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을 몇분 앞둔 시간에 내앞으로 전화가 한통 와 있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온것 같았다.
앞자리의 은혜가 포스트 잇을 내게 건넸다.
'오화란'
생소한 이름......
누굴까?
들어오면 전화를 달라는 메세지도 함께.....밑에 전화 번호가 적혀 있었다.
대체 누구지....?
기억에 없는 이름인데.....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넣었다.
"네....여보세요?"
하이 소프라노 라고 말할수 있는 높은음의 목소리.....
"신지원 인데요....전화 달라는 메세지가 있어서요...."
"....아....신지원 씨......?"
"네..."
묘한 기분.....
"점심 약속 없으면 저랑 해요.......아마 제가 누군지 기억에 없을지도 모르겠지만......난 신지원씨.....확실하게 기억하거든요.....저 여기 근처 거든요.......내려 올 수 있죠?바로 점심시간이니까.....빌딩 지하 페파민트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얼굴 보면 제가 누군지 기억 날꺼예요......아마도 한번은 봐야 할 것 같아서....그럼......만나서 얘기 하죠..."
무례했다.
자기 할 말만 다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상대.....
상대방의 기분이나 대답은 아예 안듣겠다는 식이다.
정말.....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전화기를 내려 놓는 날 보며 김선배가 점심하러 가자고 눈짓 했다.
"난 약속......둘이서 갔다와..."
밝지 않는 내 표정에 은혜가 물었다.
"방금 통화 한거야....?"
메모지를 가리키며 묻고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좀 웃기더라.....?다짜고짜 신지원 있으면 바꾸라고 하던데.......빛쟁이 처럼.....좀 위험한것 아냐...?"
"......나도 몰라....모르는 사람이거든...."
"누군데 그래...?"
김선배가 날 보며 내게 책상에 붙여둔 메모지로 눈을 향했다.
금방 찌뿌려 지는 얼굴.....
김선배가 아는 인물....?
"너 얘랑 지금 만나기로 한거야...?"
"밑에서 기다린다는데.......거절할 시간도 안줬어.......왜 혹시 알아...?"
"아다마다.....대학 동창이야......오화란.....얘 얼마나 싸가진데......근데 얘가 왜 널 만나자는 거야......?널 만날 아무런 이유가 없을텐데......."
"......글쎄......좀 이상하네.....언니가 아니고 날 만나려 왔다니.....이해가 안되네...."
지갑을 꺼내 일어서는 날 보며 김선밴 잠시 생각하는 얼굴이더니 이내 날 보며 뭔가 묻는 듯한 얼굴을 했다.
은혜에게 먼저 한식당으로 가 있으라는 말을 하고 김선배가 날 끌었다.
"너....혹시......한진우 만나는 거 아니지....?"
한진우....?
왜 여기서 진우가 나오는 건지....?
"빨리 말해봐.......한진우 하고 만나는 거야....?그래...?"
순간 난 좀 망설였다.
선배에게 말하면 바로 경진 선배에게 들어갈 테고.....괜히 시끄러워 질 것 같았다.
내 망설임에 혼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김선배가 날 잠시 내려다 보더니 말했다.
"너도 얘 만난적 있을꺼야.....전에 경진이가 불러서 나갔다던 자리에......어떤 여자하고 경진이가 서로 눈에 불키고 싸웠다고 했잖아......그 여자가 오화란이야......기억나지....?"
아마도 내 낯빛이 굳어져 갔을 것이다.
그때 평소 이성적에 가까운 경진 선배를 ......완전하게 무너 뜨린 장본인.......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안하무인 같았던 여자.....
진한 향수와 화장품 냄새......역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여자......순간 머리속이 핑글 돌았다.
"아마도 내 생각엔......네가 한진우와 무슨 연관이 있는것 같다.......오화란이 이렇게 발 벗고 나서는 이윤.....한진우 밖에 없거든...."
선밴 말끝을 흐리면서 내게 약간 섭섭하다는 얼굴을 했다.
돌아서서 가는 선배을 보면서 괜히 미안하다는 맘이 들었다.
조만간......선배에게 만이라도 알려줘야 겠다.
갑자기 쉰 호흡이 나왔다.
페파민트는 지하인데도.....지상처럼 밝다.
허브 화분도 많고......음악도 가요가 아닌 클래씩이다.
레스토랑 이라기 보다 커피숍에 가깝다.
오화란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붉은색의 캐시미어 프릴이 달린 꽉 끼는 스판소재의 상의에.....가슴이 너무 도드라져 보인다.
허리의 날씬함이 많이 강조되는.......보라빛이 도는 붉은색의 치마......치마 중앙이 무릎 부근에서 터져 있어.....꼬고 있는 다리가 훤히 보였다.
담배까지 꼬나 물고 있는 폼이.......마치 강남의 룸 쌀롱의 얼굴 마담 같은 분위기다.
내가 앞으로 다가서자 눈을 치켜 뜨며 날 올려 다본다.
바로 눈을 깔며 앉으라는 얼굴이다.
기분이 착잡했다.
첨 들어올때 와는 달리.....뛰던 가슴이 차게 식는 느낌이다.
"얼굴 보니까....알겠지...?전에 한번 안면이 있을거야.....박경진 고교 후배니까 말 까도 괜찮지......기분 나쁘면 말해 말 올려 줄수 있으니까...."
'차라리 묻지를 말아라...'
쓴 미소가 나왔다.
일전에 봤을때도......생각없이....상대편은 생각않고....말의 폭력을 휘둘러 상대를 상처 주더니.....원래 예의 라는건 모르는 사람 같았다.
대학 내내 경진 선배가 무척 피곤 했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커피와 녹차를 주문했다.
점심 전이기에 녹차가 편할것 같았다.
차가 나오기 까지 마치 상품 품평회 하듯 날 위 아래로 훝더니 새로운 담배를 하나 더 꺼내 입에 물었다.
정말 화장이 짙었다.
눈 섭이 그리 짧은것 같지 않은것 같은데......인조 속눈섭을 붙이고 있었다.
마치 윗 눈섭을 잔뜩 모아 붙인격이다.
눈이 무겁지 않을까....?
차림새도 같이 있기에 주변의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이 쓰였다.
전에 진우와 봤을때는 이정도는 아니였던것 같은데.....
마치....시골 다방에 취직하러온 사람과 면접보러 나온 마담같은 분위기.....우리 테이블이 딱 그랬다.
회사 빌딩이라.......난 사실 신경이 많이 쓰였다.
혹여 라도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요즘 재밌어?"
갑자기 던지는 황당한 말....
"한진우가 만나면 잘해주디?"
뭐 저런사람이......
아마도 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겠지.....
유부남과 놀아나 다가 본부인에게 당하는 꼴이 되었다.
"의외네....?벌써 5개월도 넘고.......그전에 진운 거의 한달을 아니....보름정도 였나...?그정도 였는데.....이번엔 꽤 오래가네....?동생 친구를 건드려서 그런건가....?동생은 끔찍히 위하는 진우니까......"
나에 대한 사전 지식을 알아 온듯.....그렇게 내 심기를 건드리는 말만 하고 있었다.
"만나자고 한 용건이 뭐죠.....?"
"몰라 물어.....?진우하고 언제쯤 끌낼건데....?그게 알고 싶어서....."
기막혀서 정말......
"그건 나와 진우씨 문제고....댁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텐데요....?:"
"상관이 있으니까......만나러 온거야...?것도 몰라..?"
"이해가 안되는 군요.......왜 우리 만남에 댁이 상관이 있어야 하는건지......"
"한진우가 내 남자니까 그렇지......."
".......?"
".......한진운 내 첫남자고 진우에게도 여잔 내가 첨이라구.......널 만나기 훨씬 전부터 우린 그렇게 엮어져 있었던 거라구....?이제 알겠어...?"
눈에 불이라도 붙은 걸까...?
분명 색깔 렌즈는 아닌것 같았는데......눈에서 붉은 빛의 빛이 보이는 건 왜 일까....?
그만큼 화가 많이 났다는 증거겠지.....
좀 충격이 없는건 아니다.....
하지만.....첫 남자라고.....자기 남자라니.....
어불성설.....말도 안되는 얘기....
생긴것 답지 않게......맘은 아주 지고지순한 순정녀[?]인가.....?
알게 모르게 비웃음이 지어지는 건 왜 일까....?
"다인이라면 몰라도.....신지원 넌 안돼지...."
다인이....?
다인이라니......
"전에 호텔에서 만났다면서....한달전에 리베라 호텔.......기억안나...?"
아....그 지적인 미녀.....
그사람 이름이 다인인가..?
그날 진우가 그냥 대학친구라고 소개해서 이름은 몰랐던.....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맘으로 진울 봐 왔는데.......중간에 겁도 없이 얼굴하나 들고 나타난 내게 진울 호락호락 내 놓을것 같아...?어림도 없지...."
더이상 상대하고픈 생각이 없어 졌다.
어차피 상대편 말은 듣지도 않을거고.......혼자 말하고 혼자 결론 내리는 사람.....
들어줄 들러리가 필요한 모양인데......내가 그역을 해주고 싶은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날 향해 입술를 심할 정도로 비트는 화란이였다.
"야 아직 말다 안 끝났어.......어딜 일어나....?"
"점심 시간이 다 되어서요.......전 댁처럼 시간이 널널한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서요...."
"....뭐......?이런.....개 ..."
"그리고 분명히 말씀 드리지요......앞으로는 보고 싶지 않군요.....진우에게 직접 말하세요....괜히 아무런 죄 없는 생사람 잡지 말고......볼일이 있는건 내가 아니라 한진우 일테니까..."
"야.....너 거기 안써.......!!!"
기막혔다.
입안 가득 쓸개라도 물고 있는 기분이였다.
입구쪽을 향하는데 컵이라도 내 던졌는지.......날카로운......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성질한번 죽이는군........
휴게실에 앉아서 잠시 숨을 고르는데 점심을 먹으러 나갔던 김선배와 은혜가 들어왔다.
내게 샌드위치를 내미는 김선배 였다.
"굉장했다며....?아래에서..."
"봤어....?"
"직접은 아니지.......비서실의 광영씨와 민진씨.......카페 여주인하고도 붙었데......재미난 구경 했다고 좋아들 하더라...."
진짜.......구겨진 종이컵 마냥.....그렇게 내 속이 구겨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