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랑. 그 마지막 에필로그 그 사람, 병환이 아니길 혜란은 난생처음 하늘에 기도를 했다. 그것은 외로움과 고독함과 서러움과 삶의 지난함과 절망과 희망과 그리움이었다. 혜란은 병환의 무덤 앞에 서있다. 비가 내린다. 가을비다.
전화가 울렸다.
병환을 닮은 어린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때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 혹시 혜란 씨라고 계십니까?"
"네 ,전 데요?"
"여기는 한길 병원인데요, 지금 교통사고 사망자 한사람이 들어왔는데요
다른 건 없고 혜 란 이라는 한사람 전화번호밖엔 없어서..."
"혹시나?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네? 누군 데요? 어떻게 생긴...?"
"40대 초반 같기도 하고 30 대 후반 같기도 하고 키는 1미터 70이 조금 넘는 거 같아요."
덜 컥
혜란의 가슴에 순간 무서움이 덮쳐온다.
온몸이 떨려온다.
설마, 아니다, 그 사람일 이가 없다.
설마. 설마 하면서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정말 그 사람이면 어떻게 하나. 왈칵 가슴이 찡하면서 눈물이 흐른다.
안 된다. 안 된다.그 사람 얼마나 힘들게 세상을 살았는데. 그럴 순 없다.
그가 전생과 현생에 얼마나 지은 죄를 많았기에... 안 된다. 이렇게 허망하게 보낼 순 없다.
병원에 혜란이 도착한 것은 얼마 후다.
안내되어 이른 곳엔 하얀 시트를 덮고있는 시신의 앞이었다.
경찰관이 시트를 서서히 걷었다.
왈 칵
혜란은 할말을 잃어버렸다.
아니다, 그가 아니다,...
아냐, 안 일거야. 그는.... 그는, 저 사람이......
병환은 이미 싸늘히 식어버렸다.
그는 세상에서 인연을 지우며 그렇게 누워있었다.
그가, 가버렸다.
혜란은 병환의 시신 곁에서 한없는 설움을 쥐고, 울고있고
그런 혜란의 등뒤엔 아이를 안은 수 현의 어머니가 또한 울고있었다.
의사가 내민 손엔 두 권의 노트가 들려 있었다.
한 권은 병환의 시가 적혀있고 또 한 권은 병환의 일기장인 듯 보인다.
일기장엔 아무것도 씌어있지 않았다.
오직 한사람의 이름만이 적혀 있었다. 백지 가득......
유 혜 란. 柳 惠 蘭 유 혜 란......
작은아이 병환의 손에 잡고......
그 사람의 아이, 병환의 아이.
그 아이 또한, 이름이 병환이다.
그리운 탓에. 아물지 못한 흉터로 남아있을 크나큰 사랑의 상처 때문에......
낙엽들이 빗방울을 머금고 떨어진다.
이 비 그치면 겨울이 올 것이다.
계절을 쥐고 가는 사람,
계절을 남기고 간 사람.
그는. 아직도 내 가슴에 못다 핀, 한 송이 가녀린 사랑의 꽃으로 남겨진
이름이다.
병 환, 吳 炳 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