쯤엔 빨래나 집안일을 하고..

반짝 반짝했던 집안을 둘러보면서 스스로, 행복해하곤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나는 집안이 너무 갑갑해졌다.

파리가 낙상 할 정도로 반짝거렸던 가구나 방바닥은 먼지가 쌓이기 일쑤였고..

설겆이통에 그릇이 담겨있을 틈이 없었던 주방은 제때 닥지 않은 그릇이 쌓여있기도 했다.

하루종일 아이둘을 끌어안다가, 남편이 퇴근하면, 또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그러다 하루해가 다간 한밤중에 남편의 컴퓨터를 켜서 되지도 않는 독수리 타법으로 채팅에도 빠져들었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이 반짝이는 즐거움일뿐..

나의 가슴 속 깊이 자리한 허무함과 공허함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때르르르릉.. 때르르르릉..'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을때, 나는 직감적으로 알수 있었다.

그 전화는 바로 승미의 전화였다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