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것만 같던 입덧은 어느덧 가라 앉았다.
숨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죽고싶을 정도로 힘든 나날이였는데
이제는 없어진 것이다.
안겪어본 사람은 영원히 모른다.
나 보고 유난떤다 뭐라하는 사람들.. 있었지만
경험하지 않고서 나를 지목하는 손가락은 거두길 바란다.
무엇이든 당사자가 죽을 만큼의 고통이라 하면 고통인 것이고
참지 못할 만큼의 아픔이라 하면 아픔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고통, 아픔, 입덧, 한방에 날렸다.
없어서 못 먹을 만큼 그간 못다한 배고픔 식탐으로 해결하고 사는 중이다.
어제저녁 먹다 남긴 차가워진 족발도
기름이 덩어리채 꾼덕꾼덕 변해버린 삼겹살도
너무나 맛있다.
모든 음식이 입속으로 들어가면 감동의 진미 그 자체였다.
이제서야 발전이도 나 처럼 살맛나는 세상을 경험할수 있었다.
내 입덧으로 발전이 역시 사는게 사는것이 아니였었다.
최소한의 끼니는 해결하고 살아야 하는데
이눈치 저눈치 봐가면서 시댁에서 친정에서 눈치밥 얻어먹고
옷에배인 음식냄새 남을새라 집에 오면 욕실로 직행~
거기에다 각자 따로 잠못드는 밤을 보냈으니
입덧 없는 지금이 천국일수 밖에..
발전이는 항상 퇴근시에 양손가득 음식들을 포장해서 갔고 왔다.
또한 하루가 멀다하고 냉장고에 채워지는 온갖 과일들..
발전이가 오기만을 두 눈 빠지게 기다려진다.
게걸스럽게 먹고 포만감에 가득찬 내 배를
아니~ 우리 아이가 들어있는 배를 바라본다.
<배가 제법 불렀지?>
<그러게..>
<발길질도 얼마나 한다구..가끔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니까>
<정말~ 어떤녀석 이길래 엄말 벌써 힘들게 하는거야>
둥그렇게 솟아오른 내 배를 쓰다듬으며 발전이가 얘기한다.
<근데~ 엄마라고 하니까 낯 간지럽네>
<후후후~ 그래?>
비록 계획에 없던 임신이긴 했지만
부부사이엔 아이가 있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이제서야 이해할수 있을것 같다.
뱃속에 있는 지금도 이렇게 행복한데
태어나서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지고 하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
이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하면서 포만감에 어찌할바를 몰라
거실 바닥에 비스듬히 배게를 깔고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도희야~>
<응~>
<너.. 근데..>
<뭐가?>
<근데.. 너.. 살.. 너무 찐거 같아>
<살?>
<그래~ 뒤에서 보니까 엉덩이 디게 커>
<뭐!!! 배가 이렇게 부르니까 엉덩이도 클수 밖에.. 원래 임신하면 골반도 커지는거 몰라?>
<우리 누나들은 임신해도 너처럼 그러지 않던데>
<그런게 어딨냐? 애 가지면 배나오고 엉덩이 커지고 가슴도 그렇고 다 커지는거야>
<하여간.. 수시로 몸무게 체크좀 잘 해봐>
<야~~ 이발쩌언~~>
<왜?>
<그래서.. 살찐 와이프 싫다 이거야?>
<아씨.. 또 그런쪽으로 해석한다>
<너 지금 말투가 그런거 아냐?>
<알았어.. 맘껏 먹어~ 뭐 줄까? 음료수좀 줄까?>
아무런 대꾸도 않고 머리가 아플정도로 째려보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좀전까지 기분이 좋았는데
한 순간에 팍! 상해 버렸다.
침대에 벌렁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화장대에 있는 거울을 봤다.
보름달이 되어가고 있는 얼굴
부풀어 오른 가슴
허벅지 안쪽은 서로 닿을랑 말랑 할 정도로 살이 올랐다.
입고 있던 임부복을 올려 뒤돌아 엉덩이를 살폈다.
<이.럴.수.가>
뒷모습이라 신경쓰지 못했는데..
엉덩이가.. 엉덩이가.. 장난 아니다
타이트한 임부 타이즈에 고스란히 드러난 몸매
투실한 허벅지에 한 없이 넙데데~ 한 엉덩이..
<휴~~~~~~~~~>
발전이가 그렇게 말하고도 남을만 했다.
도도한 내가 이렇게 무너져 버리다니..
이러다 애낳고 나서 고스란히 살로 남아 버리면 어쩌지?
두려웠다.
아무리 결혼 했다 하지만.. 또 애를 낳았다 하지만..
요즘 누가 <나 애 엄마요~> 하고 티 내고 다닌단 말인가
내 나이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다.
이래선 안된다.
이렇게 망가지면 안된다.
애도 애지만 도도희~ 정신 차리자..
침대에 다시 누워 나는 결심했다.
<도도희 아줌마로 전락하면 안돼!!>
그때부터 나의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다이어트라기 보단 이제까지 먹던 음식량을 줄이기로했다.
기본요금 밖에 나오지 않는 병원엔 걸어서 다니고
5층 아파트도 엘레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았다.
칼로리가 높은 청량음료는 씽크대에 다~ 갖다 버리고
아침, 점심, 저녁 식사외엔 군것질도 하지 않았다.
발전이가 들어오면 같이 저녁 먹고
아파트 인근 놀이터로 산책하자고 데리고 나가서 저녁 운동을 했다.
불필요한 간식은 안하기로 하고
지나치게 높은 칼로리 음식도 자제했다.
제일먼저 밥 먹고 눕는 버릇 부터 없앴다.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몸무게가 줄기 시작했고 한달 좀 넘게 했더니 5키로가 빠졌다.
병원에선 몸무게가 줄었다고 살이 빠졌다고 걱정을 했지만
나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를 내렸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놀랍다.
혹시나 아이한테 영향분이 제대로 안갈까봐 걱정했지만
세끼 식사 만큼은 거르지 않고 꼭꼭 씹어 먹고, 과일도 먹고,일정한 운동을 한 결과
몸무게는 빠지고 아이한테도 별 탈이 없었다.
한 여름도 지나가서 땀도 예전만큼 흐르진 않았지만
하지만 배가 부르니 늦더위에도 항상 낑낑데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와 세수를 하려고 욕실로 들어가는 내게 발전이가 한마디 건낸다.
<너, 너무 무리하는거 아냐? 밥 먹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괜찮아 그렇게 미련스럽게 운동하진 않아>
<무섭다 무서워..>
<뭐가?>
<살 쪗다고 한마디 했더니만.. 독을 품는구나>
<뭐? 독을 품어?>
<그래~너 일부러 쓰레기 버리고 온거 아냐?>
<맞다면~>
<내일 내가 버린다고 했잖아>
<밥 먹고 소화시킬려고 버리고 온건데 왜 난리야? 니가 버린것도 아니면서>
<너 얼굴좀 봐>
<내 얼굴이 뭐?>
<살이 쪽 빠졌어>
<병원에서 괜찮데 애도 잘 크고>
<어디 너 무서워서 뭔 말 하겠냐?>
<나보고 뚱뚱 하다며~>
<너 지금 임산부야 임산부!! 그렇게 무리하면 큰일 난다구>
<걱정마쇼~ 내 몸은 내가 지킬테니까>
욕실로 들어와 세면대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닦았다.
기분이 나쁘지 만은 않았다.
그래도.. 내 걱정이 되긴 되나 보지?
가지런히 걸려있는 하얀 수건에 손을 닦고
탁탁~ 털어 다시금 앞뒤 맞게 걸어서
욕실을 나오는데
핑~ 하더니..
<어~ 어~>
<도희야~ 도도희~>
.
.
.
.
.
.
나는 지금 병원 응급실에 누워있다.
누워있는 이유는?
<야~ 너 영양실조래>
<뭐어~ >-말할 기운도 없다.
<영.양.실.조. 말이야>
<왜?>
<미련곰퉁아~ 너 지금 임산부야.. 임산부가 세끼만 먹고 그렇게 먹는 족족들이 활동해서
써 버리는데 몸이 남아 나겠어?>
<..................>
<아이는 네 몸에 축척된 영향분을 뺏어간데.. 이제 무슨 말인지 알아?>
영양실조라니.. 말도 안된다.
의사선생님 말씀은 지나친 활동량으로
먹는것을 쌓을 틈도 없이 소모가 되버렸단다.
거기에 임산부는 일반 성인에 비해 더 많은 칼로리가 필요한데
일반 성인에 비해 더한 칼로리 소모를 했으니 당연한 결과란다.
쪽팔려서 발전이 얼굴을 어찌 본다냐..
이 발전 지금 내 얼굴 보고 웃는다.
저 웃음.. 무슨 의미인지 내 알지..
암~ 알고 말고
예전에 내가 비웃었던 웃음
입꼬랑지 올리면서 콧방귀 뀌던 그 웃음
{아 쪽팔려~}
내 어쩌다 발전이를 닮아가게 되버렸나..
부부는 닮는다더니..
이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