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는 사흘째 깨어나질 못한다.
간간히 눈을 뜨기도 했지만 의식이 없는 단순한 눈뜨는 행위일 뿐인것같다.
"나 알아 보겠어? 나야"
마누라는 알듯한 미소를 보이는듯 하더니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며느리가 궁금하여서 인지 내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오셨다.
잠시 옷 갈아입고 올 생각으로 병실을 두분께 부탁하고 집으로 향했다.
참!
내 아버지 오민식씨 내외가 며느리에게 이렇게 살뜰한 정을 내보인 적이 없었는데…나는 이런 아버지의 변화가 놀랍게만 느껴진다.
마누라가 없는 집은 너무 썰렁하다.
예전에는 못 느꼈던 집안을 감도는 이 싸늘한 냉기를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속옷과 겉옷을 갈아 입으며 마누라가 꽉 채우던 공간의 크기를 이리저리 눈 대중으로 가늠해본다. 나는 이런 나 자신의 변화에 다시 한 번 놀라고 있다.
잠시 사무실에 들러 월차를 내고 병원으로 서둘러 갔다.
중환자실 문앞에 이르렀을때 낮은 신음소리같은 흐느낌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가 내가 잘못했다. 네가 너한테 못할 짓 너무 했지? 열 입곱번씩이나 이사한다면 웃는 너를 보고도 아무런 느낌도 못 받았었다. 이사할때마다 너무 힘들었노라고 웃으며 말하던 너를 외면했던 이 시애비를 용서하렴. 무던히도 잘 참아준 며늘아 정신 차려라. 죽으면 안된다. 나는 아범보다 니가 더 딸같아서 좋다. 너 알지? 언제나 내가 모든 일들을 결정할때면 아범보다 너하고 먼저 의논한다는 거 말이다. 아가 정신 차려라. 내가 얼마남지 않은 재산 너에게 다 줄려고 맘먹고 있다. 이녀석아 정신 차리고 일어나라!. 어서."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 오민식의 말을 그만 엿듣고 말았다.
처음으로 훔쳐 보는 내 아버지 오민식의 마음이다.
마침 주사바늘을 사들고 오시는 어머니가 나를 보시고
"왔냐~"
소리를 하신다.
"예~"
병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가엾다는 눈빛을 나에게 보낸다.
침대위에 누워있는 마누라의 얼굴이 하햫다못해 푸르게 보인다.
아프지만 않다면, 맑은 정신이라면, 자신의 하얀 얼굴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를생각해본다.
마누라의 뇌사진을 다시 찍으러 검사실로 내려 오란다.
마누라의 침대를 밀며 이대로 영원히 마누라를 잃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생각해 본적도 없기에 생각나지 않음이 당연하다.
오후엔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엄마~나 공부시간에 엄마만 생각나서 혼났다. 엄마~어서 정신차려…"
딸아이는 울먹이더니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린다.
'울지마! 엄마가 죽었냐? 엄마는 괜챦아진다. 틀림없이."
나는 화를 내며 큰소리로 말했다.
마누라가 입원한지 나흘째다.
마누라가 깨어있는 시간이 생겨났다.
너무 좋다.
신난다.
마누라는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투정을 부린다.
밥을 통 먹지 못한다.
미음이라도 한 술먹여 놓으면 메스껍다고 이내 토해 버린다.
앉아 있는것도 힘들다고 징징거린다.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서 다행히 뇌 혈관속의 피가 차츰 거두어지고 있어서 이 상태로만 호전된다면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고 하신다.
약물로만 치료가 될수도 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일반병실로 옮기고 나니 걱정이 훨씬 덜하다.
병실 분위기도 응급실보다 사뭇 다르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딸에게 마누라를 부탁하고 집으로 가서 밥과 반찬과 청소를 해놓고 병원으로 온다.
내가 병원으로 다시 오면 딸아이는 집으로 간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지 오라비와 저녁을 먹고 설겆이며 집안일을 한다.
아침이면 전화로 딸아이를 깨워주고 학교 가라고 일러준다.
이산가족같은 이 생활이 빨리 끝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 마누라가 어서 낫기를… 내 생전 믿지 않던 이 지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를 하며 오늘밤도 보낸다.
부처님! 예수님! 알라신이여!
마누라를 어서 낫게 해주시 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