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있었던 파리 연수는 내게 많은걸 알게 해주었던 좋은 기회였다. 우리와 달리 정적인 파리의 인테리어 소품들......상류층의 왕실분위기와 소시민들의 현실적인 소품.......해외여행을 하면 꼭 한번은 둘러 보고 싶어 했던 벼룩시장은 정말 내게 즐겁고 신나는 일이였다. 소소한 물건들을 하나하나씩 꼼꼼히 들여다 보며 주로 핸드매이드인 물건들만 구입했다. 가기전에 영인이와 상준이에게 유로화를 받아 왔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첨 해외 나가는 날 위해주는 선물이라고 해서 아예 거절을 못하게 인상까지 써 보이는 둘에게 난 아무런 소리도 못하고 받아왔다. 사고 싶은게 정말 많았다. 거의 고가에 가까운 물건들에 난 아쉬움의 한숨을 가슴에 묻었지만 사진으로나마 담아 올수 있어 만족했다. 디지털 카메라는 영인이 내게 빌려 준거였다. 말이 빌려준거지 내가또 뭐라 할까봐 빌려주는 거라고 했다. 자긴 두개니까 가지고 싶으면 가져도 된다는 말을 붙이고.....암튼 이 카메라도 내게 꼭 필요했다. 거리의 작은 가게에서 예쁜 판화가 그려진 엽서를 사서 그자리에서 영인이와 상준이 은서 성주에게 편질 썼다.함께 쇼핑 나와준 현지 직원에게 부탁해서 바로 우체국으로 가져다 달라는 말을 전했다. 평소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한번에 하고 나니 너무 기분이 좋았고 뿌듯했다. 내 생애 정말 이런일이 일어날까 늘 상상만 해왔었는데........파리의 따스한 햇살이 내게 활쫙 웃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따스해 졌다. 회사와 조인해 있는 작은 소품 공장과 전시실을 둘러보며 난 눈으로만 열심히 스케치 했다. 모두가 각 개인의 작품이였기에 사진이나 스케치는 물론 메모는 허용이 안되었기에 눈으로 꼼꼼히 새겨 넣었다.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난 하루하루 였다. 간간히 하루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상준이 내게 자기가 보고 싶지 않냐고 물었는데.....사실 어떤날은 상준이 얼굴이 생각이 안날떼도 있었지만 난 과장법을 적절히 활용하며 너무 보고 싶다는 말을 매번 해주었다. 열흘의 일정이 끝나는 날 아침은 시간이 좀 더디게 흘렀으면 하는 바랩도 있었다.상준이에게 줄 푸른 바다빛의 티와 영인이게 줄 하트 모양의 색색의 큐빅이 박힌 이미테이션 발찌와마른 바다 해초풀로 만들었다는 아쿠아 퍼퓸은 성주의 선물이였다.경혜을 비롯한 같은팀 디자이너들 에겐 초코릿 모양의 4B연필을 구입했다. 선물을 챙기다가 든 생각......내게 가족이 없다는 ......그런 상실감.....웬지 가슴가득 눈물이 차 올랐지만 난 눈에 힘을 주며 버텨냈다. 내겐 더이상 가족이 없다는 ....친구가 전부여도 하나도 불행하지 않다는 생각.......숙여지는 고갤 빳빳이 들고 허물어지려는 가슴을 세게 부여 잡았다.힘준 눈가가 많이 아파 왔지만....난 울수가 없었다.
파리 연수가 끝나고 바로 출시된 겨울 제품의 반응이 너무 좋아 우리 팀은 한층 사기가 올랐다.우리 회사 뿐만 아니라 갑자기 리모델링 붐이 일면서 인테리어 제품의 수요가 늘어나는 요즘에 다른 회사보다 소품이나 감각적인 디자인 제품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의 매출이 상상을 초월하는 나날이였다. 나날이 바빠지고 힘든 시간의 연속이였다. 가지고 있던 제품에 새로 출시되는 제품수에 우리팀 뿐만 아니라 가구 디자인 팀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잡지나 신문에만 싣고 있었던 광고였는데 이번엔 공중파 방송도 타게 되었다. 우리 회사의 모토는 감각적이면서 세련된 분위기의 모던 인테리어 였다. 요즘 한참 잘나가는 남자 배우가 모델로 선정 되었다. 독신의 세련됨과 단정함을 인위적인 연출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내 보이는 모델이였다.광고 제작을 맡은 광고팀원들과 미팅을 가졌다. 우리팀에선 나와 성주 한유미가 나갔다. 가구팀과 침구팀에서 두명씩 각 나왔다. 우린 주로 카피를 써주기로한 카피라이터인 윤 재희씨오 함께 였는데 생긴것 처럼 야무지고 감각적인 어휘력에 단시간에 우리 모두는 그녀의 말에 휘감겨져 갔다.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데 난 성주의 긴장한 눈가를 봤다. 회의내내 성주는 그녀.....윤재희에게 시선을 못 떼고 있었다. 조금은 단단해 뵈는 외유내강형의 윤재희가 자꾸 머리속에 남았다.
저녁에 영인이 초대가 있었다. 요즘 한창 요리에 재미를 붙인 영인이 자신의 첫 작품을 우리에게 시식해 주고 싶다며 불렀다.자기만 외기러기 라고 오길 꺼려 하던 성주였는데.....정말 뜻밖이였다. 그 초대 자리에 윤재희가 와 있었다. 미리와서 요즘 한창 뜨는 보드게임 할리갈리를 하고 있었는데 딩동 소리와 함께 들어선 사람.......가자 주로 백화점의 예쁜 쇼핑백을 든 윤재희 였다. 나와 상준이도 놀랐지만 성주는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영인이 만든 요린 전통 스파게티를 표방하며 여려개의 각기 다른 맛의 소스와 파스타 였다.파프리카와 피망이 주류를 이루는 피자도 있었다. 영인와 재희씬 같은 요리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상민씨와는 이미 안면식이 있었고 우리회사가 광고팀을 찾는다는 얘기에 자기가 속해 있는 광고 회사를 소개해준 사람도 재희씨 였다.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윤재희는 생각보다 털털한 사람이였다.겉으로 보여지는 면은 자로 잰듯한 이지적인 좀 찬듯한 외모였는데 엉뚱한 면이 종종 보이는 재미있는 사람이였다. 이미 성주의 눈에 하트로 자리 매김한 윤재희 였다. 평소의 포커페이스는 어디로 갔는지 여자앞에서 얘기 주도권을 늘 자기가 가지고 있던 성주가 이번엔 간간히 대꾸만 할 뿐 별다른 말을 않고 있었다. 긴장하거나 어색해질때 눈썹 양 미간에 주름을 만드는 성주인데 오늘 저녁은 내내 그런 인상를 쓰고 있었다.나와 상준인 그런 성주가 우스웠지만 내색을 않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 성주가 나와 상준이 사이에 끼여 얼마나 많은 훼방을 놓았는지.....첨엔 잘되라고 도와주더니 우리가 갑자기 사이가 좋아지자 심통이 났는지 매번 영화나 연극을 볼 때면 꼭 따라 나왔다. 상준이 성주를 피해 나오기 까지 우리의 아까운 데이트 시간이 몇시간씩 줄어들 때마다 얼마나 화나고 속상 했는지.......나와 상준인 눈을 맞추며 고갤 끄떡였다. 더이상 성주에게 뺏길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성주와 윤재희가 잘되길 계획을 짜기로 합의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