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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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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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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BY 마야 2004-01-31

 

산에는 별들이 참 빨리 찿아 옵니다.

해가 산을 넘어 얼굴을 묻으면, 달은 기다렸다는 듯이

금새 얼굴을 반대편에서 내 밀고 산 속을 살핍니다.

저는 일부러 보폭을 느리게 잡아주는 진석씨의 배려에

못내 감사하면서도...그때까지도.

[저도 장애자 입니다. 그러니...]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참 이상했습니다. 그 말이 왜그리 저에겐 힘들었던지.

그 날 밤에도 저는 그 말을 여러 번 하려다 그만 두곤 했지요.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진석씨는 상당히 낭만적인 기질이

있어서, 가끔씩 강은교님의 시를 낭송하곤 했었지요.

제게 어디가 아픈지를 여러번 물으려다 말고 또 물으려다 말고

하는 그의 갈등을 보았을 때, 제 마음이 편치는 않았었습니다.

 

마냥 즐거워 하면서 두 눈을 말똥이는 현수씨와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서 우리 셋은.

마른 나무를 찿아다 제법 많은 나무단을 텐트 바로 앞 입구에

쌓았습니다.

산장에서 잠을 자라는 산장지기 아저씨의 권유를 뿌리치고,

저도 그 두 사람의 텐트에 끼어서 자기로 이미 의논을 했었던 터라서요.

 

저는 늘녘에서 잠을 자본 경험이 ....

바위 위에서 낮잠을 자본 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텐트에서 잠을 자 보는 것이 작은 소녀의 꿈처럼....

제 마음 한 켵에 늘 있었지요.

해서....

다리를 절룩이면서도 우리 텐트가 쳐져있던 발 아래 꽤 멀리까지

내려가야 작은 산장이 하나 있는데 그 산장의 뒤뜰에 우물이 있어서

진석씨는 그곳까지 내려가서 물을 길어다 저녘을 지었습니다.

현수씨와 저는 반찬을 만들기 위해서 이것저것을 썰어서 다른

등산용 남비에 준비를 하고...

불을 피우기 위해서 불쏘시개에 불을 붙였습니다.

 

달이 한 번 뜨면 조금만 지나면 아주 밝아집니다.

우리의 동공이 개안하는 것 이겠지만...

저는 그날 밤도 마치 달빛이

그 아름다운 마음씨의 서른이 다 되어가는

두 남자를 향해서 미소 짓는 것 이라고 믿었습니다.

 

달빛에 랜텀을 기우뚱 갸우뚱 흔들거리면서 진석씨가 올라 왔습니다.

현수씨가 양볼에 바람을 넣어 훅훅 모닥불을 향해 입으로 풀무질을 해 대자,

불꽃이 살아나 하늘로 날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셋은 모닥 불 주변에 빙 둘러 앉아.

보글보글 끓는 두 남비를 내려다 보다가 현수씨 얼굴이 온통

숯검댕이 묻어서 광부를 능가하는 얼굴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뭐가 문제인가?"

글을 읽는듯한 그의 말투가 다시 환하게 웃는 그의 이빨 사이를 두드리며

흘러 나왔습니다.

진석씨가 손짓으로 닦으라고 하면,

현수씨는 그렇게 똑같이 팔뚝으로 코밑을 쓰윽 문질렀습니다.

그러면...

더욱더 많은 검댕이 아주 잘 고르게 얼굴에 퍼지는 것 이었습니다.

"에고...그냥 그렇게 놔 누는게 났겄어유...."

진석씨는 마침내 웃으면서 포기 하더군요.

제가 현수씨의 얼굴을 그가 목에 걸고 있던

그의 수건을 내려서 잘 닦아 주었습니다.

 

현수씨의 앞 얼굴에 남아있던 가느다란 부끄러움이

입 가에 작은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 보이더군요.

제가 현수씨의 볼을 손으로 만질 때마다 말입니다.

 

어색해진 현수씨의 얼굴에 웃음대신 부끄러움이 역력히 내려 앉자,

둘의 마음을 너무나 서로서로 잘 아는 진석씨가

얼른 화제를 [저녘밥]으로 돌리더군요.

"자아~ 밥이 다 됐어요. 맛있는 저녘밥이...

오늘의 메뉴는 참치 김치찌게와 허연 쌀밥.

고추장과 풋고추, 싱싱한 오이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양마시고 많이 많이 드십시요....그래야 별 보지..."

"별은 밤새 떠 있을 꺼예요..."
"아니죠 강산씨...별이 움직여 자리를 바꾸면 그 모양이 아주 달라 보인다구요."

라고 진석씨가 제법 별을 잘 아는 사람처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물리학도가 아니라 천체 물리 학자 다우리 만큼 별을 잘 알았구요.

 

저는 날 읽은 야채도 먹지를 못합니다.

항상 화식을 해야 뒤 탈이 없거든요.

아주 맵거나 짠 음식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었구요.

심장의 박동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그것이 곧 통증으로 이어졌으니까요.

해서 저는 밥에 물을 말아 조심스럽게 김치찌게를 떠 먹었었습니다.

맛있게 밥을 먹던 현수씨는 뭐가 그리 흥이 났는지..

제게 계속 고추에 고추장을 듬뿍 묻혀 권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사양할 수가 없어서 받아 쥐곤...

몹시 나처한 생각만 하고 있었답니다.

그 때마다 진석씨는 나의 손에 덜렁 쥐어져있는

고추를 살며시 가져가 그가 내 대신 먹곤 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가 텐트 안으로 들어가 잠시 동안은 어색했지만...

제가 그 둘의 가운데 자리를 잡고 배를 깔고 엎디어 나란히 엎딘체

하늘을 보며 진석씨가 해 주는 별 이야기를 들을 때 까지

모닥불 주변에 모여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진석씨가 고등학교 일학년이 되던 해.

 전체 교련 시간이 다가 오거나, 체육시간이

 되면 진석씨는 늘 열외 되어 선생님의 자전거를 닦아야 했었답니다.

 처음 진석씨가 다른 반에 속해 있던

 현수씨를 본 것은 일학년 일 학기

 전체 교련 사열을 준비하던 바로 첫날 이었답니다.

 

자전거 바퀴 너머로 긴 대열이 펼쳐져 있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진석씨는 자전거 바퀴를

마른 헝겊으로 닦고 있었답니다.

그때 얼마 안 지나자 운동장 중앙 줄에서

자꾸 좌충우돌하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여서,

진석씨는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답니다.

한 사람이 자꾸 좌양 앞으로 갓!

이라는 구호와는 전혀 정반대로 움직이니

그도 그럴께고 마침내는 뒤로 돌았가!

라는 구호에 한 사람이 자꾸 얼굴을

대열에 부딪혔다는 겁니다.

 

교련 선생이 점점 화를 내며 외쳐대기를.

"거기 그 고문관 새끼! 제대로 못하겠어? 엉?"

이라며 아무리 으름짱을 놓아도....

대열이 자꾸 현수씨에 의해서 흐트려 졌었답니다.

 

그 모양이 너무 우수워 진석씨가 마침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땅에 데굴거리며 파안대소를 할 즈음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교련 선생님의 마지막 신경을 건드린 것은 모든 대열이

교련 선생님의 구령대를 보고 행진을 하다가

뒤로 돌아 가를 한번  한 다음, 두번째 다시 정면으로

모든 대열을 돌렸을때 중앙 줄의 마지막에 있던 현수씨 혼자만,

계속 구령대에 등을 돌리고 보부도 당당히 열심히 걸어서

혼자 직진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 순간 날렵한 교련 선생이 날다시피 구령대를 뛰어 내려와

그 현수씨의 뒷 정강이를 발로 걷어차자,

현수씨는 운동장에 꼬꾸라져 뒹굴기 시작했고.

얼마동안 발길질을 당하자 한 학생이 뛰어가

선생님에게 큰 소리로 보고를 했답니다.

"선생님! 현수는 농아자 라서 못 듣습니다."

갑자기 진석씨는 데굴거리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잠시 나마 웃었던 자신의 행동에 죄의식을 느낄 즈음,

이미 코피를 흘리며 그래도 허연 이를 들어내며 웃던

현수씨를 향해서 선생은 아주 난처한 표정으로

"열외"

라고 외치고 각자 제 자리로 돌아가고

현수씨는 진석씨가 있는 곳으로

자꾸 운동자을 흘깃흘깃 돌아보며 왔었답니다.

 

그렇게 해서 둘은 처음 얼굴을 보게 되었지만,

현수씨의 아버지가 그 사실에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현수씨는 곧바로 장애인 학교로 전학을 해 버려서...

진석씨는 현수씨를 그렇게 한 번 보고

다시는 못 보면서 몹시 궁금해 하면서 삼년을

지냈고 그렇게 십 년이 흐른 뒤,

성남시 도립 도서관에서  현수씨가 진석씨를 먼저 알아보고

다시 둘이 만나 수능 공부를 하는 현수씨에게 진석씨는 수학을 가르쳐주면서

공체 입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가

그렇게.... 산에 나들이 나왔던 것 이지요.]

 

진석씨가 들려 주는 그 고교시절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몰래 눈가에 눈물이 고였던지

현수씨는 씨익 웃으면서 자신이 검댕을 닦았던

그 수건을 제게 건네주더군요.

얼굴을 쓰윽 문지르자 저의 얼굴에도 검댕이 묻었습니다.

"다아 지난 이야기 입니다. 저는 저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된다는 사명을 느낍니다.

 도장을 깎아서 살면 그럭저럭 내 몸이야

 편하겠지만...저는 그래도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를 하다가 죽고 싶습니다."

더듬거리면서 현수씨가 말을 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나를 부정하면서.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하고 얼마나

수 없이 바랐었는지 아무도 모를 겁니다.

 

그런 마음을 안고 살던 제게

그 두 사람의 당당한 모습, 자신의 장애를 정당하게

받아 들이며 굴하지 않는 건강한 사람들의 몇 수십배도

더 알찬 그 둘의 마음을 엿보며 부끄러워지기 까지 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하늘에는 더 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비행기장에 쳐진 우리들의 텐트는 마치,

밤 하늘로 비행이라도 준비하듯이 조용히 둥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은하수 물결이 저렇게 흘러 넘치니...내일도 비는 다행이 안오겠어요...

 그렇죠?"

진석씨는 그렇게 말을 하더니 노래를 하기 시작하더군요.

 

[깊은 산 오솔 길옆.

  조그마한 연못엔...

 그 옛날 그 연못에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산 작은 연못.

....생략....]

나는 텐트로 들어가 베낭에 꼿혀있던,

대금을 내어 불었습니다.

눈이 동그래진 현수씨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모닥불에

비춰 잠깐 수정처럼 반짝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현수씨는 우리 둘을 향해 손뼉을 쳤습니다.

"그 악기는 어떤 소리인가요 그러니까...색깔에 비유라도 한다면...?"

그 순간, 저는 가슴이 찡해져 오면서...

'그렇구나...현수씨는 이 음색조차도 모르지....'라는 생각이 미치자

저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괴었습니다.

 

새소리도.

물이 흐르는 소리도.

사람들의 악을 쓰는 소리도.

짐승의 신음 소리도.

바위에 떨구는 빗 방울 소리도.

낙엽을 밟는 사각사각 소리도.

대금 소리도 모르는 그 현수씨를 보다가 눈물이

또르륵 굴러 떨어져 저는 당황했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손을 잡아 끌어 내가 할 수 있는 뭔가를 그날 밤

시작했습니다.

눈이 휘둥르래진 현수씨를 똑바로 보면서.

 

"자아~ 현수씨...이것이 도. 이것이 레. 이것이 미. 이것이 파."

저는 압점을 달리해서, 현수씨의 손 바닥에 힘을 가하면서

도래미파솔라시도를 익혀주기 시작했습니다.

현수씨는 도래미 파솔라시도를 손에 가해주는 저의

손 끝의  압력의 다른 힘을 느끼며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음의 고저가 없다는 것은 느껴보지 못해서...

 그러니...이 음감이 느껴진다면, 현수씨도 노래를 할 수 있어요...."

현수씨의 목소리에 높고 낮은 소리의 고저가

아니, 전혀 그의 말투와는 다른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쉬지 않고 계속 반복했고, 현수씨도 지칠줄 모르고 따라 했습니다.

진석은 우리 둘을 번갈라 가며 바라보다가 눈을 하늘로 돌리더군요.

그도 마음 속으로 울고 있었을 껍니다.

마치 제가 마음 속 으로 울고 있었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음계가 어느정도 익혀지자, 저는 그 깊은 산 옹달셈

노래에 계명을 달아 현수씨에게 그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음의 고저가 생기긴 했지만, 음계와는 아주 먼 소리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현수씨는 그 노래를 혼자 부르며 자신이 오폐라 가수라도 된 듯이

일어서서 혼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금을 불어 음악을 선물했고, 현수씨는 지리산에 노래를 선물했지요.

 

황궁십이도의 전설이야기를 들으며,

처음 우리가 나란히 엎딘 텐트 안에는 이상 야릇한 불편이

잠깐 자리를 같이 했다가, 어느 순간 우리 셋은 모두 어린 아이라도

된 듯이 편안해 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모두 스믈 아홉의 나이였고.

그 나이에 처녀 총각 이었으니...

그 이상한 감정들이 썪여 있었던 것은 피할 수 없는 것 이었겠지만.

우리는 곧 그런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잠이 소르륵 들려는데, 진석씨의 낮은 음성이 저의 귀에 들려 왔습니다.

"그런데....강산씨...그 먹는 약은...어디가 아픈건지요..."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진석씨의 말을 못들은 척 하고

저는 잠을 자는 척 했습니다.

 

졸음이 아닌... 부끄러움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했던

나의 못난 마음은 별 무리 끝자락으로

몰래 얼굴을 묻어 숨어 버렸습니다.

 

현수씨는 밤새 그 노래를 흥얼흥얼 잊지 않으려는듯 불렀습니다.

진석씨는 두 번 다시 그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 자신의 못남에 질책을 하며 잠을 청했습니다.

별들이 눈 앞에서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서산으로 기우는 카시오페이아가

시야에 들어오자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현수씨의 노래를 들으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현수씨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금소리요...?

대금소리는...아주 깊은 바닷속의 짙은 코발트 불루에 회색 한방울.

그리고 하얀 달빛같은 그림 물감 또 한 방울.

그리고 그 위에 초록 물감 한 방울이 똑 떨어진 그런 색 이랍니다.

라고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