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한낮 이였다.
점심을 챙겨먹고 진우의 오피스텔에 갔다.
3시 까진 올수 있다고 해서......간단하게 먹을 저녁거릴 준비해서 갔다.
일주일에 두번 일하는 아줌마가 온다는 오피스텔은 깨끗했다.
빨래통에 쌓여 있는 빨래도 없다.
전에 얼핏 들은 얘기론 거의 정장을 많이 입는 관계로 속옷은 손으로 직접 빨아 입고 나머지 옷은 세탁소에 맡긴다고 했었던것 같았다.
세탁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고소득 자라 그런가.....?
울 샴푸를 애용하는 나완.....정말 다르네....
사실 나도 여자치고는 페이가 센 편인데.......
하지만 얼마간의 용돈을 제외하곤 모두 독재자 같은 엄마에게 적금이라는 이름으로 착취[?]당하고 있으니.......잘못 쓰면 늘 적자가 나는 용돈이다.
그나마 오빠나 형부....언니에게 가끔 얻어 쓰니까.......그런데로 궁색하다는 생각이 별로 없는 거다.
장식장에 들어가 있는 양주들.....큰병은 없다.
모두 손바닥 ......성인 남자 손바닥 만한 양주다.
와인도 있는것 같고.....외국에 나갈때 마다 한개 두개씩 사다 모은 거라고 했다.
여자들이 향수를 모으는 것과 비슷한 이치니라....
냉장고에서 오렌지를 꺼내 모양 칼로 보기 좋게 깍아 접시에 담았다.
칼라가 없는 베이지 색의 접시들.......접시만 보면 심심하지만 음식을 담으면 정갈하게 보이는 단아함이 있었다.
그리고 음식이 더 먹음직 스럽게.....예쁘게 보이기도 하고......
얼마전에 백화점에 갔다가 내가 구입한거였다.
선물이라고 했는데도 계산은 진우가 했다.
무지막지 하게 인상을 쓰는 데도......결국 선물이 되지 못한것 같아 아직도 가슴 한구석이 찜찜했다.
올려 났던 ......신승훈의 신곡이 나오고 있었다.
국악과 양악을 점목 시킨 곡.....애심가가 애절하게 흘르고 있었다.
막 오렌지의 상큼함을 입안 가득 느껴보고 있는데......찰칵 하는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벌서....?'
분명 3시나 되어서 온다고 했는데......벽에 걸린 원목의 엔티크 시곈 2시를 넘어서지 않고 있는 시간이다.
생각보다 일찍 오네......하는 마음으로 쇼파에서 내려 내가 구입한 너구리 모양의 슬리퍼에 발을 넣었다.
진짜.......
현관으로 다가갈 수록 퍼지는 향.......샤넬인가?
샤넬 넘버 5.....향이 너무 강해.....여름엔 피하고 싶은 코티의 분향......
뭘까...?
진우네는 현관이 두개였다.
들어오는 입구와 거실사이에 사이드 문을 임의로 달아 놓았다.
밖의 소음이 전혀 안들리는......밖과 안의 차단막이 되어주는......
문의 손잡이가 돌아가고 나타난 얼굴.......
세상에.....오화란 이였다.
붉은색 스웨이드 짧은 자켓에 같은색 가죽 미니 치마......망사 스타킹 .....머린 곱슬곱슬하게 부풀려 올 굵은 털실을 덮어쓴것 같았다.
취향이 정말 나완 정 반대 였다.
날보고 놀라기는 그쪽도 마찬가지 지만.......아마 내가 더 놀랐을 거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는 것은......
진우가 건네준 카드키가.......나말고도......이여자도 가지고 있다는.....
심장이 크게 쿵쾅 거렸다.
"너 벌써 집까지 드나드는 거야.....?차림 보아하니......첨은 아닌것 같은데......굉장히 뻔뻔하네....."
날 위아래로 훝으며 새된 목소리를 한껏 키우며 말하는 화란 이였다.
기막혔다.
정말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내 주변의 사람들 얘기론 진우가 오화란을 좀 끔찍하게 생각한다고 들었는데......그게 아니 였나 보다.
"동생 친구라서.......잘라내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니만.......정말인가 보네...."
".........?"
".....봐서 알겠지만.......진우가 키를 준 사람이 너만이 아니라는 거지.......원래 한 여자에게 오래 머무는 남자가 아니거든.......결국은 내게 돌아오지만.....너 많이 튕긴다며?일부러 머리쓰면서 까다롭게 굴게........진우가 흥미는 있어 하더라.......약간이긴 하지만......"
"대체 무슨 소리에요.....?"
"머리 좋잖아.....?지금까지 내 얘기 종합해보면 내가 무슨 소리 하는지 감이 잡혀 올텐데.....?모르겠어?이해가 쉽지않아....?"
놀리듯 빈정거리는.......기분 나쁜 말투......
사람의 감정을 바닥으로 끌어내려 발로 비벼대는 투다.
"더 있을 거야....?진우가 3시쯤 들어올 거라 던데......나 준비좀 해야 하거든.......나가줄래? 이제 그만......."
정말......
기막혔다.
진우가 3시쯤 온다고....?
어떻게 된일이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거야.......?
주먹쥔 손가락의 손톱이 손바닥의 살집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주먹을 쥐고 있었나 보다.
손이 얼얼했다.
머리끝으로 피가 솟았다가 다시 바닥으로 역류하는 느낌.....
더는 있을 수 없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입고 왔던 자켓과 가방을 챙겨 들었다.
어떻게 신발을 발에 꿰었는지 모르겠다.
문을 열고 나서는 내게 팔짱을 낀 자세로 오화란이 앙칼지게 말했다.
"이제 다신 보는 일이 없었으면해.......아주 기분 더러우니까.....정신 차리라고.....한진우는 네 상대가 아니니까.....알아 들어...?"
눈물이 왜 나는건지...?
이건......뭐야....?
거리로 나서서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
가슴속에서 불길이 마구 치솟고 있었다.
다리의 후들거림도......온몸에 몸살기가 도는지.....여기저기 가 갑자기 쑤시고 아파왔다.
정말 이게 뭐야...?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건데.....?
한진우.....이 개자식......
너 ......네가 감히 내게......
너.....가만둘줄 알아....?
너....한진우 .....이 나쁜놈......
악!!!!
도저히 차 안에 앉아 있을수가 없었다.
택시를 세우고 길로 내렸다.
어딘가로 가서 내 안의 화를 풀어야 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였다.
어디가서 미친듯 소릴 치고 싶었다.
악....악.악.아......악!!!!!!
가슴이 펑 하니 터져 버렸으면.......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