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여섯의 얼굴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정초에 어디로 놀러들을 가는데 이렇게 짐보따리도
없이 여행을한다니?" 라고 말씀을 하셨다.
진이가 답변을 간단히 하려고 애를 쓰는데,
봉숙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지는예 태백에 사는데...이 분들은 모두 대학생들 이랍니다.
저를 집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서 길을 서둘러 나서다보니..."
"아니요!. 할머니, 저희는 걸어서 여행을 꼭 해 보고 싶었는데요.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인것 같아서...많이 걸어야되서 짐을 최대한
적게 꾸리려다 보니, 코펠도 버너도 비상 식량도 없이 길을 나섰네요."
허겁지겁 먹기만 하던 원이의 머리가 영 이상한지 할머니는 잔주름을
찌푸리면서, 원이를 보면서 말했다.
"아가~ 저 청년은 몹시 배가 고팠던 모양인데...더 먹으려우? 떡국이라도...
그런데, 아직도 상투를 틀고 다니는 젊은이가 있구나 하하하."
"아? 저요 할머니? 아~예!. 하하하하...그냥 놔둔건데? 어떤!."
그러자 모두는 호탕하게 웃었다.
아침밥으로 따뜻한 떡국과 밥을 배불리 얻어먹은 일행이 길을 나서려하자,
할머니의 며느리가 작은 비닐봉투를 내밀었다.
"어디 끓일 도구도 없을 테니, 쑥떡 몇덩어리하고, 떡살이랑 가래떡을 조금
쌌는데...어디 모닥불이라도 피울 때, 구워먹으면 시장끼는 견디겠지요?
그리고...이것은 주먹밥인데...점심으로 먹어요 학생들, 좋을 때 군요.
아이구 우리 아들도 고려대나 연세대학만 들어가 준다면...후후후...좋은 여행되세요."
"감사합니다."
꾸벅절을 하고, 돌아서자 누렁이도 꼬리를 저으며 주인들의 마음씨 마냥, 대문까지
배웅을 나왔다.
자꾸 뒤를 돌아보며, 일행은 길을 나섰다.
아침 해는 겨울 찬서리를 모두 녹이려는듯이 하얀빛을 발하면서 타듯이 쏟아져
내리고, 들판 곳곳에 쌓여있는 짚단들은 작은 산 봉우리마냥, 썰렁한 빈들을
지키고 서 있었다.
"대장님!. 쉬었다 갑시다."라고 섭이가 외쳤다.
"백없시유!."
"엥? 건 또 무슨 말씀이랑가요 대장님?" 라고 혁이가 되물었다.
"후퇴는 없다는 말인데요?"라고 건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쉬자고 했지, 누가 되돌아가쟀나?" 라고 섭이가 되받았다.
"빽없시유???하하하하...대장님 죽이셔요." 원이는 연신 방글거리면서 뭐가 그리좋은지
껄껄 웃기시작했다. 그러자, 혁이도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
웃음에도 전념병이 있다고 했던가...
아무 뜻없이 뱉은 말에 그렇게 웃기 시작하자, 웃는 모습을 보고 섭이가 따라 웃고,
섭이가 배를 움켜쥐며 웃자, 남자 넷은 눈가에 눈물까지 고여가면서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봉숙은 동그란 눈을 더욱더 동그랗게 뜨고, 진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뭔가 설명을 기다렸다.
"가끔 저래요...하하하하. 우리들 뭐 하면, 너무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마세요 봉숙씨.
사투리 때문에 저럴꺼예요."
"그런데예. 여기서는 충청도 사투리 안 쓰는데요?"
"그러고 보니, 여기 봉화군 사투리는 조금 이상하네요? 꼭 진주 사투리 더하기
대구 사투리...그리고...더 느리고 그렇죠 봉숙씨?"라고 진이가 머리를 갸웃하며
물었다.
한참을 웃던 남자들 넷은 햍볕이 잘드는 도로 가상의 언덕에 주저앉는듯이 나란히
앉았다. 햇볕이 나니 덜 추었고, 아침 동냥을 성공한 덕에 배가 두둑해서 그랬는지
한기를 덜 느꼈다.
일렬로 나란히 앉아있던 일행은 섭이가 벌러덩 드러눕자, 비스듬한 길가 언덕에
팔배게를 하고 하나 둘 눕기 시작했다.
그러자, 건이가 대장답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태양이 우리의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지금, 우리는 잠을 자고 차가운 공기가
대지로 내려오면, 우리는 걷겠습니다. 지금부터 전원은 오수에 들것입니다."
"엥? 대장님!. 여기서? 저렇게 차들이 지나면서 간간히 우리들을 동물원 원숭이
처럼 구경하는데?" 라고 혁이가 말하자 원이는 이미 누운채로 되받았다.
"대장님이 시키면 시키는데로 하셔...좋은 생각같은데 나는?"
"맞아!. 대장님 아니였으면, 누가 동냥을 그렇게 근사하게 했겠냐?"
라고 섭이가 말을 했다.
디오게네스가 된 일행은 길가상 언덕에 나란히 누워 진이가 겨우 챙긴 군용 담요
하나를 덮고 누워 낮잠을 청했다.
"봉숙씨!. 안추워요?"라고 진이가 물었다.
"괜찮아예. 저 때문에 괜히 고생들이 많아서..."
"아~아닙니다. 절대로 오해하지 마세요 봉숙씨, 우리들은 늘 이렇게 가끔씩
미친짓을 자주하니까..."라고 혁이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말했다.
"대장님!. 자장가 불러주세요."라고 혁이가 말을 하고 있을 때, 건이옆에 누워있던
원이가 몸을 뒤틀면서 아이처럼 졸랐다.
"노래요? 음...하죠 뭐."
[기운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로봇~달려라 코난 은하철도 구구구~...]
건이의 십팔번이자 절대로 끝이 없는 노래 만화영화 주제가 메들리가 시작되었다.
킥킥거리던 모두는 어느새 잠이 들었고, 몸이 한기를 느끼자 하나 둘 일어섰다.
"야~아!. 대장님아 추워지는데요. 우리 서서히 움직이지요 녜?"
"아아!. 잘 잤다. 어? 갑자기 왜 이렇게 춥지? 으으으~"
"나도 춥다!."
"쩝쩝쩝!. 그럼 서서히 걸어서 길을 나서야지요. 야아~얏!. "
기지게를 켜면서 건이는 발차기를 하기 시작했다.
진이는 담요를 봉숙의 어깨위에 걸쳐주면서,
"이거라도 덮고 있다가 걷기 시작하면
곧 따뜻해 질 꺼예요."라고 말을 했다.
"앞으로 사킬로 걷고, 모닥불을 지피고, 쑥떡을 구워 먹겠습니다."
"좋지!. 이야호~. 그렇지 않아도 배가 출출 해 지고 있었는데 그렇죠 여러분?"
건이가 내미는 주먹밥을 먹으면서 일행이 걸어걸어 도착한 곳은 춘양면 이었다.
작은 간이역이 전설처럼 우측으로 서 있는 춘양면.
간간이 기차가 지날 때면, 일행은 반가히 손을 들어 야호를 외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기차는 간이역에 서지않고 그냥 지나쳐 느리게 긴 여운을 남기며 지났다.
간이역 뒤 뜰로 간 일행은 잔가지와 마른 나무를 찿았다.
여기저기 들녘과 언덕에 마른풀과 마른 쑥을 긁어모아 작은 모닥불을 지폈다.
간이역에는 역무원도 없고, 간이역 뒷편으로 작은 마을이 작은 점처럼 보였다.
구불구불한 논둑길을 하염없이 따라가면, 작은 마을 뒤로 제법 높은 산 자락이
눈에 덮여, 하얗게 서서 일행을 반기는듯했다.
모닥불 가상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앉아, 떡살을 씹어먹기 시작하자
혁이가 절뚝거리며 일어나서 무엇을 보았는지 논둑길로 내려가
약간 두꺼운 녹슨 철사 한 토막을 주워들고 생긋 웃었다.
"아주 좋군요!. 거기에 떡 꿰어서 구워먹으면 딱 이군."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들이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주워온 녹슨 철사에 쑥떡을 꿰고, 가래떡을 꿴다음 모닥불에 구으니
고소한 냄새가 간이역 주변을 덮었다.
해는 벌써 기웃기웃 작은 마을 뒷산으로 기울고,
작은 마을의 집집마다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솟기 시작했다.
구운떡을 나눠 먹다보니 입 가상엔 검댕이 묻어 서로의 얼굴을 보며 킥킥거리다가
누가 먼저 말을 한 것도 아닌데,떡을 굽기전부터 조용히 앉아있던 봉숙의 얼굴로
모두 눈이 쏠렸다.
봉숙은 울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