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서 내린 성주는 상준이에게 날 바래다 준거 라는 말만 하고는 사라졌다.
화가 나 있는 것 처럼 보였던 상준인 생각과는 달리 성주의 말에 선선히 고개만 끄덕였다.
괜히 차에서 내리면서 쫄았던 난......순간 맥이 풀리는 기분이였다.
룸 안으로 따라 들어오는 상준일 보며 으례적인 얼굴 찌뿌리기를 한번 보여주었다.
이젠 이력이 났는지.....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상준 이였다.
계속 꼴이 우스워 지는 요즘 이였다.
습관이 붙은 일......가스대 위에 불을 켜고 찻 주전자을 올렸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하루도 빠짐 없이 허브차를 마셨다.
레몬밤 나무에서 추출했다는.....민트향이 가미된 노란색의 차......
쌉쌀한 맛과 달콤함......시원한 민트가 입안을 개운케 해주는 차이다.
샤워후나 따뜻한 목욕후 자기 전에 마시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며 상준이 권해준 차다.
예쁜 칼리 꽃이 그려진 하얀 도자기 머그컵.......
백화점 그릇 매장에서 내가 산것이다.
첨으로 ......전문 그릇 매장에서 구입한 컵......그때의 설렘이 컵을 볼때마다 가끔씩 떠오른다. 너무 감격하는거 아니냐는 상준의 놀림에도 감정 상하지 않을 정도로.....컵이 맘에 들었다. 두개가 한쌍이라서 셋트로 구입했는데......상준인 그 컵이 늘 자기를 염두해서 산 거라며 혼자 추측하고 좋아 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반박은 하지 않고 있지만......긍정도 하지 않았다.
"늦은 시간인데........일어나지 그래....?"
차를 타서 앞에 앉았다.
상준인 물만 한잔 달라고 해서......유리컵에서 생수를 따라 앞에 놔 두었다.
다리를 앞으로 모아서 쭉 폈다.
몸의 모든 세포가 발끝으로 내달리는 기분.......시원했다.
팔도 들어 크게 기지개를 펴고 싶었지만.......상준이 보고 있기에......관두었다.
상준이 날 보며 피식 웃었다.
눈이 작게 스마일 모양을 지었다.
보기 좋은 미소......애써 못본척 시선을 돌렸다.
자꾸 보면 정들것 같고.....영영 잊지 못할 것 같기에.......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기에......얼굴 마주 대하기가 ......힘든 요즘 이였다.
"성주가 늦으면 가끔 데려다 주는 거야....?"
"아냐....오늘 첨 있는 일이야...."
"....그래......과외 마지막 이니까......오늘이 첨 이자 마지막 이였겠다......"
".....뭐.....?"
상준이 말에 금방 고개가 들려 졌다.
오늘이 과외 마지막 날.......?
알고 있는 건가 ......?
내가 행하고 있는 요즘의 일들에 대해 다 알고 찾아 온건가......?
순간 가슴속의 떨림이 날 불안케 했다.
"알고 있었던 거야....?그래서 온거야....?"
먼저 치고 들어가기로 했다.
가슴의 떨림을 애써 멈추면서 ......난 그렇게 물었다.
상준인 말 없이 고갤 끄떡였다.
뭐지...?
화가 난것 같지도 않고......놀란것 같지도 않아.........뭐지.....?
상준이의 행동은.........이상했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모습을 내게 보여 주고 있었다.
내 행동에 대해서......궁굼하지 않은건가.....?
이유를 물어 오지 않는 이유가 뭔지........
"얘기 들었지.....?우리 어머니 영국 나가신거......"
"..................."
".....나도 들어 가기로 했어......다음주에 나갈꺼야....."
"............"
가슴에서 뭔가가 큰 것이 떨어졌나 보다.
아픔은 없었지만......여러개의 바위덩이가 쿵하고 자꾸 떨어지는 느낌......
가슴의 울림이......소리가 되어 나올까봐.....겁이 날 만큼.......내 안의 울림은 컸다.
"한 5년 안들어 올 생각이야........원래는 대학 졸업하고 천천히 갔다 오려고 했는데.....어머니가 많이 아프셔......마지막 갈때 보고 싶은 얼굴이 나였으면 좋겠다.....그게 우리 엄마 소원 이란다......치......철부지 떼쟁이라고 놀리기나 하면서.....결국 날 늘 그렇게 철없는 아이로 만드는게 우리 어머니야......너 한테도 그렇고......어머니 에게도 그렇고......난 늘 떼나 쓰는 어린남자 앤가 보다.....의젓해지려고.....나름대로 강해지려구.....진짜 남자가 되려고 애쓰는데.....결국 폼이 였나보다......말하다 보니까.....정말 맥빠진다......."
한 5년 안들어 올 생각이야.........
그때 부터 내 귀는 .....꽁꽁 닫혀 버렸나 보다.
그 뒤의 말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두귀가 모두 동시에 문을 닫아 버렸나 보다.
"잘 됐네.....사모님 많이 편찬으셔 보였는데.......어차피 갈거 였으면 일찍 갔다 오는게 낫지 뭘.....잘 됐다......가서 공부 열심히 잘 하고 와...."
감정 다스리기 천재.......그런 대회에 나가면 틀림없이 장담 하건데.....일등을 먹을 수 있을것이다.
감정 숨기기......공기를 들여 마시듯이.....아주 쉬운 일인걸.......
비워진 찻잔을 들고 일어섰다.
아무렇지 않은척.....등을 돌렸다.
개수대에 찻잔을 내려 놓았다.
서 있기가 힘이 들어 식탁의 의자를 빼고 앉았다.
아니 앉으려고 했는데......미처 앉지 못했다.
언제 다가왔는지......상준이 등 뒤에서 날 안았다.
한번도 이런적 없는 상준이였다.
그때 그 어줍잖은 첫 입맞춤 이후로 상준인 내게 손을 데지 않았다.
흔하게 이뤄지는 손잡는 일도 없었다.
친구로 시간을 두고 다가서겠다는 상준이였다.
절대 내게 감정을 강요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겠다던 상준인 지금껏 약속을 지켜왔다.
날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
내가 곤란해 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약속.......
그래서 가끔 화가 날 정도로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는 상준이였다.
정말 여자친구처럼.....아니 여자친구보다 더 내게 거릴 두려는 상준 이였다.
자기 감정은 순전히 자기 책임 이니까......날 곤란하지 않게 하겠다는 상준이였다.
그저 가끔.....날 물끄러미 보는 정도......
그것도 정면이 아닌....내가 무슨일을 하거나 일에 몰두 해 있는 뒷모습 이였다.
비록 등을 돌리고 있긴 하지만......난 상준이의 시선을 고스란히 느낄수 있었다.
마주 대하며 고갤 돌릴 만큼의 용기가 내게 없었지만.....상준이 날 보고 있다는 느낌은 확연히 느낄수 있었다.
"부탁하나 할께......아니 부탁이 아니라 애원이라고 해야 겠다. 너 한테 떼쓰거나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 했는데......지키지도 못할 약속 겁도 없이 해 놓고 이런식으로 허물어지는 내가 나도 싫지만.......그래도 꼭 말해야 할것 같아......아님.....내 속이 터져 버릴것 만 같아.....뱉어내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들어줘 이여경......마지막 부탁이 될지도 모르니까..."
웬지 애절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평소의 상준인 이런 사람이 아니였는데......
고갤 돌리려는 날 세게 다시 잡으며 상준이 말했다.
"일주일만.....네 시간을 내게줘......더는 바라지 않을께.......딱 일주일 이야.......너와 함께 있고 싶어.....하루 종일 너와 있고 싶어......"
"뭐.......?"
"......5년이든 1년이든......그건 중요하지 않아......네 맘을 얻지 못하고 떠나는건.......내겐 끝이 보이지 않는 블랙홀에 빠지는 거와 같아.......맘은 아니더라도......널 눈에 담아 가고 싶어......"
"무슨 소리야.....그.....게....."
"언제든지.....틈만 보이면 내게서 등 돌려 달아 나려고 하는 너.......나와 시선 마주치는 것 조차 내켜하지 않아 하는 너.....내게 있어 넌 .....뜨거운 사막에서 부는 뜨거운 바람 같아.....그래서 늘 널 보면 난 가슴이 답답해......늘 목마른 사막의 식물 처럼.......한줄기 비를 그리는 마음......넌 내게 그런 존재야......쉽게 포기가 안돼........."
웬지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내가 상준이에게 모질게 ......차게 냉정하게 대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상준이가 저런 식으로 느끼고 있는줄은 몰랐다.
정말 나쁜 기집애.......내가 저렇게 독하고 찬 기집애 라니.......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였다.
"일주일 이야.......그 정돈 해 줄수 있겠지......?함께 지내자고 해서 지금까지와 다르게 지내자는 말은 아냐......지금 처럼 .....친구 처럼....그렇게 지내....너한테 바래는건 없어.....다른 오해나 걱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널 많이 보고 싶다는 바램이니까......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그렇게 네 모습 담아 갈께......이정돈 해줄 수 있지....?"
"너......참....웃긴다. 뭐 어디 죽으러 가니.....?마치 영영 못 볼 사람 마냥......먼길 떠나는 사람 마냥...."
"너 나 영국으로 떠나면......어딘가로 숨어 버릴꺼잖아......내게서 영원히 숨어 버릴 꺼잖아.....안그래.....?내 말이 틀려......?"
뭘까.....?
상준이 음성 끝에 묻어 나오는 건.......
울림이 있는것 같다.
호흡이 매끄럽지 않게 나오고 있는것 같다.
내 귀에 이상이 있는 걸까......?
왜 상준이 목소리 마디 마디 에서 슬픔이 느껴지는 걸까.....?
내게 둘렀던 팔을 푸르고 상준이 몇발자국 돌아섰다.
감히 등을 돌려 볼순 없지만........내게서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상준이 어깨가 아래로 축 쳐져 있었다.
울음을 참고 있는 걸까......?
정말 그런걸까......?
상준이가......?
지금 그런걸까.....?
순간 눈물이 나왔다.
소리가 되어 나오진 않았지만......입술을 앙 다물고 있으니......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타고난 연기자 아닌가........
"마지막 부탁 이라고 생각하고.......들어줘.....여경아.....제발 이번엔 내치지마......널 내게 달라는 얘기가 아니잖아......그냥.....집안의 가구처럼.....그렇게 내 곁에 있을께......아무것도 욕심내거나 하지 않을께......"
"그만해......!!!!너 지금 뭐하는 거야?영화 찍어?신파극 연극해.....?그런 거야...?"
정말 그랬다.
내 모진 말에 날 보는 상준이 눈엔......투명한 이슬이 달려 있었다.
내 말끝 하나에 후두둑 떨어지는 그 방울은.......투명한 눈물 이였다.
남자가.......스무살이나 먹은 남자가........
맘에 드는 장난감을 엄마가 못사게 해서 속이 상한다는 얼굴을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상준이 그래 보였다.
야단만 내내 맞다가 그래도 포기가 안되어서 속을 긁거대는 감정에 자신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떼쟁이 남자아이.......상준이가 그래 보였다.
윽박지를수 밖에......다른 뾰죡한 수가 없는 엄마가 되어 버린 기분......내가 그랬다.
이미 안된다고 했는데......저런 얼굴로 보는 아이에게 그만 맘을 들켜 버린 모정.....내가 그랬다.더는 윽박 지를 수가 없었다.
더는 상처를 줄 수 가 없었다.
내게서 눈물을 보이고 있는 상준이 모습이 화가 났지만.....저렇게 허물어지는 모습 보이는 상준이가 밉고 화가 났지만......난 소리 칠 수가 없었다.
가슴이 아팠다.
쉽게 내주지도 받아 들이지도 못하는 모순을 가득 안고 사는 나 이기에......내가 그어논 선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는 나였기에.....난 중립을 지키기로 했다.
상준이 내게 등을 보이며 문 쪽으로 나섰다.
신발에 발을 끼우는 상준일 보며 난 체념하듯 말했다.
"언제 들어 올껀데......?정확히 언제 가는 건데........"
상준이 어깨가 멈칫 했다.
돌아다 보는 시선이 눈물로 젖어 있었다.
정말 가슴이 너무 아팠다.
떨어지려는 눈물 탓에 난 고갤 숙였다.
"내일 부터 난 시간 있어......학교도 과외도 모두 끝났거든.......지금 부터 래도 괜찮아......"
".....이....여경......"
"........그렇게 고마워 할 거 없어.......이건 ...지금껏 네게 지고 있는 빚을 갚는 거니까.......언젠가는 이 빚을......"
"됐어....더는 말하지마.......어떻게 말해도......난 고마우니까......."
"........."
".....내일 아침에 들어올께.......아침 시간에 맞춰서......네게 부담 되는 일은 하지 않을께.....널 곤란하게는....."
"됐어....그만해......그럼 잘가........."
정말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착해 빠진 녀석.....
내 말이 상처가 되는 줄 알면서도......꿋꿋이 버텨 내더니.......
여직도 ........저러니 .....저런 성격이니......좀만 건드리면 넘어가는 내 맘 하날 못 붙잡지......손만 까닥 하면 쉽게 넘어 갈지도 모르는데......바보 같은 녀석.....둔치......같은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