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열등감에 빠져있던 경옥은 교회에 발을 끊었다.
그러나 희숙이를 통해 남규오빠가 이쁜 여대생을 데리고 교회에 나왔다는둥, 캠퍼스내에서 인기가 많다는등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럴때마다 상대적으로 더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점점 커져만가는 그와의 거리감 때문에 슬퍼하며 지내던중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남규오빠가 사범대학에 장학생으로 다니는 미모를 겸비한 여자와 약혼을 했고, 곧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는 것이었다.
경옥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느껴야했다.
일본으로 가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교회 주변을 배회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남규 오빠를 만날 수는 없었다.
얼굴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경옥은 규모가 작은 무역회사에 사무원으로 취직을 했고, 자신을 아껴주던 상사와 자연스럽게 교제를 한 뒤 결혼을 했다.
남규오빠 역시 유학을 다녀와 바로 약혼녀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끝으로 경옥은 희숙이와도 연락을 끊었다.
경옥이 첫아이를 가졌을 때. 유난히 입덧이 심했고, 몸이 탈진해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희숙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남규오빠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고 여고동창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자연스럽게 그의 소식을 접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여중학교 교사인 아내와 함께 사내 아이를 낳아 잘 살고 있다고 했다. '
뜻밖에도 사는 곳이 경옥이와 가까웠다. 희숙이에게서 남규오빠 전화번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만삭이 된 자신의 모습을 오빠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선뜻 전화를 할 수 없었다.
그가 그리울때면 수첩을 꺼내 전화번호를 마음속으로 불러보곤 했다.
딸아이를 해산하고 몸조리를 하고 있을 때. 남편은 바람이 났다.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와서는 미안한 듯 누워있는 경옥의 입술에 술냄새를 묻히고는 나란히 누워있는 딸아이를 내려다보며 이쁘지? 라고 말하고 작은 방으로 건너가 코를 골며 잠을 자곤 했다. 남편의 바람을 눈치챈 건 딸아이 백일 잔치 때였다.
그리 넉넉한 살림이 아닌터라 조촐하게 가까운 가족들과 사무실 직원들을 초대해서 집에서 잔치를 치루었는데, 그때 경리라고 소개하는 미스 김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아보였다.
유난히 집 곳곳을 두리번 거리며 살폈고, 특히 경옥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곤했다.
남편 옆에 다정하게 앉아 눈웃음을 치며 나긋나긋하게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왠지 모르게 불쾌했고, 여자의 육감인지는 몰라도 둘이 친밀한 사이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도리어 책망했고 애써 부인했다.
그 후 한 달쯤 뒤에 같은 과에 근무하는 동료 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사무실에 나도는 무성한 소문에 대해 낱낱이 듣게 되었다.
남편은 야근이나 회식을 구실삼아 매일 늦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곧바로 잠에 빠지곤 했다. 가끔 외박하는 날도 생겼다.
경옥은 그런 남편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지만, 딸아이를 생각하면 달리 해결책이 없어 마음으로 분노를 삭이며 어느누구에게도 사실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 남편들이 아내가 둘째 아이를 낳게되면 바람을 피운다는 얘길 들었기에 시기적으로 약간 빨랐을 뿐. 남편 역시 단순한 바람일거라 자위하며 남편이 맘잡고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미스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밖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순간 경옥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작 잘못을 저지른건 미스김인데 왜 자신의 심장이 이리도 떨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난무하는 대답들이 어지롭게 머리속을 휘젓고 다닌탓에 종일 머리가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