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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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줏어온 제사를 지내고


BY 캐슬 2004-01-24

 마누라는 요즘 바쁘다.

뭘 사다 나르는지 매일매일 분주해 보인다.

시장을 자주 가는데 그때마다 올망졸망 봉지가 많다.

냉장고속에 묶여 있는 저것들이 다 무언지 궁금하지만 난 묻지 않는다.

가끔은 몰래 봉지를 비집어 보기도 하지만 굳이 그이상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낼 모레면 지내야 하는 제사가 그 원인인듯 하여 말이다.

매일 방바닥에 누워서 메모라고 적는걸 보니 제수목록인듯하다.

그때그때 빠진걸 적어두는 모양이다.

나에게 한번쯤 시장을 같이 가자 할줄 알았는데 별말이 없다.

오늘은 빨랫줄에 생선이 대롱대롱 빨래처럼 널려있다.

"이게 뭐 할 생선이냐"

모르는듯 물어본다.

마누라는 시큰둥하게 대답을 한다.

"제사고기. 그제 어머니랑 사왔지요. 내가 혼자 사면 잘못했다고 하실까봐 어머니 모시고 사왔지요"

마누라는 매사 이런식이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큼 알아서 척척이다.

이럴때마다 나는 새삼 장모님이 고맙다.

이런 딸을 나에게 주셨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마누라가 잘한다는 칭찬엔 언제나 인색하다.

경상도 남자여서 라고 변명하기엔 부족하지만 나는 마누라가 늘 그러하니 그게 당연한줄 알고 산다.

밖에서 듣는 다른 여자들 이야기는 내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지지고 복고 마누라는 이른 새벽부터 야단이다.

고등학생 딸아이와 둘이서 튀김을 한다 전을 부친다. 튀김을 한다. 분주하다.

"왜 이렇게 일찍 야단이야 천천히 하지"

"일찍 해놓고 우리 둘이 목욕갈려고"

손아래 동서는 여태 전화 한통 없다고 어제 저녁 그러더니 아마 와서 도와주는걸 포기한 모양이다.

딸아이와 마누라가 튀김을 하고 전을 다 부쳤을 무렵 영민이 놈 마누라 그러니까 제수씨가 생긋이 들어선다.

"어머 형님 벌써 전 다 부쳤네요"

"응!"

마누라는 얼굴 붉히지 않고 이내 제수씨랑 무슨 얘기인지 가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무언가를 장만한다.

저녁쯤에 아버지가 어머니하고 오셨다.

이른 저녁을 한 술뜨고 마누라가

"아버님 과일 좀 드릴까요"

하니

"그래 어디 한번 가져와 봐라"

하신다.

내게는 그말이 꼭 '가져 올테면 어디 얼마나 어떤걸 가져 오는지, 가져 와보라'는 소리로 들렸다.

마누라는 애기 머리통만한 배1개와 붉은 사과 두개 노란 감을 들고 나온다.

깍아서 아버지앞에 밀어두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과일 맛있는거 잘 샀네"

아버지는 혼자소리로 말하지만 나는 그말을 놓치지 않았다.

 

 12시가 다되어갈 무렵  제사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잘 하는지. 무얼 어떻게 했는지?

제사를 주관하는 주관자의 눈빛이 아닌 잘했는지? 못했는지?심사하는 사람의 눈빛이던 아버지는 차려진 제사상을 보고는

"많이 했네"

만족한 얼굴로 더 이상 아무 말도 없다.

제사를 마친후 둘러 앉은 상앞에서 비빔밥을 드시던 우리 아버지 오민식씨.

"애미야 다 잘했다 음식간도 잘맞고 잘했다"

마누라는 아무 말도 없다.

그냥 웃을 뿐이다.

돌아가는 어머니 제수씨에게 봉지에 싼 무언가를 들려 주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욕 봤다 애미"

아버지의 한마디가 마누라에게는 어떤 의미가 되는지 마누라는 별 말이 없다.

마누라는 지쳐 보이는 까칠한 얼굴로 설겆이를 할 뿐이다.

나는 딸아이를 채근한다.

"말만한 놈이 엄마 설겆이 좀 안 거들고 뭐하노"

'나도 종일 거들었다구요? 그치 엄마'

"그래 우리 딸. 고마워"

마누라는 딸아이 엉덩이를 물 묻은 손으로 토닥거린다.

나는 아버지의 놀라는 눈빛이 자꾸만 눈에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