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라면 광고를 맡았다.
난 모델 섭외만 하고 카피는 은혜가 총 책임을 맡았다.
머리를 더이상 쓰면 탈모 증세가 나타날 거라며 부장에게 엄살을 떨어 겨우 힘든일에서 모면할 수가 있었다.
신세대 라면......기름에 튀기지 않아 순하고 느끼하지 않다는 라면인데.....
내 입맛엔 영 아니였다.
속이 미식거리는 느낌.....
라면이라면 얼큰한 국물 맛이 최고인데....
이번건 별로다.
새로 뽑힌 남녀 모델은 십대 학생들인데....풋풋한게 이뻤다.
얼짱이라는 곳에서 뽑혀 모델로 등극 했다는데......얼굴은 정말 짱이다.
포토폴리오와 프로필을 보고 우리팀 모두가 만족을 표했다.
일전에 가졌던 광고주와의 미팅에서 차라리 모델을 쓰지 말고 내가 대신 하면 어떻겠냐는 소릴 들었다.
모두 웃음으로 얼버무렸지만......나중에 부장이 혹시 생각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해서 솔직히 좀 놀랐다.
사실 난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내 외모를 보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게 싫다.
예전 부터.....길거릴 지날때면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호기심 어린 시선들.....많이 부담이 되었다.
이쁘다는 얼굴......요즘 이쁜 여자들이 어디 한둘인가....?
유독 내가 눈에 띄진 않을진데.....피곤했다.
이젠........얼굴에 주름도 보이고......맨날 밤샘을 밥먹듯이 해서 눈가도 푸르르딩딩하고.....피부도 탄력을 잃어 가고 있는것 같았다.
엄마가 선 한번 보자며......은근한 압력을 넣었다.
잘 다니는 한의원집 아들이라며.....사람 됨됨이가 됐다며 언제 한번 시간을 내보라고 볼때마다 야단이였다.
아직은 26살 이라는 나와 벌써 26살 이라는 엄마......
생각차가 크다.
언니와 올켄......아직은에 가깝지만.......엄마의 눈 흘김에 둘은 대놓고 내편이 되어 주지 못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저녁에 대학 동아리 친구인 상태와 만나기로 했다.
서경인 끝나고 바로 온다고 했고.......난 일찍 상태가 일하는 곳으로 발걸음 했다.
상탠.....사실 우리보다 3살이나 많다.
복학생 이였으니까.....
말까는 아인 나와 서경이 뿐이라며......건방지다고 했지만.....예뻐서 봐준다고 했다.
대학가 주변에서 재즈 바를 운영하고 있었다.
결혼식 이라는 형식에 억메이고 싶지 않다며 혼인신고만 하고 식은 올리지 않은체 살고 있었다.
것도 나이가 한참 어린 신부랑.
신부의 나인 22살이다.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다.
상탠....29살.....
아이가 생겨 휴학한지가 벌써 꽤 되는데....아직 복학을 시켜주지 않고 있었다.
뭐라고 달리 부를 호칭이 없어.....얼굴 마주 할때면 좀 불편했다.
상태의 안 사람은....
저녁 8시가 조금 안된 시간....
빌 더글라스의 음악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레드비어을 내어주며 상태가 내게 눈인사를 건넸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
까만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카라 꽃.....어울리지 않았다.
담배 연기가.....조명빛에 보였다.
서경이가 오고 상태가 카운터를 누군가 에게 맡기고 우리에게로 왔다.
좀 마른 듯한 느낌......
서경인 왠지 얼굴이 흥분되어 있었다.
상태에게 잠깐 인사을 건네고 날 봤다.
"왜그래...?뭐에 놀란사람 마냥....."
비어의 뚜껑을 따서 건네며 내가 물었다.
"야.....저기...."
"뭐....."
"......나 방금 누구 만났는지 알아....?"
"모르지.....너 지금 방금 들어왔잖아...."
흥을 깨듯 말하는 내 말투에 서경이 눈을 흘겼고 상탠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전에 찜찔방에서 진우 오빠랑 같이 있던 사람......강영훈 인가.....나 그사람 만났어....오늘.."
"강영훈....?"
진우라는 이름에 왜 이리 가슴이 뛰는 건지.....
입안의 침이 모조리 말라버린것 같았다.
"그 사람.....연세 세브란스 병원 내과 레지던튼데....글쎄 아까 우리 약국으로 찾아 온거 있지..."
"너네 약국으로....?왜...?"
"이모하고 잘 아는 사이더라니까.....내가 얼마나 놀랐는지......심장이 튀어 나오는줄 알았다니까........지금도 진정이 안되는거 봐...."
정말 그래보였다.
서경인 많이 놀랐는지......얼굴색이 홍조을 띄는게.....아직 진정이 안되고 있었다.
옆의 상탠 우리 얘기에 잠시 귀 기울이다가 저쪽에서 누군가 불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얘기들 하고 있으라며 자릴 비켜 준거였다.
"이모 하고 ....잘 아는 사이같아......."
"언제 찾아 왔는데.....아직 흥분이야....?"
"방금전.....나 막 퇴근 하려고 하는데......날 보며 그쪽도 많이 놀란얼굴 이더라.....전 처럼 말을 붙이면 어쩌나 했는데......이번엔 아무말 않고 자기 볼일만 보더니 그냥 가더라..."
말하는 폼이......좀 아쉽다는 말 같았다.
자기 타입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더니.....사실이 아니였나 보다.
"넌....진우 오빠에게 연락 왔어....?"
"아니.....연락 올리가 없잖아......."
"하긴.....야 우리 기분도 꿀꿀한데.......나이트나 갈까...?"
"무슨 나이트.....춤도 제대로 추지도 못하면서...."
흘기는 내 시선에 서경인 한숨을 푹푹 내 쉬었다.
우리가 그러고 있는데 상태가 다가왔다.
부인은 애 키우는지.....얼굴이 안보였다.
밤낮이 바뀐 애 탓에 요즘 많이 힘든다고 했다.
너무 어린 엄마 아닌가.....?
내 시선에 상탠 못본척 고갤 돌렸다.
"너네 둘 아직 사귀는 사람 없지....?"
소개팅 얘긴가...?
그래서 불렀던 걸까......?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와서 공짜 술 마시곤 하는데.....가끔은 돈도 내지만 상태가 받으려 하지 않아서......그냥 가는 일이 더 많다.
하긴 우리 둘의 주량이래 봤자 겨우 맥주 3병을 넘지 못하니.....
"여기 오는 사람들 중에 꽤 괜찮은 사람들 많은데......생각 있음 세팅해서 소개할께......"
상태의 얘기에 서경이 관심을 보였다.
아마도 요즘 .....집에서 주는 스트레스가 심한가 보다.
올케 시집살이가......
"주로 대학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긴 하지만......걔중엔 제법 괜찮은 사람도 있으니까.....말 만 해봐.....이 오빠가 알아서 선별해서 소개할께..."
아마도 아까 서경이 나이트 운운하는걸 들었나 보다.
"난 별로....통과....하려면 너나 해..."
관심 없다는 내말에 서경이 인상을 썻다.
"단둘이 만나면 너무 무겁잖아.....편하게 그냥 친구처럼 지낼수가 없잖아..."
'야...니들 나이가 몇인데 아직 친굴 찾아..... 언제쯤 철 들래.....?"
우릴 보고 쯧쯧 거리며 혀을 찼다.
서경인 괜히 날 보고....인상을 구기고.....
나른하게 흐르는 음악 탓에 머리가 아팠다.
아마도 오늘은 ......일찍 일어나야 겠다.
서경이가 한번 소개팅 해보자고 계속 꼬드겨서 토요일날 저녁에 시간을 잡았다.
상탠 은근히 기뻐하는 얼굴이다.
뭐가 재미 있다고.....저리도 좋아하는 얼굴인지...
밖으러 나와 차를 빼오겠다는 서경일 기다리고 있었다.
가방에서 울리는 힘찬 카르멘의 핸폰 소리....
"네.....신지원 입니다..."
"어디야...?나 한진운데....."
헉....!
하마터면 핸폰을 떨어 뜨릴 뻔 했다.
한진우 라니.......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신지원.....듣고 있는거 아냐...?"
".....아....네....."
왠 동요....?
"내일 좀 볼까....?몇시쯤 퇴근해...?"
"......7시쯤....요....?"
"훗......그럼 8시쯤.....강남역으로 나와......혹시 알아.....?알카포네 라고....호프집인데..."
"아니요......잘 모르는 데요......"
".....그럼 그 주변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아마 쉽게 가르쳐 줄꺼니까.....아 ...그리고 나올때.....한서경도 함께 나와.....서경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하고 같이 나갈꺼니까..."
"........?"
".....설마.....바람 맞히는 건 아니지.....?"
"......네.....나갈께요...."
"꼭 서경이와 같이 나와.....그럼 내일 봐......"
"네....안녕히 잘 들어가세요...."
"ㅋㅋㅋ..."
빵빵 거리던 서경이 창문을 내리고 날 불렀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나.....
좀 얼빠진 얼굴로 서경일 봤다.
대로변이라 일단 차에 올랐다.
"왜그래.....얼 빠진 사람 모야....."
"야.....방금 전화 왔어......"
"무슨 전화....?"
"한진우......내일 강남역 에서 보자는데.....?"
"뭐....?정말.....?"
갑자기 급정거 하면서 서경이 차가 섰다.
요란한 소릴 내면서.....
차를 간신히 갓길에 잠깐 세우고 서경이 날봤다.
"정말 전화 온거야...?"
"응.....너도 같이 나오라는데......"
"나도 같이.....? 왜.....?"
"널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며......꼭 같이 나오래......"
내말에 서경이....혼란스러워 하는 얼굴을 했다.
나도 그렇고......
정말....많이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