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을 먼저 하려 하지 않자, 건이가 먼저
봉숙 옆에 쭈그리고 앉아 물었다.
"추워서 울어요?"
"..." 봉숙은 말이 없다.
그러자, 이번에는 원이가 봉숙 앞에 쭈그리고 앉아
코구멍을 넓히며 우수꽝 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배 고파서 울어요?"
"...아니요. 아니예요."
섭이와 혁이도 봉숙의 곁으로 다가와 쑥떡 먹다가 묻은 검댕을
소매 자락으로 쓰윽 문지르며 섭이가 먼저 말했다.
"엄니가 보고 싶어서 울고 있는 거지요, 봉숙 낭자?"
"아아 아니라예~. 그냥...제 신세가 처량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 예."
얼굴에 숯검댕이 묻어 가뜩이나 우수워 보이는 얼굴들을
더 일그러 뜨리며 네 남자가 모두 봉숙의 얼굴을 들여다 보듯
바라 보자, 봉숙 또한 해죽 웃고 말았다.
"시영이는 언제 마지막으로 봤어요?"
그 때까지 조용히 멀리 앉아 있던, 진이가 봉숙에게 물었다.
봉숙은 진이를 돌아 보며, 약간 놀란 얼굴로 진이를 보면서
자신의 배로 손을 가져다 댔다.
"언니 네 집으로 절 대려다 놓고, 그 뒤로는 연락이 안 돼예."
"죽일놈!."
진이는 모닥불 옆으로 다가 서서 봉숙의 옆에 앉았다.
"엥? 꼬마스님!. 어찌 그런 난폭한 언어를...?" 이라고 일제히 눈을
까 뒤집고 진이를 보았다.
그러자, 혁이가 오른손을 들어 히틀러에게 경례하듯 일어서면서,
"고운말을 씁시다."
"그렇지!." 일제히 혁이에게 동의하듯 일어서 같은 몸 동작을 했다.
"어?어?어? 죽일 놈을 죽일 놈 이라 하지 그럼 뭐라 해야 하나요?"
진이가 약간 얼굴을 붉히며 화가 난 어투로 말하자, 건이가 말했다.
"알았어요. 진정!. 진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뭐 이유가 있겠지요?"
그러자, 그 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봉숙이 조심스럽게 진이에게 말했다.
"안 울 께요, 언니 미안해요. 저 때문에..."
"아 아니예요. 봉숙씨 미안해요. 봉숙씨 애인을 그렇게 나쁘게 얘기해서...
그래도 그렇지...에이!."
원과 건이 혁 섭이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면서, 눈알만 크게 뜨고 입을
앞으로 쭈욱 내밀고 진이를 바라 보았다.
"그런데, 대장, 점점 추워지는데 오늘은 어디서 잔데여?"
"잠?...어어어어...걸어야지 잠은 무슨 잠? 이 추운 날씨에 어디서 졸면,
다음 날, 까마귀 신세 될 텐데...?"
건이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니야!. 봉숙씨 많이 걸으면 안됀다구. 일단 저 마을 까지는 가 보자."
진이가 가리키는 길을 모두 실눈을 하고 까치발을 하면서 보았다.
"저어기? "
"사킬로면, 십리니까...팔킬로만 더 걷자, 그리고 어디서든 몸을 좀 녹여야
된다구." 진이가 말 하자, 건이는 손까락으로 셈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음...사킬로면...40원...여섯명이니까...이백 사십원. 팔킬로면...사백 팔십원!."
그렇게 중얼거리자, 원과 섭,그리고 혁이는 환호성을 내 질렀다.
"으히히!. 막걸리 한 통을 마실 수 있겠다. 야호호호!."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예." 봉숙이 아직도 젖은 눈을 굴리며 빙그레 웃었다.
"대장!. 막걸리 사 줄 꺼야?" 진이가 물었다.
"팔킬로 걸으면, 먹을 수 있다 이거지."
"그렇지!. 퍼덕!. 끝난. 야호."
갑자기 네 남자들이 모닥불 주변을 인디언처럼 어깨춤을 추며 꺄악꺄악 거렸다.
"그렇게 추면, 지신밟기다?" 걸어다니는 백과 사전답게 섭이가 끼어들면서,
정통 인디언 춤을 선사한다며, 모닥불에서 숯검댕을 더 가져다 얼굴에 문신처럼
그림을 그리더니, 어정쩡한 몸짖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손바닥으로 박자를 치는봉숙, 나무 막대끼리 부딪쳐 소리를 내는 혁, 자신도 얼굴에
그림을 더 그리려다 건이에게 그려달라고 조르는 원, 그림을 그려주는 건.
진이는 멀거니 서서 방글거리며 웃다가, 봉숙을 보자 한숨이 내리 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