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059

현재-38


BY 까미유 2007-03-01

내일이 드디어 결혼식이다. 회사의 동료들은 내 결혼 소식에 너무도 놀라와 했다.모두 내가 남자 친구가 있을거라는 짐작은 했지만 그게 박상준 이라는 사실은 몰랐다고 했다. 옆자리의 진경은 자기에게는 살짝 말해 줄 수도 있는 문제였지 않냐며 좀 섭하다고 했다. 비밀연애에 성공 했으니 집들이는 거하게 차려내라고 벌써 부터 약속을 받아 내었다.

 

결혼식 3일전에 일시적인 휴가를 내었다. 김기사 아저씨에게 양해를 구했다며 엄마가 3일전부터 올라 오셔서 결혼식 전까지의 내 일을 돌봐 주고 있었다. 엄마와 이렇게 맘편히 마주 앉아 얘기해본게 거의 없는 형편이라 첨엔 어색하고 불편했는데 어느순간 그래도 핏줄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편하게 지내게 되었다.

 

상준이와 만나 필요한 소품을 사러 나갔다 들어온 저녁이였다. 내일이 결혼식이니 오늘은 엄마와 둘이서 보내라며 일찍 헤어져준 저녁이였다. 들어오기전에 저녁은 집에서 먹는다고 전활 해두었다.상준인 오늘은 형과 영인이가 있는 본가[?]에서 아버님과 함께 보내다가 내일 시간마쳐 데릴러 오겠다며 빌라 앞에서 날 내려다 주고 돌아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거실에서 티브이을 보고 계시던 엄만 날보며 놀라와했다.

 

"작은 도련님은 어쩌고 혼자야...?"

여전히 작은 도련님이라고 부른다.상준이 이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도 엄만 여전히 상준이에게 작은 도련님 이라고 한다.물론 상민씨 에겐 큰 도련님 이라고 부르고....괜히 맘이 쓰라려 왔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엄만.......상준이가 어색해 한다고 말했잖아요...."

"그러게......나도 자꾸 뱉어 놓고 후회하면서...."

 

민망해 하는 얼굴로 날보다가 엄만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 엄마의 뒷모습에 괜히 거슬리게 했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왠지 자꾸 엄마만 보면 하나에서 열까지 신경이 쓰여지는지....떨어져 살아온 시간이 너무 많아서 인지 아님 살갑게 지내온 시간이 없어서인지 부딪칠 때마다 온몸의 바늘이 뾰죽이 자꾸 곤 두섰다. 그러지 말아야지.....좀더 편하게 지내야지....이젠 힘든 시간 모두 지나갔으니 편하게 지내야지.....집으로 들어서기전......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전에 몇번의 다짐을 하곤 하지만......생각과는 다르게 행동은 쉽지가 않았다.

 

싰고 주방으로 나오니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났다. 내가 어렸을때 잘 먹던 부추 부침도 있었고 당근,파,양파.가 들어가 있는 예쁜 달걀말이......생체무침과 몇조각의 햄......웬지 예전 내가 어릴때에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아빠나 두오빠 없이 엄마와 단둘이 있을때만 먹어 봤던 음식들이였다.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어릴때 그렇게 햄한번 구워 달라고 조르면 엄만 내게 눈을 무섭게 흘겼다. 친구네 집에 갔다가 얻어온 부추을 가져와 부침을 한번 해달라고 하면 그때도 엄만 기름이 어딨냐며 내게 눈을 흘기셨다. 흔한 계란 말이도 잘 못해 주었던 엄마였다. 그래서 일까?난 혼자 살면서 월급을 타면 몇개의 스팸을 사다가 두고두고 아껴 먹곤했다. 비오는 저녁이면 귀찮고 번거로워도 부추를 사다가 부침을 해 먹었다. 밥대신 3장씩이나 먹으면서 혼자 눈물을 짓는 일이 허다해도 비가오면 꼭 부추부침을 해 먹었다.

 

"앉아.....너 좋아하는 해물 된장찌게 끓여봤어.......예전에 이거 잘먹었잖아...."

"그러게....오늘은 아빠도 오빠들도 없어 .....이 가득한 해물 모두 내차지네.......그치 엄마..."

"그러네....우리딸.....모처럼  밥 맛있게 먹을...수....있..겠...네...."

누가 먼저 였을까.....?엄마였을까....?아님....입술이 미어 터지게 밥과 된장국을 입에 담고  있는 나였을까.....?눈물이 하염없이 식탁 테이블 위로 떨어져 내렸다.

 

가슴이 끅끅 거리며 미어 왔다. 누군가 가슴 한 복판에 커다랗고 무거운 돌을 가득 얹어 놓은 기분이다.숨도 못쉴만큼 그렇게........꾹꾹 눌러대고 있었다.

 

신문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받아 온날 기다리고 있던 작은 오빠에게 모조리 빼앗겨 소리도 못내고 방에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남의 집 일을 끝내고 온 엄마가 아무말 없이 저녁 내 밥상 위에 올려 놓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노란 계란 말이......오빠에게 돈을 빼앗겨 속상했던 맘에도 왠지 엄마의 그 계란말이을 보면 마음이 풀렸었다.

 

이상하게도 다른날은 늦거나 하면서 내가 돈을 받아 오는 날이면 나보다 일찍 들어와 계시는 엄마였다. 그때 마다 상위엔 아무도 안먹는 그래서 모조리 나혼자만 먹는 계란 말이가 올라와 있었다. 아빤 엄마에게 그렇게 할 반찬이 없냐며 타박을 주었지만 엄만 그날만은 꼭꼭 계란말이을 상에 올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만 오빠들에게 허망하게 돈을 빼앗기는 날 위로 하기 위해서 그랬던가 보다......김치와 단무지....그리고 멀건 멸치로 끓인 김칫국...매운걸 잘 못먹는 내게 계란 말이는 천상의 찬이였다.

 

한참을 그렇게 끅끅 거리며 울었다. 엄마가 말없이 일어나 다 식었다며 된장국을 다시 가스위에 올렸다. 내게 차마 얼굴 못 돌리고 등지고 서있는 엄마에게 다가가서 안아 주었다.

 

"....흑.....흐...ㄱ....."

 

"엄마.....엄마 .....이젠 그만울어......나 사실 엄마 원망 많이 했는데.....이젠 정말 괜찮아요....엄마가 알게 모르게 나 잘되라고 빌어줬잖아.....그래서 오똑이 여경이가 이렇게 잘 되었잖아요......그러니까 이젠 그만 울어......나 배 많이 고파요.....엄마가 해준거 다 먹고 소화 시키고 자려면......시간이 얼마 없잖아....내일 결혼할 신부인데 얼굴 붓고 눈도 부으면 어떻게......신랑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다구요...."

"....그래......여경이 네가 이렇게 잘 될거라고 엄만 알고 있었어....네가 얼마나 순하고 착한 아인데.....이야기 책에도 나오잖아.....착한 사람은 늘 하느님이 상을 주신다잖아......"

"...응....그래요....그래....요...."

 

마주 안은 팔에 힘이 서렸다. 엄마의 품이 따스하다는걸 이제야 미처 느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의 품은 늘 찬바람이 쌩쌩 도는 북풍 한냉의 날씨 였는데 지금 느껴보니 엄마의 품은 참 따스하고 아늑했다. 절대 떨어지고 싶은 생각이 없는 그런 품이였다.

 

 

결혼식날 아침 상준이 일찍 날 데릴러 왔다.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함께 먹고 식장으로 향했다. 웨딩숍에서 드레서 찾아온 성주와 합류했다. 신부대기실에 있던 영인이 내게 얼굴이 좀 부은것 같다고 걱정을 했다. 어제 잠들기 전에 엄마가 얼음 찜질을 해 주었는데도 붓기가 가시지 않았나 보다. 메이크업사 와서 기초화장부터 시작했다.

 

아이보리색의 가슴이 브이넥으로 파진 웨딩 드레스는 내게 잘 어울렸다. 배만 나오지 않았다면 들러리로 서서 꼭 입어 보고 싶다고 했다.아침에 바쁘게 새벽차를 타고 온 은서는 신부대기실에서 날 보자 마자 눈물만 흘렸다. 상준이 정말 약속 지켰다며 내가 정말 이제부턴 우는일 없이 꼭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인이도 좀 어색해 하는 은서에게 친한 친구처럼 살갑게 대해주면서 식 끝나고 함께 집에 가자고 청해 주었다.아이들 걱정에 일찍 가봐야 한다는 말에 집까지 차로 바래다 주겠다며 함께 좀 놀아 보자고 했다.

 

엄마와 김기사 아저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오셨고 오빠도 왔다. 아빠 대신 난 시아버님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갔다. 우리 둘이서 들어 가겠다고 했는데 아버님이 날 항상 딸처럼 생각했다며 한창 어릴때 부터 엄말 빼앗아서 미안했다며 내 손을 잡고 들어 가고 싶어하셔서 그렇게 했다. 늘 혼자 있는 내가 맘에 걸렸다고 하셨다.

 

결혼식이 무사히 끝나고 신혼여행지 까지 따라 오겠다는 성주를 따돌리고 우린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호수가 예쁜 호주의 브리스 베인으로 떠났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