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인이가 다녀간 오후 였다.
방 바닥에 온통 과자 부스러기다.
끼니는 소량으로 떼우는데.......주전부리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게가 나가는 것들은 아니지만......하긴 살이 안찌는 거 보면 알수 있지...
얇고 가느다란 프링글러스......큰 걸로 3개....각가지 맛을 다 사들고 와서는 통을 탁탁 털어대며 다 먹었다.
그 부스러기가.....온 바닥에 쫙 깔렸다.
격주 쉬는 토요일 휴일에 연락 없이 찾아 와서는 우동 끓여서 먹고 지금까지 빈둥 거리다 갔다.
영인이 오고가면......방은 더러워진다.
어지럽히는 장점과 치울줄 모르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했지만......정말 잘 어지럽히고 못치운다.
걸레을 빨아 던져주면........마치 물감으로 길을 내듯 걸레가 지그재그로 지나간 자리가 확연히 드러나게 치운다.
왕비 팔자는 이래서 어쩔수 없나봐.......말이나 못하면 밉지는 않지.....으휴.....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는듯 했는데......아무말 못하고 그냥 갔다.
어제 퇴근후 만나기로한 현수는 영인이 혼자 만났다.
난 팀장에게 붙잡혀서 일에 대한 진척 상황 보고 하느라 나가지 못했다.
사실 현수가 내게 무슨말을 할까 조금은 궁굼했는데.......
아마도 상준이 얘길 할것 같았는데.......조금은 나가기가 꺼려 졌지만.....그래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는데.....일이 묘하게 꼬여 버렸다.
방을 훔치며 잠시 앉았다.
이젠 제법 바깥의 날씨가 찻다.
12월로 접어 들었으니......
영인이 온다고 높여놨던 보일러의 온도을 아래도 내렸다.
너무 더운건 질색이다.
몸이 나른해지고 머리속도 데워지는 그런 느낌.....좋지 않다.
약간 찬듯한 공기.....그게 좋다.
영인인 내방에 들어오면 보일러 온도부터 올린다.
몇달치 가스비 자기가 내겠다며.......올때 마다 내가 먹을 일용할 양식을 사온다.
거의 인스턴드 지만........사실 요긴하게 쓰인다.
그러지 말라고 인상을 쓰는데도......고집센 아이짓을 하고 있다.
전엔 회사에서 슬쩍 했다며 자가드로 만든 작은창에 쓰이는 커텐을 가져왔다.
시트지을 발라둔 창에 잔체크가 있는 바이올렛색의 커텐........방안의 썰렁함이 많이 나아졌다.
작은 스탠드.......예쁜 머그잔.....차를 마실수 있는 작은 콘솔바도 가져다 주었다.
몇개의 작은 물건들이 좁은 내 방에 쌓이고 있었다.
이제 더는 그만........내 한몸 누이기도 좁은 방이니까.....그만 가져오라고 했다.
겨우 5평 남짓.......그안에 책상이며 작은 옷장......살림이라고 해봐야 그제 전부지만.....
그 흔한 티브이도 없냐는 영인이 말에.......전기세와 시청료 아낄려고 안본다고 대꾸했다.
금방 영인이 돈 벌어서 다 뭐하냐고 .......그말이 날아왔다.
얼마전 부터 아빠의 병원비를 혼자 대고 있었다.
첨은 올케[?]말처럼 ......그냥 모른체 할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입원비를 반만 부치고 있는 어느날 내게 비디오가 한편 왔다.
전쟁 포로 수용소 같은 ......그런 곳에서 아빠가 바싹 야윈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내게 호소를 하고 있었다.
얼마전 부터 몸이 않좋은데.....약값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병원측의 악랄함......그땐 그런 생각 뿐이 안들었다.
아빠에 대해......애틋한 감정은 없지만......그래도....내 피붙인데.....난 쉽게 외면할 수 없었다.
오빠의 몫도 내가 부치고 있었다.
무리해서 들었던 적금은 이제 얼마 안남았다.
지금 해약하면 손해가 많아.......그냥 두고 있는데......아마도 그 돈의 주인도 내가 아닌것 같다.두달전에 딸아일 났다는 오빠에게 전화가 왔었다.예정일 보다 일찍 나온 아이가 몸 상태가 안좋은것 같아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병원비가 만만치 않다며 내게 여유자금이 있으면 융통을 좀 해달라고 했다.내게 돈 나올 구석이 어디 있다구.......염치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것 같았다.
근 3년을 부어 천만원 좀 넘게 타는 적금은......전세 자금을 모은거였다.
여기 이방은 너무 좁고.....옥탑방이라 겨울엔 많이 춥다.
원래 창고로 사용하려고 만든 방이라 보일러 시설이 없었다.
바닥 공사를 했다고 하지만......열선이 제대로 깔려있지 않아서 인지......불이 전체적으로 들어오지 않고 군데군데 들어와.......온도를 높여도 .....미지근한 수준이다.
아무래도.....이번에도 이사는 힘들것 같았다.
오빠에게 그리고....올케라는 사람에게서 몇통의 전화를 받았는데.....생각보다 사정이 다급한것 같았다.병원비는 알아서 하라고 하고.....월세인 방을 전세로 먼저 전환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없는 살림에 월세로 매달 나가는 돈이 더 힘들고 빚이 될 수 있으니......마음을 비우기로 했다.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적금을 내주기로 했다.
아일 키우면서 월세로 사는건.....더 힘들테니.....전세로 방을 전환 시켜 주고 싶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엄마가 오빠에게 만약이라도 도와 달라는 전화가 오면 딱 자르라는 말을 들었지만.....이번이 마지막 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도와 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난 그래도 꾸준히 나오는 월급이 있으니 오빠보단 나은 형편이니까........혼자 그런 자위를 하지만......마음 한쪽은 좀 씁쓰레 했다.
하지만 이번이 정말 마지막 이였다.
더는 내게도 여유가 없다.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처럼 아빠의 병원비가 늘 따라 붙으니까......아마 내 평생의 짐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