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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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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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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유 2004-09-09

회의실 문을 나서며 잠시 휘청거렸다.온몸으로 내내 긴장하고 있었기에......문을 나서는 순간 핑글 현기증이 일었다.뼈마디가 아픈듯......가슴의 한쪽도 아파왔다. 펄떡이며 뛰는 심장에 작살을 정통으로 맞은 기분.....숨을 쉴수가 없을만큼......입은 상처가 컸다.겨우 진정을 하고 내 책상으로 왔다. 날 보는 앞자리의 한유미에게 자료챙겨 회의실로 가보라고 말하고 자리에서 나왔다.도저히 그냥은 있을수가 없었다.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공간으로 숨어 들어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그냥은 너무 힘들것 같아.....금방이라도 쏟아져 버릴것 같은 눈에 힘을 주며 화장실로 직행했다.혼자만의 공간.......오직 혼자만이 될수 있는 공간이란 회사에선 혼자들어가 볼일 보는 화장실 뿐이 없으니까.......

 

"매일 칼퇴근 한다고 들었는데........일주일 내내 해낸일이 고작 이겁니까?이여경씨 디자이너 맞습니까?초안을 잡기전에 어디에 중점을 두고 하는겁니까?대체 시장조사나 업계의 흐름 같은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것 아닙니까?이 악어 시리즈나 공룡......우리와 비슷한 업계인 까시모아에서 겨울에 나왔던 제품입니다.모방입니까?아님 도용 입니까?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인지......일반 사무직도 아니고 회사의 이름을 걸고 일한다는 사람이......이렇게 안일한 생각으로 지금까지 일해 왔다면......생각좀 해봐야 겠군요.회사가 자선사업 단체도 아니고......더구나 이여경씬 경력자 우대로 들어온건데......"

"..........."

"......5일 더 시간을 줄테니......다시 해봐요.여기서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시간이 없으니까.......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봐요......"

".....네...."

"....그리고 이여경씨 사생활에 대해서 이렇다할 관섭할 자격은 없지만.......사람들의 발길 잦는 복도에서 남자사원과 노닥거리는 일 삼가하세요.괜한 추문 도는것 이여경씨 상사로서 듣기 불편할 것 같으니까.....처신 잘 하세요."

 

'쿵'바닥으로 가슴속의 무언가가 툭 하니 떨어져 내렸다. 한번에 툭 하니 잘려 내진듯한 기분.아프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 빠른 시간.......내안의 뭔가가 떨어져 내렸다.서 있는 내내 찬물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려치는 기분이였다. 내 딴엔 며칠동안 애써 왔던 그림이였는데 이런식으로.......발끝에 버려지는 휴지조각 처럼.......그렇게 내 그림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아무런 말도.....반박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부끄럽다는 말은 ......챙피하다는 말도......아무런 변명거리가 되지 않았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니까.......다 맞는 말이니까......왜 난 그 쉬운 시장조사 조차 하지 않았던 걸까.....?그냥 책상에 앉아서 그림만 그리면 된다고 생각했었던 걸까.....?매일 해오던 사람들도 밤을 세워 가며 힘들게 머리 짜내는데.......난 생각없는 사람모양 그냥 그림만 그리면 된다고 생각했다니.......주위의 흐름이 어떤지도 파악하지 못하고.......유치원생 처럼 백지에 그림만 열심히 잘그리면 된다는 가볍고 안일하게만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래서 오늘 아침.....이렇게 벌거벗기운체.......아무런 말도 못하고 모진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다.그렇다. 상준인 내가 속해 있는 곳의 윗분....책임자니까......일 못하는 직원에게 매운소리 할수 있다.하지만.....난 왜 이렇게 상준이가 야속하고.......속이 상한지.......떨어지는 눈물을 닦아낼 힘조차 없을 만큼.......무너지는 가슴을 추스릴 만한 힘도 없다.

 

근 한달이 다 지났다. 귀국후 둘만이 마주 한 것이 오늘 회의실 이였다. 회의실에서 보자고 했을때.......이런식의 재회는 한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었다.물론 날 보며 지나치는 시선이며 몸짓이 찬바람이 돈다고는 생각했지만......이런식은 아니였었다.자료 챙겨 손에들고 회의실 향할때 가슴의 두근거림.....세차다는 표현은 그렇지만.....상준이와 둘이만 마주 대한다는 거에 약간의 기쁨도 있었다. 오랫만에 찾아든 그 따뜻한 설렘이 잠깐 가슴에 머물렀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자료을 훝어보는 상준일 보고 있을때......입가에 절로 지어지는 미소를 애써 숨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그런데........늘 행운은 날 비켜 간다는 공식을 내가 깜박하고 잊었나 보다. 내겐 셀리보다 머피가 어울리는데.....그걸 난 순간에 잊어 버렸나 보다.

 

상준이의 질책은 맞는 얘기였지만........너무 슬펐다. 회사가 자선단체도 아니라는.....안일한 생각만 하고 시간떼우는 사람........생각좀 해봐야 겠다는......그모든 말이 뾰죡한 송곳이 되어 날 찔러 됐다. 첨 대면하는 내게 .......이렇게 모질고 독할수는 없다는 생각......이러는거 보면 난 아직도 정신이 덜 들었나 보다.......자조적인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공과사는 엄연히 구별 되어져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약해빠진 이여경 이라니......화가 났다. 이렇게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는 난.......싫었다. 버려야 할 것이라면 빠른 시일안에 버려야 한다.썩어서 형체도 알아 볼수 없게 방치 해 두면......결국 온 사방으로 다 퍼져 가버리는 독소가 될테니......아프지만.......잘라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때 가차없이 잘라야 하는법.....그래야 한발 앞으로 정진하기가 쉬우니까.

 

내 개인적 사생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자격 없지만......팀장이니까 부하직원의 좋지 않은 추문은 듣기 싫다......맞는 말이지.....그래 맞는 말일것이다. 하지만......그말이 왜 이리 내 속을 긁으며 아프게 하는건지......마치 그말은 이제 난 네게 관심 없다는 말로 들리는건 뭔지.....그래서 지금껏 내게 연락한번 하지 않았던 거구나.....괜한 기대에 밤낮으로 예민하게 안테나 세우고 있었던......내게 돌아온건......비참한 절망감 뿐이였다.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일부러 눈가을 세게 문지르지 않았다. 울었다는 흔적 남기면 안되니까......수건으로 꾹꾹 눌러 눈의 물기를 없앴다. 그래도 잘 보면 운 흔적은 보이지만.....그래도 고개 숙이고 있음 괜찮지 ......그래 오늘 하루 종일 목에 쇠로된 추를 달고 있자. 목이 부러질 만한 커다란 추..........내안의 모든 ......신경이라는 녀석을 모두 잡아 꽁꽁 묶어 버려야지. 그래야 ......한발 앞으로 나가기가 쉬울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