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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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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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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저 깊은 바다


BY 강지산 2004-02-04

                                                                 강 지산


오른손으로 핸들을 잡고 왼손으로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누른다.
신호음이 두어 번 울리고 저쪽에서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여보세요"
조금은 힘이 없는 듯 낮은 목소리다
"저...,병환이 입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병환이?"
"네"
"정말, 정말 병환이 맞아?"
"병환이 맞는 거지? 병환이..."
여자의 음성이 빨라지며 목이 메인 듯 계속된다.
"병환이 ,당신, 당신이 병환이, 정말 병환이 맞는 거지?"
"네! 나..병환이에요"
"병환이, 내가,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어"
"왜, 왜 이제야 전화를 하는 거야"
"내가 얼마나 ,내가 얼마나 힘들게 기다렸는데..."
병환의 수화기 저쪽에서 여자의 서러운 봇물이 터지듯 흐느끼고 있다.
"병환 씨, 지금 어디야? 어디서 뭐하고 있는 건데? 어디 있었는데?"
"내가 얼마나 걱정하고 얼마나 보고싶어 하는 거 다 알잖아".
"어디서 뭐하고 지냈어?"
여자는 끝이 없이 물어온다
병환은 여자의 말을 끊고 얘기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이 없을 거 란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배고파요"
"지금 어딘데 내가 금방 갈게, 어디야?"
"인천, 아니 인천으로 가고있어요,,
"인천? 인천 어디? 내가 갈게"
"인천 대 공원 요"
"대공원? 그래 알았어 거기 있어 내가 금방 갈게.,,"
"그래요, 알았어요"

"근데 어디서 뭐한 거야?"
"후 후 후"
"또 웃기만 할거야?"
"빨리 오기나 하세요 나, 배 많이 고파요"
"응, 알았어 그래 금방 갈게"
"먼저 끊으세요"
"그래, 그럼 조금만 있어 금방 갈게"
"네"
병환은 전화를 내려놓고 자동차 카세트의 볼륨을 높였다.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있다.
모차르트의 아다지오 클라리넷 협주곡이다.
병환이 가 즐겨 듣는 음악이다.
언젠가 병환이 가 직접 녹음해서 듣고있다.
수십, 아니 수 백 번을 들었을 곡이다
이 곡을 들으면 병환이 는 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문득, 혜란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2년쯤 전인가. 부산에 출장을 가던 길에 고속도로 한쪽 갓길에
까만 승용차 한 대가 서있고 곁에 어떤 여자가 손을 흔들며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조금 어두워지고 지나는 자동차들이 미등 을 켜고 달렸다.
문득 병환은 도와줘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차를 새우려고 했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 70미터쯤 지나 겨우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왜 그러세요?"
"차가 고장인가요?"
그녀는 20대 후반쯤 보이고 보통 키에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네"
"갑자기 시동이 꺼졌어요"
"고마워요, 차를 세워줘서요"
"아닙니다. 당연히 도울 수 있으면 도와줘야 하죠"
"어디 한번 볼게요"
전에 병환은 낡은 차를 가지고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 자동차가 자주 고장이
나는 바람에 속을 많이 썩힌 탓에 정비 학원을 다닌 적이 있어서
간단한 고장은 볼 수 있었다.
"차는 새차네요?"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고급 차종이었다.
"네 새차가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잠깐 제가 볼게요"
운전석 시트에 몸을 던지며 키를 돌려본다.
키 르 르 륵
계기판을 쳐다 본 병환은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