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의 그녀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화요일의 그녀라는 건 충격이다.
늘 그렇게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든 그녀가 직접 우리 바에서 일을 하려고 왔다는게 신기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형이 그 애를 채용했다는 게 더 의외였다.
그토록 형을 괴롭히던 그 아이를 하필.
"웅주형, 정말 저 여자애가 우리 가게 새로운 알바에요?"
"와? 싫나?"
아무리 생각해도 일을 잘 할 것 같지 않았다.
거의 노란색에 가깝에 염색한 머리, 긴 손톱에 짙은 매니큐어. 눈에는 속눈썹까지 길게 붙여져 있었다.
게다가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연상할 만큼 배꼽을 드러낸 골반바지에 배꼽티까지.
"그게 아니라 저희 가게 분위기랑은 좀 … 아닌가요, 형?"
"자슥은, 분위기 좋잖아? 우리 가게 셔츠랑 앞치마 입으니까 괘안타아이가? 그래서 젊은게 좋은기라, 자식아. 잘 좀 가르쳐봐라."
"제가요?"
"그럼 이 형이 가르칠까? 니 군대 갔다온 놈이 와그라는데? 밑으로 쫄다구 생기면 고맙지 무어 말이 많노?"
형은 그러면서 내 엉덩이를 한 대 때렸다.
"잘해봐라,"
뭘 잘하라는 것인지…
콕.콕. 내 어깨를 그녀가 찌른다.
"저기요, 뭐부터 해야 되요?"
머리를 하나로 묶어 올리면서 물어보는 그 애를 보고 있자니 한 숨이 나왔다.
난 컴퓨터 앞으로 가서 우리 가게 고객관리 화면을 띄워 보여주었다.
손님이 오면 오더 받은것을 컴에 저장하고 단골손님들의 기념일이나 주로 마시는 메뉴들을 관리하고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데 허락도 없이 그녀가 컴의 매니져 메뉴버튼을 누른다.
"어? 지금 뭐하는 거에요?"
"비밀번호 쳐봐요. "
"그건 왜요?"
"여기 안보여요? 이 프로그램 어디서 났어요. 누가 만들었는지 좀 감각이 떨어지는 거 아니에요? 손님이 오면 일일이 그 사람 인적 사항 보고 생일서비스 하면 조금만 바쁘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잖아요. 어서 비번 쳐요. "
난 메니져 관리화면으로 들어갔다.
"자 봐요. 이렇게 날짜 관리랑 손님 생일이랑 링크를 걸고, 특정일을 지정해놓고 그 때마다 알림 하면 그날 만약 그 손님이 오면 자동으로 알림이 되니까 손님한테 무료칵테일 서비스 하기가 더 좋잖아요. 어디 보자… 자동으로 생일날 이메일하는 건 내가 내일 프로그램 짜올개요. 어머머머, 손님한테 이메일도 일일이 날짜찾아가며 올렸나봐? 그냥 단체메일로 보내면 될걸. 이거 어디서 가져왔냐니까요?"
인상을 구기며 앉아있는 날 보면서 새 알바는 쿡쿡 웃었다.
생긴것과는 틀리게 컴을 잘 만졌다.
근데 말투가 신경에 거슬렸다.
손님으로 왔을 때는 나름대로 귀엽다고 까지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영 짜증이 났다.
형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애를 뽑은거야.
기본 안주 준비하는 것, 글라스 닦는 법, 냅킨 개는 것 하나하나 설명해줬지만 사실 다 쓸데없는 일이었다. 이미 어디서 배우고 온 건지 새 알바는 나보다도 더 잘했다.
잘하면 그냥 알아서 하면 될 것 이 귀찮은 계집애는 날 졸졸 따라다녔다.
"다 잘하는 데 왜 따라다녀요? 일해요."
"무슨 일 할까요?"
"알아서 해요."
"그 쪽은 뭐할건데요?"
"남이사."
궁시렁 거리며 난 술 창고로 들어갔다.
요즘은 와인들의 판매가 점차 늘고 있어서 와인의 사입량이 늘어났다.
형으로 부터 온도에 민감한 술이라는 잔소리를 따갑게 들은 나는 항상 저장고의 온도, 습도, 등에 신경써오고 있었다.
저장고에는 그 것 말고도 맥주나 다른 술들도 있었고 정리할 박스들도 많아서 하루라도 소홀히 하면 금방 티가 났다.
"술을 여기다 보관하나 봐요?"
"네."
"아저씨, 언제 부터 여기서 일했어요?"
"꽤 오래 전부터요."
신기한 듯 창고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그녀를 힐끗 바라봤다. 손님으로 밤늦게 왔을떄보다는 어려보였다. 학생일까? 왜 여기서 일을 하려는 거지? 궁굼증이 일었지만 관심을 끊기로 맘먹었다.
"아저씨? 나 여기 손님이었던 거 알죠?"
"네."
"근데 주인아저씨도 그렇고 아저씨도 그렇고 왜 여기서 내가 일하는지 안물어봐요?"
"말하고 싶음 그냥 말해요."
와인병을 들고 닦고 있던 내 앞으로 그녀가 순식간에 폴짝 다가섰다.
창고에는 둘밖에 없었고 당돌하게도 무방비였던 나의 코앞으로 그 애가 내 눈을 뚫어지라 쳐닫보며 서있다.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애는 내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아저씨, 사실 나 아저씨 때문에 여기서 일하는 거에요. 놀랐죠?"
어안이 벙벙하게 서있는 날 뒤로하고는 그 애는 웃으며 저장소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간다.
뭐야? 도대체?
아무 관심을 갖지 않기로 하고도 이상하게 내 가슴은 두근두근 소리를 내며 뛰고 있었다. 스치듯이 지나간 그 애의 냄새가 나를 꽁꽁 묶어놓고 있는 것처럼 난 같은 와인병을 이미 5번도 넘게 닦고있었다.
한 참 만에 나간 홀에는 이미 많은 손님이 자리하고 있었고 언제 갈아입었는지 우리 가게 셔츠랑 앞치마를 입고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있는 그 애가 있었다.
그 애는 웃고 있었고 익숙한 솜씨로 주문을 받고 있었다.
화요일 밤마다 마지막 손님으로 와서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주문만 하던 무표정한 애였는데…
인이, 진이 쌍둥이 누나들의 말처럼 난 화요일의 마지막 손님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건 아닐까?
생각해보니 그 때는 머리도 노란머리가 아니라 짙은 갈색이었던 거 같고 늘 정장을 입고 왔던거 같았다.
저 애가 그 손님이었는지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곳에서 일하겠다고 형을 구어 삶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한다.
난 아직 여자에게 나를 쏟아부을 마음이 안 되있었다.
아직 내 인생의 진로도 결정못했는데 누군가 날 흔들어 놓는 건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