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인지 셈물인지 모를 물 소리가 앞마당을
질퍽하게 덮었습니다.
길손들을 잠 재우고 있는 텐트들이 조용히 빗속에
도란도란 앉아 있는 앞 마당이 훤히 보였습니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진성 스님의 손을 살며시 거둬내고
휘청거리는 다리를 겨우 세워 일어 섰습니다.
그리고...
방문과 마주 하고 있는, 내 손이 닿는 지점에 있는 벽장문을
열었습니다.
늘 거기에는... 내가 또 하나 가지고 다니는 단소가 있어서
그것을 찿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깨우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 수 십 번도 넘게 죽음의 터널을 넘고 넘다가
다시 깨어나면...늘 했던 저의 버릇 이었습니다.
단소가 손에 잡혔습니다.
조심스럽게 앞 마루에 앉았습니다.
고개를 들어 멀리 보이는 작은 오솔길, 내리막 길을 보았습니다.
새벽 여명은 빗줄기에 가리워져
아직 지척에 못 오고 서성이는 모양인지
작은 길이 더 작고 멀리로 보였습니다.
텐트와.
빗줄기와.
그리고 나의 단소 소리가 이른 아침을 알리며
장터목 산장 마당에 내려 앉았습니다.
내가 단소를 불고 있을 때,
하얀 하늘을 보았습니다.
빗 방울도 없고.
고통도 없고.
번뇌도 물욕도 없는 그런 하늘을요.
그리고...심연 가득히 감사의 마음이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 나의 삶. 나의 목숨. 그리고 이렇게 숨을 쉬는 나는....
감사합니다.
순간, 저도 울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몸이 성하지 못해도 좋다.
이렇게 가슴이 매시간 찢어질 듯이 아파도 좋다.
많은 사람들이 날 위해 허겁지겁 정신을 잃는데도...
좋다. 나는 이제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것 같다.
라는 생각들이 용솟음 쳤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입술에서 단소를 떼어내고,
방으로 고개를 살며시 돌렸습니다.
벽에 기댄체 젖은 얼굴로 활짝 웃고있는
진석씨와 현수씨가 서로의 어깨에 기댄체 앉아 있었습니다.
상좌스님, 진성스님은 합장하고 앉아 눈을 감고 있었고.
코를 골며 잠을 자고있었던, 털보아저씨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염만 쓸어 내리고 또 쓸어 내리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빗 속에 텐트 문의 지퍼를 내리고
저를 올려다 보는 눈빛들이
빗속에서 환하게 울고 있었습니다.
저도 울고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먼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어허~ 이 세명의 병신들이 이 털보를 울리는구나...허허허..."
라고 고함을 치듯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앞 마당이 떠나가라
외치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자....
진석씨가 웃고, 내가 웃고, 현수씨도 따라 웃었습니다.
현수씨가 다리를 절룩이며 제게 걸어와 그 꽃다발을 제게 주었습니다.
"아직도 이꽃은 시들지 않았군요....."
"이 꽃은 아주 시들지 않을 껍니다."
"그런데...그 다리는 왜 절룩이세요?"
"유행인가 봅니다."
라고 진석씨가 히죽거리며 말을 했지요.
"유행은...아이고...이 양반들...그 다리하고, 그 모골하고 어떻게 지리산엘
그것도 장마 시작되는 줄도 모르고 오른게지....? 나아~참 어이가 없어서..."
털보아저씨는 악몽을 꾸었다며 연신 넋두리를 뇌까리셨습니다.
"하여간...우리 강산이 다시 일어났으니...됐다! 됐어! 이놈아
강산이 지리산에서 사라지면, 길상이며 진성 스님이며, 나까지 두 다리 뻗고
잠잘텐데 말이지...쯧쯧쯧..럭비 공같은 네 녀석이 어디로 튈지 누가 알꼬...
관세음...."
털보아저씨의 넔두리가 길어지자.
진성 스님이 아저씨를 넌즈시 보시면서 말을 하더군요.
"다행이다. 강산...어머님께 전화 드려라...내가 하룻밤을 꼬박 깨어나지 않아서
....죄다 아시고 계셔. 어서..한 잠 못주무셨을 께다.."
"녜에...."
그리고 전화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는데 손끝이 떨려오더군요.
"어머님! 나아...."
전화기 너머로 숨막히는 고요가 흘렀고, 그 고요속에는 목으로 삼키는 울음소리가
들리는듯 했습니다.
"음...일어났구나...나무관세음 보살. 나무관세음 보살...네가 언제 자라서
보살행을 이해하려는지..."
애써 참는 어머니는 눈물을 또르륵 또르륵 흘리고 계셨을 껍니다.
그래도 끝내 내색을 안 하시더군요.
"죄송합니다. ....다시는..이런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저도 목이 메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내게 좀더 쉬라는 말을 하신후 먼저 수화기를 놓으셨습니다.
아마도...끝내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목을 타고 넘어와서 였을 껍니다.
우리는 털보 아저씨의 잔소리를 닷세 동안 들으며
산장에서 묵었습니다.
쉬지 않고 내리는 장대비는 넓은 지리산을 죄다 덮고도 남을 만큼
그렇게... 무섭게 내렸습니다.
진석씨는 걸을 수 있게 되기를 기다렸고.
현수씨는 오른 쪽 팔과 오른쪽 다리에 경미한 부상을 입은 상태 여서
우리 중 그래도 제가 가장 말짱 했습니다.
그래도 볼 일을 봐야 될 때가 되면,
현수씨는 진석씨를 등에 엎고,
화장실로 갔습니다.
"봐라~ 다리 멀쩡한 내가 더 낳은 병신이지?"
"뭐? ...그래도 세상 들을 소리 많단다....중생아"
"못 들으면 어떤가? 눈으로 보면돼잖은가...그렇잖은가?"
다시 반박을 합니다.
"아이고~ 그놈아 말 한번 잘 한다...그제...그래 몸 한구석이 조금
고장 났다고, 구들장에 붙어 지내는 못난놈들에 비하면야
둘다 장하다만....보이소 젊은 양반들...돌아보고 자리 펴고 누우랬다...
장마 통에는 제발 지리산엔 다시는 올라 오지 마이소...엥?"
"그럼 어느 산으로 가란 말이지요? 아저씨?"
"어느산? 아니, 산에는 가지 말라는 말이제..."
"산이 좋은 걸요?"
진석씨와 나는 이구동성으로 말을 하고 서로 보며 웃었습니다.
그리고 닷세가 되던날.
비가 멎기 시작 하더군요.
이곳 저곳에서 들려 오는 소식이 그리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오일간, 쏟아진 물로 일곱명의 등산객이 실종이 되었는가 하면.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었습니다.
모든 산장의 산장지기들은 산장의 주인이기 이전에.
구조대 대장의 임무도 수행을 합니다.
털보아저씨도 백방으로 뛰어 다니시느라 사실
하루도 편하게 주무신 적이 없었지요.
우리 셋을 제외하고는요...
산장에 앞 마당은 늘어나는 텐트로 발을 디딜 틈이 없었지요.
오도 가지도 못하고, 비가 멎기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산 속에서 서로 서로 처음 만나.
반찬을 나눠 먹고, 쌀이 떨어진 텐트로 쌀을 나눠 먹으며
마당의 다른 식구들도 점점 하나가 되어갈 즈음....
장마 비는 멎었습니다.
"삼정리면....음정리 양정리 가 만나는 그 마을 말이지요?"
"우웨...강산씨...진짜..지리산 다 돌아 보셨나봐요?"
"거의요...제가 제 병 미리 말 못했어도 화 안 나셨지요?"
"화는요...그런데...수술을 받을 수 없는 건가요?"
"이번에 내려가면...시도 해 볼께요."
"예에~ 정말이요? 그리고...하산하실 꺼예요?"
"녜. 현수씨도 누군가를 위해서 뭐라도 하려는데...
저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같이 하산해요..우리"
그러면서 저는 눈망울을 초롱 거렸습니다.
그렇게 엿세째 되던날.
우리는 털보 아저씨의 불호령을 뒤로 한체
물이 셈물이 세어나듯 졸졸 흐르는 물을 디디며
작은 오솔길로 들어 섰습니다.
삼정리로 내려가는 작은 오솔길에는 우리 셋 뿐 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불일암에서 내려오셔서 저희들을 기다리고
계실 꺼였고, 해서....저는 아쉬운 작별을 고하며
상길이에게 전해 주라며 저의 단소를 남기고 길을 떠났습니다.
오솔길 속으로...
작은 마을을 향해서...
아니 사람들이 살아있는 세상 속 으로 길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