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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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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 마누라


BY 캐슬 2004-01-12

"여보세요"

하더니 잠시 저쪽에서 대답이 없다. 마누라가 놀라 빨리 대답을 못한다고 생각한 나

"여보시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여보시오! 를 외쳤다.

잠시 머뭇대는듯 하더니

"내다 너 일찍 왔구나."

 아버지의 목소리다.

'예 오늘 좀 일찍 왔습니다."

"으흠 으흠"

아버지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숨을 고르는 모습이 유선 전화기로도 나는 보인다.

"음~저 너 한번 들어봐라 내가 이렇게 있으니 나를 너가 무시하는데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된다. 내가 돈이 없다고 니가 날 무시하는것 같은데 말이다."

또 시작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로 내 속을 오늘 또 긁을 모양이다.

습관처럼 아버지는 나에게 이런다.

며칠 잠잠하다 싶으면 내가 잊을만 하면 나에게 억지를 부리며 떼를 쓴다.

그런줄 알며서도 아버지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피가 꺼꾸로 솟구치는 부아가 치민다.

한참을 같은 말을 듣고 있던 난 순간 폭발하는 화산처럼 역정을 내고 만다.

"아버지! 또 무슨 소리하는 겁니까? 돈 날 주셨습니까? 아버지가 돈 준사람에게 달라고 하세요. 나는 돈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나는 알지만 달리 할 말도 하고 싶지도 않다.

"알았다 니가 그렇다면."

아버지의 전화가 끓어지고 바라본 t.v.는 음소거가 되어서 인지 쇼 호스트 여자가 벙긋벙긋 로보트 같은 입모양을 움직인다.

"참 웃기네 그 여자 에이~"

누구를 향해서도 아닌 짜증을 내며 리모컨을 눌러 t.v.를 끈다.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인터넷 고스톱을 위해서 나는 컴퓨터를 켠다.

기계와의 대결이지만 나는 언제나고스톱에 최선을 다한다.

조금만 따도 히히거리고 조금 많이 잃으면 흥분도 곧잘한다.

마누라의 말을 빌리면 나는 고스톱 칠 자격이 없단다.

사이버 머니를 가지고 그렇게 곧잘 흥분하는 걸 보면 아직 수양이 덜된것 같으니 다 잃어도 초연 해질수 있는 자신이 있을 때까지 고스톱을 치지 말란다.

그럴때마다 나는 자신을 다스리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번번히 나는 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  언제인가는 내 자신을 다스릴수 있을 거라 믿으며 나는 지금 고스톱에 빠져 보려고 한다. 나의 고스톱 승률은 50:50 정도 이지만 지금 나의 기록된 승률은 51:49로 내가 2%우세하다.

그럼에도 지금 내 사이버머니는 고작 49만원을 넘지 못한다.

50만원을 넘으면 1점에 2000원짜리 방으로 간다.

2000원짜리 방에서 사이버머니가 1600만원을 넘긴적도 있었지만 그건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지금 나는 마누라가 돌아올때까지 고스톱에 열중해 볼 참이다.

고스톱에 신경을 쏟으며 나는 조금 전 아버지와의 있었던 일 따위는 잊어버리고 싶다.

딸깍!

현관문 따는소리가 나고 마누라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난다.

"어 당신 일찍왔네요. 만든 두부샀는데 잘 됐다 양념장해서 먹자."

마누라의 말에 나는 대꾸도 않는다.

마누라를 보니 화가 난다. 좀 일찍 들어왔으면 내가 아버지의 전화를 안 받아도 될텐데...

"불이라도 좀 켜지...이게 뭐야 캄캄하게."

나는 마누라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또 고스톱만 친다.

힐끔 곁눈으로 나를 보던 마누라 주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내가 화난 걸 눈치챈 모양이다.

수돗물소리, 된장냄새가 무엇인가를 지지고 만드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저녁 먹으러 와요"

마누라의 목소리가 상냥하다.

마누라는 바보다.

아니 바보를 위장한 천재인지도 모른다.

내가 화를 내면 더 상낭해지는 이상한 여자다.

마누라의 재촉을 몇번인가 더 듣고서야 나는 식탁으로 갔다.

그사이 학교에서 돌아온 딸도 식탁에 앉는다. 마누라와 딸은 웃으며 밥을 먹는데 나는 말없이  먹는다.

나는 반주로 먹는 소주를 한 병이나 다 비웠다.

포만감과 알콜기운으로 나는 기분이 좀 좋아졌다. 마누라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까 아버지 전화왔드라"

"왜요? 무슨얘기 하시던데요"

"돈 없다 하시더라 "

"그래서요"

"그래 내가 그랬다 돈준 사람한테 받으라고 했지."

마누라는 수저를 들고 가만히 무얼 생각하는듯 하더니

"그래서 아까 화났어요. 그래도 아버지한테 너무 막 하지 말지."

마누라의 그 말에 나는 버럭 역정을 낸다.

"그럼 집에서 전화나 받지 어디를 돌아 다니냐"

내 말이 억지라는 걸 나도 마누라도 안다.

내가 이름만 들어도 역정이 나는 사람.

아버지.

나는 그 아버지 오민식의  큰아들 오석민으로 태어났다.

내 밑으로 남동생 오명민이  있고 여동생 오하나가 있다.

모두 결혼을 하였고 우리는 모두 제각각 자기의 복주대로 살고 있다.

"녹차 한잔 할래요"

마누라의 물음에

"줄려면 주든지."

어정쩡한 대답을 한다.

다시 컴퓨터로 돌아와 앉았다.

이제는 내 사이버머니가 97만원이다.

저녁 전 300만원도 넘었었는데 큰 거 한방으로 폭싹 줄어 버렸다.

"고스톱이 그렇게 재미 있나요? "

하며 녹차잔을 내민다.

"낼 또 아버지 전화 올텐데 어쩌지?"

"아버지 말 하지마 짜증난다"

나는 또 화를 낸다.

"당신 자꾸 그러지마요.  당신 아버지야. 우리 아버지 아니라고요. 나는 남이야"

아! 뜨거워라 싶다.

마누라의 말은 다 맞다.

"또 전화오면 당신이 알아서 해"

나는 마누라에게 알아서 하라는 말로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게 해 버린다.

내 속을 훤히 알고 있어서 내가 화내고 소리치고 온갖 까탈을 다 부려도 바위처럼 꿈적도 않는 저 마누라가 나는 무섭다.

마누라는 적당히 한박자 늧추어 나를 이렇게 진정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