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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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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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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 일 향 2004-02-02

 

“ 엄마, 배고파.”

“ 나두,”

아이들이 손을 씻는 동안 미연은 접시에 막 쪄낸 송편을 담았다.

함께 먹을 포도와 배를 깎아 거실탁자에 놓자마자 아이들이 달려들었고,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어느새 저녁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 쌀을 안치고 나자 다시 초인종 소리가 들렸고, 아침에 성묘 갔던 식구들이 돌아왔다.

조용했던 집안은 다시 시끌벅적해졌고 미연과 경옥은 오후내내 주방에서 분주하게 보내야 했다.

저녁을 먹고 집안을 대충 정리한 뒤. 미연과 경옥은 산책을 나가자고 사인을 주고 받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오자. 바깥공기가 제법 시원했다. 흐린 하늘에선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져내렸다.

그리 많이 올 비는 아닌 듯 보여, 우산 없이 운동장을 향해 걸어갔다.

명절이라 분주해진 주부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고, 간간히 반바지를 입은 남자들 몇이 운동장을 뛰다가 어둠에 묻혀 사라졌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운동장은 다른날보다 어둡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미연은 낮에 듣다만 경옥의 이야기를 빨리 듣고 싶었지만, 일부러 재촉하진 않았다.

이런 미연의 마음을 눈치 채기라도 하듯 경옥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 지금까지 날 지탱해준 힘이 있다면 바로 그 오빠라고 할 수 있어. 그를 만나기 시작했던 건 가슴속에 품어왔던 첫사랑이기도 했지만 그가 내게 한 말 때문이기도 했어.

 내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오겠다고. 애니타임 날 기다리겠다고...... 그말이 얼마나 듣기 좋았는지 몰라.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지.“

“ 그 마음 이해할 것 같아요. 형님.” 그순간 미연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 까다로왔던 아영이 키우느라 지쳐 있을 때, 그는 날 불러내 향기가 있는 카페에서  차를 사주었고, 봄에 벚꽃이 필때면 전화를 걸어  경옥아! 꽃잎이 눈처럼 날리고 있어, 빨리 와  라고 말하며 날 불러냈지. 그는 언제든 내가 부르면 달려오겠다고 했지만 정작 내가 부를 틈도 주지 않고 먼저 불러내곤 했어. 정말 꿈같은 나날이었어. 아영이 아빠는 그 뒤에도 몇차례 바람을 더 피우며 내 가슴에 깊은 상처를 냈지만 내 옆엔 늘 그가 있었기에 난 견딜 수 있었어. 그런사실들을 한번도 그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내가 힘겨워할때면 날 찾았고 표나지 않게 상처를 쓸어주곤 했어.”

검은 하늘에 희끗희끗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경옥은 잠시 침묵했다.

”멋진 애인을 가진 형님이 부러워요.“

갑자기 빨라진 걸음에 숨이 찬 미연은 헐떡이며 말하자 경옥은 근처에 놓여있는 나무벤치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 조금만 쉬었다 걸을까? 내걸음이 빨라 동서 힘들거야.”

“ 녜, 좀 힘드네요, 쉬었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