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14세 미만 아동의 SNS 계정 보유 금지 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965

현재-35


BY 까미유 2006-06-08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거리의 기온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울 폴라에 카디건 그리고 회색의 모직바지.....목도리도 꼼꼼하게 하고 장갑도 끼웠건만 강추위의 바람은 어디로 들어오는건지 내 온몸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작은 차를 한대 내주겠다는 상준이 말에 고갯짓을 도리도리 흔들었는데 비까지 내리는  오늘은 흔들었던 고개짓이 후회가 되었다. 가는길에 픽업해서 태워 가겠다는 성주의 전화가 있었지만 그냥 나왔다.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역에 내려 많은 사람들의 힘에 의해 밀여 안으로 들어서는 매일의 출근길......얼른 mp3 를 꺼내 귀에 꼿았다. 금방 내 귀로 파고 드는 김광석의 목소리....그녀의 웃음 소리뿐 인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온통 각각의 색깔로 만들어져 있는 우산......간절히 생각나는 향 진한 블루마운틴의 커피.....성주가 어쩜 일착일까....?괜시리 기다려 졌다.

 

탕비실에 온기가 느껴졌다. 푸른색의 울 폴라를 입고 닥스의 체크 목도릴 두른 성주가 들어서는 내게 싱긋 웃으며 방금 내린 커필 내밀었다.

 

"괜한 오기부리는 주인탓에 네 몸이 고생이다.......지나는 길이니까 태워 준다는데....왠 거절인지....."

"너 모르는 구나....요즘 들어 나에대한 소유욕이 굉장히 강해진 박상준을 .....처음 시작되는 아침에 다른 남자라니......더구나 바람인 한성주 라니......말이 안되지....."

"칫......다른 여성들에겐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라지만 내게 있어 이여경은 여자 아니거든...? 넌 박상준과 같은 급이야.....동성친구에게 이성을 느끼거나 하진 않아....."

 

눈을 장난스럽게 내리 깔아 날 내려다 보는 한성주......넘 얄미웠다.

 

"피차 만찮가지거든.....?나도 너 남자로 안봐....영인이와 동급으로 본다구 뭐........"

".......ㅋㅋㅋ 아 . 갑자기 기분 무지 상하네...영인이와 동급으로 본다는 말....자존심 넘 상해...사실 영인이보다 내가 더 가깝지 않냐?"

 

끝까지 장난인 성주의 너스레에 난 졌다는 얼굴을 했다.

 

임신 2개월을 맞고 있는 영인인 요즘 입덧으로 고생이였다. 입덧엔 감초 달인 물이 좋다고 해서 꾸준히 마신다고 하는데.....감초만 넣고 달인 물맛이 요상해 많이 고생하고 있었다.

 

외국출장이 잦은 상준이에게 매번 열대과일 말린것과 짧짤한 맛이 나는 건어물을 주문하는 영인이였다. 며칠전에 얼굴을 봤는데 안그래도 소식인 애가 입덧탓에 고생이 심한지 얼굴이 많이 않좋아 보여 걱정이였다.어머님은 입덧을 안하셨다는데......딸인 영인이 왜 입덧으로 고생이냐며 어머님 얼굴도 안좋아 보였다.

 

커필 들고 나오면 창밖을 잠깐 봤다. 비가 내려도 하늘은 어둡지 않았다. 회색빛 하늘 이였다. 자리로가 앉으며 멜을 확인했다.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멜이 하나 왔다.

 

"상쾌한 아침을 열어주고 싶었는데......능력밖이라 미안한 마음 금치 못하네......잘 잤어?내 반쪽.....?오늘 점심 스케줄 비는데 잠깐 볼까? 바로 답줘.....2시간 기다렸어...."

 

나보다 출근이 빠른 상준이 멜이였다. 늘 이렇게 아침이면 주고받는 멜.......하루을 여는 시작 이였다.

 

책상앞에 놓여 있는 졸라맨 의 펜꼿이을 보며 자판을 두드렸다.

 

"그대의 글로 인해 내 아침은 늘 상쾌하고 밝습니다. 몇시쯤 볼까?"

 

"정말 못봐 주겠다.......핸폰 문자좀 확인하시죠....?그대의 아침과는 상관없이 괴로움을 호소하는 친구가 있으니...."

 

언제왔는지 뒤에서 쯧쯧 거리는 성주였다.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옆자리의 경혜가 날 보며 큭큭 거렸다. 마우스를 놀려 컴의 화면을 바꾸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3건의 문자 메세지....모두다 영인이였다.

 

"시간되면 점심 같이 먹자....''

"아직 출근전이야....?메세지 확인하면 전화줘..."

"아..나 속너무 메스꺼워......상현씨 어제 미국 출장가서 내일 오는데 너 오늘 여기와서 나랑 놀아주면 안돼....나 너무 우울해 여경아......흑..."

 

열심히 기획안을 보고 있는 성주를 잠깐 보다가 상준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점심....같이 못하겠다. 영인이에게 가봐야 할것 같아....미안..."

 

바로 답이 왔다.

 

"같이 보자......안그래도 형에게 부탁 받았어......채선당 갈까...?"

 

 

정말 따스한 국물이 그리웠다. 한 겨울의 샤베트도 그립고......얼른 답 문자를 보냈다.

 

 

점심에 본 영인인 그새 많이 수척해 있었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 터 저리 힘을 빼서 어떡하려는지.....걱정이 되었다. 늘 윤기로 탱탱하던 뽀사시 하던 볼도 푸석푸석 하고 입술도 하얗게 떠 있었다. 앉아 있는것도 왠지 힘들어 보였다.

 

"많이 힘들면 입원하지 그래....?제대로 잘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잔다면서......"

녹차를 따라 건네주며 상준이 말했다. 힘없이 고개짓하는 영인이....괜히 맘이 짠했다.

 

"감초 달인물이 효과가 있다던데.....아닌거야...?"

"...아냐....입덧이 문제가 아니라....계속 안좋은 꿈을 꿔.....가위에 자주 눌려.....원래 임신하면 초기에 싸나운 꿈을 많이 꾼데....."

"무슨 꿈인데...가위까지 눌린다는 거야....?"

"....생각해본적도 없는 이상한 꿈.....내가 기가 약한탓이지 뭐......"

"한약 한번 먹어봐.....예전에 은서 보니까 몸 축날때 한약 지어 먹었더니 좋아졌다고 하던데....같이 가줄까...?"

"이미 지어났어......울 엄마하고 상현씨....모르냐...?"

 

날 보다가 상준일 보며 눈을 흘기는 영인이 탓에 상준이 기막혀 했다.

 

육수에 청경체을 비롯한 야채를 넣고 가늘게 썰어 놓은 등심을 넣었다. 만두와 가래떡.색색의 예쁜 어묵.......보글거리는 육수에 이것저것 넣고 세가지의 각기 다른 맛의 소스......영인이 국물을 떠서 맛을 보며 고갤 끄떡였다.

 

온풍기가 틀어져 있는 룸은 따스했다. 두 다릴 쭉 뻗은 영인일 보며 괜시리 웃음이 났다. 날 보면 막내 동생이 되는 영인일 보며 상준이시막혀 하지만 영인인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렌지 빛이 도는 앞접시에 국물과 어묵 고기을 덜어 내려 놓는데 문이 열리고 성주가 들어왔다. 잠깐 외부일 보고 온다고 아침에 나갔던 성주 였다.

 

"얼굴이 왜 그래.....?많이 상해 보인다 더..."

영인이 옆자리로 앉으며 성주가 물었다.그말에 영인이 밉지 않게 인상을 썼다.

 

내가 영인이 그릇을 내려 놓자 상준이 내 접실 들어 음식을 덜어주었다. 고기보다 야채를 주로 먹는 난데.....전골냄비에 있는 고기는 모조리 내게 와 있었다. 그걸 보고 성주와 영인이 상준일 흘겻지만 상준인 못본척 눈을 내리 깔았다. 그 민망함은 오로지 내 몫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