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자국 사건이 잊혀질 무렵. 나는 다시 남편을 미행하리라 맘먹고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피곤한 듯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서는 서둘러 운동복을 갈아입고 나갔다
나는 기필코 남편의 꼬리를 잡으리라 다짐하고는 남편의 뒤를 밟았다.
내가 미행한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남편은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골목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예상대로 남편의 발길은 공원이 아닌 반대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오늘은 꼭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남편은 내 예상을 뒤엎고 주택을 그냥 지나쳐 상가 쪽으로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상가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 여자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호기심을 자극받은 나는 걸음이 빨라졌고 가슴이 방망이질을 해댔다.
남편은 상가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놓치지 않으려고 종종 걸음으로 뒤쫓아 상가로 들어섰다. 남편은 이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주상 복합 상가였다. 역시 나의 추리가 빗나간 건 아니었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웃음이 나왔다. 미행에 성공했다는 야릇한 쾌감과 긴장감을 맛보며 남편을 따라갔다.
그런데 남편은 이층 상가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가게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피시방 이었다. 그렇다면 피시방 여주인이거나 피시방에 오는 여자?
남편이 들어간 뒤 십 분쯤 기다린 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한 건 카운터에 앉아 있는 사람은 여자가 아닌 젊은 남자였다.
나는 넓은 공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모두들 모니터에 빨려들 듯 앉아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피시방은 대부분 학생들로 꽉차 있어서 감색 추리닝을 입은 남편은 금방 눈에 띄었다. 남편은 맨 구석진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의 양 옆엔 중학생으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사내아이가 게임에 빠져 있을 뿐 여자는 없었다. 남편은 여자를 만나러 왔던 게 아니라 게임을 하러 왔음이 분명해졌다. 어이가 없었다.
남편이 눈치 채기 전에 얼른 카운터로 나온 나는 젊은 남자에게 물었다.
- 저기 맨 구석에 있는 아저씨. 여기 자주 오나요?
- 아, 그 분은 저희 가게 회원이신데요.
- 회원요?
- 녜 정액제 회원이세요. 근데 누구시죠?
- 아, 좀 아는 사람인데요. 저, 수고하세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피시방에 앉아 있는 남편을 발견함으로 바람을 피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고, 한편으로는 맥이 빠졌다. 등줄기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남편은 운동중독증도 아니었고,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었다. 그는 게임에 중독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집을 향해 걸어가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떼지어 몰려온 구름으로 뒤덮혀 낮처럼 환했다.
구름이 바람을 몰고 왔는지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땀에 젖은 몸을 식혀주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창문을 모두 닫아놓은 집안은 후덥지근한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 시원한 바람을 불러들인 뒤 딸아이 방으로 가 곤하게 잠든 딸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몸을 뒤척이는 유리의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창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으로 환기시키며 유리의 젖은 몸을 마른 수건으로 토닥거렸다.
오랜만에 부는 바람은 장마비와 열대야에 지친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곧장 욕실로 가서 샤워를 할 것이다. 피시방에서 묻혀온 담배냄새를 말끔히 지우고향긋한 비누냄새를 풍기며 옆에 와 누울 것이다.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잠이 든 남편의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나는 몸을 뒤척일 것이다.
그러나 그 뒤척임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왠지 오늘 밤은 잠이 솔솔 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