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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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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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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인형.


BY 마야. 2004-04-30

오랜만에 만나는 크리스군은 밝게 웃으며 타불러의 가방을 받아

차에싣고 타코마 공항으로 차를 달렸다.

타불러는 떠나기전에 통화한 로드먼과의 대화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느라 차창밖으로 고개를 돌린채 말이

없었다.

"고마워 케서린, 아니...타불러 교수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로드먼이 타불러를 사사로운 감정으로 대할 때는 늘 그녀의 이름을 불렀었다.

같이 살았던 이 년의 세월 속에서 그녀가 그의 버릇을 하나 알고 있다면,

그가 개인적 감정을 들어 낼 때에는 늘 그녀를 케서린 이라고 불렀었고,

공적 업무를 말 할 때는, 타불러 라는 성을 불렀었다.

주저주저하던 그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불쑥 뱉았던 첫 이름은 케서린 이었다.

그녀 또한, 그를 마음 속에서 지우려는 애를 쓰면서도

아침에 간단한 가방을 꾸리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평소에 로드먼이 좋아했던 불라우스며 스웨터를 꾸리는

자신을 발견하곤 쓴 웃음을 지은 상태였질 않은가.

 

긴 한숨을 몰아 쉬며 백 밀러를 통해 자신을 주시하며

싱글벙글 거리는 크리스를 향해 살짝 웃어 보이며

타불러는 이렇게 먼저 말을 건넸다.

"고마워 크리스, 별일 없었지? 새해엔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길..."
"녜. 그냥...다시 돌아오셔셔 기뻐요, 교수님.

 이 번 사건은 조금 복잡한것 같지만...

 교수님이라면 뭐...하하하하."

"아참!. 크리스, 그 자료 말이야..."

"다른 자료들, 그러니까...그 헬레나 라는 여성의

 활동과 그 주변에 대한 몇가지 더 알아 두셔야 할

 자료들은 디스크에 입력이 되서, 다른 브리브 케이스에

 이미 준비 해 두었어요. 콜로라도에 도착하시면 다시

 검토하시고, 뭐 더 필요하신것 이으시면, 전화만 해

 주십시요. 항상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고마워!. 헤크먼 교수님은 별 일 없으신거지?"

"아니요. 저어...말씀을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건강이 별로 안 좋으신데...알고 계셨어요?

 교수님께는 말 하지 말라해서 극비였는데..."

" 당뇨가 문젠가?"

" 녜. 지난 번 학기에는 병원에 입원까지 며칠

  하셨던것 모르고 계셨죠?"

" 음."

 

공항에 도착해서 얼마 기다리지 않고,

곧 바로 비행기에 오르면서 타불러는 크리스와

짧은 포옹을 했다. 간밤에 설친 잠이 온 몸에

피로를 몰고 오는지 타불러는 나른함에 목 주변이

뻐근해져옴을 느끼면서, 조용히 의자에 기대고

앉아 창밖을 보고있었다.

구름이 하얗게 뭉글거리다가, 쏠레이크에 거의 다 와 가자

기상이 안 좋은지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쟂빛 뭉게구름속을 날고 있던 비행기는 갑자기 눈보라 속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쏠레이크 시티에 도착해서, 콜로라도 덴버행 비행기로 갈아

타기전에 타불러는 커피 한 잔을 더 마셨다.

다행히 폭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할

것 이라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신문을 살까 망설이던 차에, 탑승 안내방송이 나왔다.

기내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승무원에게 신문 한 부를

부탁하기가 무섭게 가져다 주는 신문을 받아 들고 펴자마자

첫 일면이 온통 헬레나의 그 작은 다락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체물리학자이자, 내셔널 지오그레픽지의

 저널리스트 패러글라이더 변사체로 발견된지 사흘째.]

 라는 표제가 붙어있고, 부제로는 망연자실한 헬레나의 어머니의

 얼굴과 그의 부친의 얼굴이 실려있는 작은 사진으로 눈이 돌려졌다.

[몰건 주유회사의 외동딸 타살, 그녀의 사건은 이대로 방치될 것인가?

 콜로라도 주의 자연주의자들과 그린피스 맴버들은 하나 둘 그녀의

 자택으로 몰려들어 그녀를 추모하는 촛불 행사를 갖고 있다.]

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헬레나의 인지도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타불러는 다시 한 번 그녀가 아기 천사처럼

평화롭게 낮잠을 자듯이 누워있는 신문에 실린

사진을 멀건히 바라보고 있었다.

신문 첫 페이지를 넘기지도 않은채 멍한 기분으로

앉아 있던 타불러는 기내가 심하게

흔들리자 재정신이 돌아 온듯 승무원에게

커피 한 잔을 더 부탁했다.

가능한 한 어떤 생각이나 결론을 내리지 않기 위해서,

타불러는 주관적인 생각을 이미 접은 상태였다.

커피를 마시자, 눈 앞에 선하게 나타나는 로드먼의 얼굴.

그를 유일하게 사랑했었다.

그도 그녀를 유일하게 사랑했던 것을 안다.

그리고는... 그의 곁에 새롭게 있을 다른 여자를 상상해 보았다.

순간,타불러는 자신을 향해 쓴웃음을 다시 한 번 지었다.

 

공항에 내리자, 로드먼이 먼저 알아보고

공기처럼 다가와 타불러의 오른 볼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가방을 받아 주었다.

"아이고~ 이거 얼마만입니까? 교수님!. 하하하하.

 고집을 꺾는데 아주 힘들구먼."

" 잘 지냈어요? 로드먼?"

"흠!. 아무말도 안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말씀은 하시는구먼?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

"어떻게 하시겠어요? 경시청 옆에 경호원이 안전하게 배치된

 호텔에 묵으실 래요, 아니면 저의 누추한 객방에 묵으실래요.

 오래된 호텔이긴 해도...음...당신이 이 사건을 맡은 것은

 극비라서 아직까지는 안전할 테니까, 호텔이 좋겠다. 그렇지?"

갑자기 자신의 집을 운운하기가 무섭게 얼굴이 변한 타불러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이 로드먼은 말을 재빨리 돌리며 그녀의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돌린다.

"호텔이 좋겠어요. 그리고...오늘은 자료를 혼자 검토하고,

 언제가 적당하겠어요? 사건현장검증."

"그녀의 팬클럽 맴버들이 이미, 현장을 온통 뒤덮은 상태야.

 촛불행사에, 뭐 이것저것 정신이 없다구, 그리고 봐 이 눈좀 보라구...

 당신은 눈을 아주 좋아했었지? 하하하하.

 오늘은 눈 감상하고, 저녘을 같이 먹고싶은데 당신이 괜찮다면...험험험."

"녜. 그러죠. 간밤에 잠을 설쳐서...조금 피곤하니까...조금 늦께."

"여덟시 어때? 너무 늦나? 업무 끝내고...내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타불러의 가방을 모두 로드먼의 차에 싣으면서 그가 말을 하고 있었다.

밝은 표정을 지어보이려고 애를 쓰는 로드먼을 보면서,

타불러는 괜한 호기심이 일었다.

옆좌석에 타자, 로드먼이 먼저 몸을 굽혀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

라밴더 향이 배인 그의 샤워코롱 냄새가 예전과 똑같았다.

로드먼의 코트깃이 타불러의 가슴을 스치고, 얼굴을 살짝스치자

타불러는 그에대한 따스함이 온몸에 느껴지는듯 했다.

불연듯, 로드먼이 한숨을 깊게 내리쉬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우리는 왜? 포옹도 안 하는 걸까? 예전의 동료의식이라면..."

순간, 타불러도 그의 품에 와락 안기고 싶었지만,

그냥 어색해서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눈이 대지를 온통 덮으면, 어디가 길인지 알 수 있어?"

라고 타불러는 애써 동문서답을 했다.

"...음. 저녘에 봅시다. 하여간, 이 사건을 맡아 줘서 너무 기뻐."

 

한 동안 둘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 없었다.

타불러는 끝없이 하햫게 덮인 콜로라도 덴버의

넓은 평야로 눈을 돌렸다.

아직도 함박눈이 내리는 은빛 세계에

늘 곁에서 그림자처럼 그녀를 사랑해주고

아껴 주었던 로드먼이 있어서 였을까,

타불러는 사 년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

오는것을 느꼈다.

포근한 어머니의 품에 안기듯,

몸을 깊숙히 의자에 묻으며 몽롱해져 오는 시야를

끝없이 하얀 은빛세계로 돌렸다.

눈은 대지를 덮고, 덮인 대지를 달리는

자동차 안에는 마치, 타불러와 로드먼 둘 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듯한 착각을 그녀에 안겨 주었다.

자동차 해드라이트를 받아 눈들이 하얀빛을 사르며 별빛처럼 반짝였다.

피곤함과 편안함에 타불러는 다시 어설픈 잠이 들었다.

무릎위 코트자락을 여며주는 로드먼의 손길을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