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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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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중독증


BY 주 일 향 2004-03-02

신혼 초 나의 비장한 목표는 바로 남편 살찌우기였다.

친정엄마에게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총동원해 살찌는 음식은 물론 몸에 좋다는 것은 모조리 해다 바쳤다.

그러나 남편은 살이 찌기는커녕 점점 비실거리기만 했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남편좀 잘 챙겨 먹이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야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남편은 나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날씬했다. 결국 십 년이 지난후에 나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런데 공원 가까이 이사를 온 뒤부터 무슨 맘을 먹었는지 남편은 아침마다 운동을 가기 시작했고, 집념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남편은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하러 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운동을 하면서 왜소했던 남편의 체형이 점점 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어깨가 좁은 편이라 옷을 입으면 그다지 표시가 나지 않았지만 웃통을 벗으면 단단해진 가슴팍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남편은 나잇살 대신 근육으로 다져진 아랫배를 은근히 자랑하는 눈치였고 주위사람들로부터 얼굴이 좋아졌다는 소릴 듣게 되면서 부쩍 운동에 매달리는 것 같았다.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에 가시가 돋을 것처럼 열심인 그는 비가 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우산을 받쳐 들고 체육공원에 갔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나는 그가 운동중독증에 걸린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에 대한 남편의 욕구는 점점 강해졌고 아침에만 하던 운동은 밤까지 이어졌다.

늘 업무에 쫓기는 남편은 밤늦게 퇴근을 해야 하는 형편인데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공원에 가는 남편을 보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밤에도 운동을 가는 남편에게 ‘비 오는 데 어떻게 운동을 하느냐? “물으면 ”숲은 나무가 비를 흡수해서 운동하는데 지장이 없다“는 이유를 대고는 거침없이 공원으로 향했다.

비 오는 날 산책로를 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나는 남편의 말을 믿어야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건 비 내리는 숲을 쏘다니다 온 사람치곤 옷이 너무나 말짱하다는 사실이었다.

실내 헬스장도 아닌 으슥하고 인적이 드문 공원에 매일 밤 운동을 가는 남편의 행동은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남편이 밤 운동을 가고나면 이상한 상상들이 발동을 건 듯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돌았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던 나는 옛 기억을 되살려 추론해 보았다.

혹시 여자가 생긴 건 아닐까. 추리닝 차림으로 아침과 저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여자라면 혼자 자취하는 미혼여성이거나 혼자 사는 과부 일 텐데...........

왠지 남편의 능력으로 미루어 아가씨는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과부일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며칠 전 잘 못 걸려온 전화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식구들이 다 나가고 난 뒤. 청소를 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었다.

- 여보세요.

- 김 유미씨 핸드폰 아닌가요?

남편 목소리가 분명했다. 순간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시치미를 떼고 이렇게 말했었다.

- 녜. 한 서정씨 핸드폰인데요.

- 어? 당신이야. 거래처에 전화한다는 게 당신한테 걸었네. 하하하.


그렇다면 혹시 그 여자가 아닐까? 김유미. 분명 김유미라고 했는데......

의혹은 점점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