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매일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갔다.
좀 바뀐게 있다면 영인이가 온뒤로 난 매장에 거의 내려가지 않고 있었다.
며칠전 영인이가 한말 탓이긴 하지만.....팀장도 내가 매장에 내려 가는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것 같아......일이 있지 않음 내려가지 않았다.
정숙이와 양희에겐 저녁 퇴근후 만나서 매장에 내려가지 못하는 거에 대해 대강 둘러 댔지만....다른 매장 식구들은 내가 내려오지 않자 말이 있는것 같았다.
며칠전 퇴근후에 잠깐 드른 양식집에서 후식으로 나온 커필 마시며 영인이 내게 말했다.
"너말야....이런 얘긴 굳이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그냥 넘어 가기만 해서는 안되는 일 같아서 말해두는 건데......."
말끝을 흐리며 잠시 날 보는 영인이였다.
영인이 다니는 단골집은 일반의 음식점과는 달리 후식으로 인스턴트 커피를 내지 않는다.
손님의 취향에 따라 그때그때 주문에 따라 바로 커필 갈아서 내왔다.
그래서 일까....?
향이 강한듯 은은하고.....커피의 깊은 맛과 부드러움이 혀 끝에 금방 스며들었다.
한번에 마시기엔 너무 아깝고 아쉬워서.....난 띄엄띄엄 일부러 한모금씩 입에 넣고 음미하듯 마셨다.
커피의 부드러움에 혀을 맡기고 맛을 음미하고 있는데 들리는 영인이 말에 난 입안에 커필 금방 식도로 내려 보냈다.
그 표정을 보고 영인이 기막힌듯 잠깐 입술을 찡그렸다.
밉지 않게 콧 잔등에 주름이 약하게 잡혔다.
"너 우리 회사에 들어올때......디자이너로 들어왔지...?"
"응....."
"근데.....지금 너 하는 일이 뭐야.....?내가 잠깐 알아본 바로는 너....입사년도 에만 작품 몇개 있고 그 뒤로는 전혀 없던데.......왜 그런거야...?"
갑작스런 얘기에 난 말문이 막혔다.
내가 회사 들어온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정말 그랬나......?
내가 디자이너로 들어왔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맞다......난 분명 디자이너로 회사에 입사했지.......
근데 영인이 내게 말하려는게 뭔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넌 분명 디자이너로 입사 했는데 작품은 안내고 늘 매장 관리만 하고......소속이 어딘지 그것도 불분명하지....?"
그랬나......?
내 소속이 이층 사무실 이긴 하지만......글쎄....
"좀 잘 들어봐.....너 분명 디자이너로 여기 입사했지...?"
"응......"
목소리에 힘이 없다.
"근데 왜 본연의 일은 하나도 않고 매번 너완 상관없는 매장일에 신경을 그렇게 곤두세우고 있는거야.....?네가 할일은 매장의 코디나 디피도 아닌데......더구나 판매직은 더욱 아니고....디자이너가 판매며 매장의 모든 일을 총괄해서 하는 작은 회사도 아닌데......왜 네 전공과는 다른곳에 신경을 쓰고 있는거야....?"
"그건......"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도 이젠 가물가물하지......?"
"......"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정말 그랬다.
난 분명 디자이너로 들어 왔는데.......어쩌다 매장에 내려와 있었는지 몰랐다.
누군가 시켜서 한 일은 아닌것 같은데........언제부터인가.......난 늘 매장에 있었다.
그편이 더 편하고......익숙해서 였는지.....
"위에서 네 디자인 받아 들여지지 않아서야?너 보니까 입사하고 나서 6개월만 열심히 그려내고 그 뒤로는 전혀 없더라........어떻게 된거야....?"
영인이 얘기에 난 ......갑자기 기분이 다운이 되었다.
이제야 생각났다.
지금 팀장이 오기전에 있었던.....팀장.
우리 디자인 팀에 그 분의 학교 후배가 두명이 있었고........둘다 4년제 대학 출신이였다.
날 제외하고 있던 다른 한명도 4년제 출신이였고......전문대는 나 하나 였다.
첨 팀장은 연수를 끝내고 발령받고 들어온 날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 이였다.
어떻게 전문대 출신이 여길 들어올수 있었느냐는 얼굴이였다.
사실 나도 합격 한게 믿기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그냥 지도 교수님이 추천해준 대로 원서를 집어 넣고 필기시험 보고 면접보고......순탄하게 들어온거였다.
같은 대학의 동기들은 모두 떨어졌는데 혼자 붙은 거였다.
입사후 일을 배우고나서 3개월이 후딱 지나고 처음으로 작품을 냈다.
십대 여학생들 겨냥으로 내놓은 캐릭터 디자인 이였는데.......내 디자인을 보면서 기막혀 하던 팀장의 얼굴들......못마땅하다는 표정이 그래도 드러난 얼굴이였다.
그 후로도 몇번 난 팀장의 그런 얼굴을 대했고.......나중엔 같은과 직원들에게 조차 ....한심한 아이로 보여진다는걸 알게 되었다.
첨엔 자존심도 상하고......화도 나고 했지만.......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늘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에 내 생존이 걸려 있어......난 사표를 쓸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부터 였을까...?
난 우리 디자인과의 궂은 일을 하게 되었다.
누가 시킨게 아닌 자의로........그게 매장 관리에 어중간하게 들어온거였다.
영인이 앞에서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넌 보면.......고교땐 안그랬던것 같은데......많이 약해졌어......그땐 강하고 가끔 보면 독기까지 품어져 나왔는데..ㅋㅋㅋㅋ......"
쏘는 내 시선에 영인이 큭큭 거렸다.
그때 내가 정말 그랬을까.....?
기억이 아스라 했다.
"암튼 이제 부터라도 네 본분을 찾아.....매장일은 매장 직원들에게 맡기고 전공 살려서 디자인 일에 몰두해봐.....늦지 않았으니까.....?"
"갑자기 그게 될까.....?안하던 일을 하라는건.....말 처럼 쉽지 않아...."
"너 말야......요즘 우리 회사가 문구류 에서 뜨고 있는 못생긴 생쥐 시리즈......원안이 어떤건지 알아....?"
"......"
"몰라...?본적 없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문구류 에서 손 뗀지 오래되나서......그쪽은 거의 보지 않고 있었다.
"정말......단순하게 살기로 작정을 한 사람답다......."
"무슨얘긴데.....빙 돌리지 말고 속 시원히 얘기해봐......"
"인테리어 쪽이라 그쪽으로 관심을 두지 않을 수 도 있긴 하겠다마는......어떻게 자가 작품도 못알아 보는 거니....?학교앞이 아니라도 시내 곳곳에 쫙 깔려 있는데......."
"무슨 소리야....?내 작품이라니......?"
정말 깜짝 놀랐다.
생쥐시리즈......?
기억에 없다.
영인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거 아닌지......?
"자료실에 가봐......하긴 여긴 없겠다.본사 자료실에 있으니까......나도 얼마전에 팀장 통해서 얻어 봤으니까......너 예전에 같이 일하던 직원중에 한유미 라고 있었지....?"
"응.....3년전에 본사로 들어갔는데....."
"그 한유미씨가 제 작년에 이 생쥐시리즈로 회사에서 해외 연수 다녀 왔잖아. 전에 있던 고 경희 팀장 조카잖아.둘이 쿵짝이 잘 맞은거지......암튼 우리 팀장이 널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내게 그일을 알려 주더라구.......이래도 생각안나.....?"
영인이 얘기에 난 머리속이 어지러웠다.
생쥐 시리즈라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영인이 얘긴 한유미가 내 작품을 가로 챘다는 얘기 같은데.......정말 기억에 없었다.
"벌써 4년도 더 된 얘기니......더구나 포토폴리오에 있었던 작품이였으니 기억이 날리 없겠지,......암튼 집에가서 잘 생각해 보고....이제부터 라도 네 본분을 찾아.....위에서 연수를 보내고 싶어도 명분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매번 매장일 이나 보는 직원을 위해서 투자하는 회사는 없잖아....?안그래....?"
고개가 숙여 졌다.
그렇지....
매장관리......것도 점장도 아닌.....거의 판매직에 가까운 사람을 연수까지 보내주며 내 사람 만드는 회사는 없지......판매직은 늘 들쑥날쑥 하니까.......투자할 필요가 없다.
그일 이후로 난 매장에 내려가는걸 삼가하고 있었다.
영인이 뭐라고 언질을 했는지 팀장이 내게 이번 겨울 상품에 대해서 도안을 그려내 보라고 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벌써 몇년을 놀았는데......갑자기 전문적인 일을 하려고 드니......한편 반가운 맘도 들었지만......걱정스런 맘이 더 강했다.
내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내본게 언제적일인데........가슴이 설레이기도 하고......겁이 나기도 했다.
침구셋트를 해보라는 팀장의 제안이였다.
영인이 내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슬를 보여주겠다고 했지만.......갑자기 내려온 일에 난 허둥대고 있었다.
빨리 .......마음을 다 잡아야 하는데.......아직도.....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