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영빈 회장실
웅주가 무슨 일을 정했을지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김회장의 맞은 편에 웅주가 앉아서 말머리를 찾고있다.
"지군, 말 하기가 어려운가? 조바심 나니 이제 그만 말해보게나."
"김회장님, 지 맘을 정했심니다. 다소 놀라시더라도 지 말을 끝까지 들어주이소."
김회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 그간 몇달간 회장님께서 제게 주신 이 소중한 기회를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봤심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지도 닥치는 대로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인데요, 지 바텐더 함 해보고 싶습니더."
"자네? 뭐가 하고 싶다고 그랬나?"
"바텐더 말입니다. 조주사요. 지 말 좀 들어주이소. 회장님도 그러지 않으셨읍니꺼? 요즘 세상 사람들은 너무 자신만 앞세우고 들을 줄 모른다고 예. 지 책 보면서 많이 생각해 봤는데 이 세상의 직업중에 남의 얘기 잘들어주는 직업이 상담뭐 이런 긴데예, 사실 솔직하고 진솔한 대화는 한 잔의 술과 좋은 친구한테 털어놓는다 아입니꺼?심리학 책에도 나와있데얘.
친구들은 또래 집단이므로 경쟁관계이기 쉬어 성인이 될 수록속 깊은 얘기털어놓기가 어렵다고요. 지 남의 말 잘 들어 줄수 있습니더.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과 편안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직업인거 같심더.
물론 자격증도 딸거고예, 카운셀링 공부도 하고 싶습니데이.
학교 다닐 때 너무 놀아가가 정규 대학을 가긴 어려울 거 같고예.
상담 전문 학교에서 배우면 좋을 거 같습니다.
지가 아직은 무식해 가가 조리있게 말을 잘 못해도 회장님 제게 기회를 주이소.
지 할수있습니다."
"바텐더라… 사실 이제사 얘기지만 나도 술 좋아한다네.
내가 처음 맛 본 칵테일은 키르네. 독일인이었지만 유난히 와인을 좋아하는 미스터 부터바우가 나에게 만들어주었던 술이지.2차 세계대전에 관한 기억때문인지 나이든 독일사람들은 프랑스 와인을 드러내놓고 좋아하지는 않았다네. 하지만 그분이 만들어주던 그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해. 배운 데로 해보긴 했네만 그 맛을 따라 하기가 쉽지가 않더라구.
자네가 바텐더가 되면 맛있는 칵테일은 공짜로 먹을 수 있겠구먼. 그리고 키르도 말이야.
하지만 단순히 술만을 판다는 것은 반대라네. 지군 말대로 바텐더가 되어서 순기능 적인 공간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네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칵테일 선호도가 그리 높지 않은 걸로 아는데 말이야."
- 키르 (kir)
백포도주 120ml,
크림 드 카시스 22ml
와인글라스에 직접넣기 (build)방식으로 재료를 넣고 가볍게 섞는다.
"지도 많이 생각해 봤는데예.앞으로는 지금처럼 죽어라 마시는 분위기는 점차 줄어들 거 같심니다. 대신 건강하고 쾌적한 매니아 층을 형성하는 그런 음주문화가 정착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얘. 그럼 반드시 칵테일 매 니아층도 생길거고 그러면 제가 좋아하는 일을 잘할수 있는 떄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미스터 부터바우께서 그러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가?
어떤 일이던 열심히 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고말입니다.
회장님이 절 믿어만 주신다면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자신이 있심더. "
"그렇다면,"
김회장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자네를 위해 해줄일은 뭔가?"
웅주의 목젖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좀 무리한 부탁일 수 도 있느데마, 지 주저없이 여쭙겠습니다. 지금 그 건물 말입니다. 그거 지 주이소. 정확히 말하자면 지 한테 시간을 좀 주이소. 거저 달라는 거 아입니다.
지금 건물이 완공되면 분양하실거 아입니꺼? 그럼 나중에 지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지 개인이 그 건물을 소유하기가 어려울것 같심더. 지가 건물을 살 돈을 만들 때까지만 회장님이 아무한테도 팔지마시고 나중에 지한테 파이소.부탁드립니데이."
웅주는 김회장 앞에 무릎을 꿇었다.
태어난서 처음 해보는 일 중에 하나였다.
여지껏 사나이로서의 자존심인지 개존심인지 거칠 것 없이 살아온 그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웅주에겐 그 웃는 것 같은 남의 말을 잘 들어줄것같은 느낌을 주는 커다란 원형창문이 그가 소유하고 싶은 전부였다.
김영빈회장은 이번엔 웃지 않았다.
그는 순간적으로 깊은 상념에 빠지는 듯 했다.
웅주도 그리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을거라고 는 생각지 않았다.
"그 건물이 자네가 원하는 건가? 왜인지 물어도 되겠나?"
"지 말이 모자라가가 표현은 못하겠는데 지가 꼭 거기서 일을 하지않으면 미칠것 같심니더.
지 노동일 하지만서도 일 잘합니데이. 아직까지 다른 데 돈써본 적도 없고, 그 건물을 갖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돈 모을 수 있을 깁니다. 지한테 몇년만 시간을 주이소.
회장님 어차피 저 한 사람을 보고 믿어주신다면 한 번 만, 딱 한 번만 확실히 밀어주시면 안되시겠습니꺼? 부탁드립니다."
김회장은 잠시 말을 하지않았다.
"유난히 그 건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구만, 내주변에는 말이야. 지군. 꼭 그것이여햐 하는가? 다른 걸 밀어줄수도 있는데 말이야. 그 건물을 가지려면 부딪히는 일이 많을 거야. "
"그래도 가질 수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부딪힐만한 가치가 있을김니더. 들어주시는 겁니꺼?"
김회장은 웅주의 눈을 한 참동안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눈을 들여다보면 미래가 보이는 듯이 말이다.
웅주형은 그 날 김회장이 그랬을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한참이나 바라다보았다.
"회장님이 말씀하신데로 오늘 이 건물이 여기 있기까지, 그라고 내가 이 건물 지킴이가 될때까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과정을 일일이 얘기할려면 끝도 없는기라, 하지만도 내 한 번 묻자. 니가 보기에 내가 정말 좋은 바텐더 같이 보이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형은 말이데이. 그 뭐라카노? 니가 들으면 웃을 지는 몰라도 장인정신은 아니더라도 쟁이정신은 있다고 자부한다. 최선을 다했고, 정말 열심히 내가 갈 길을 갔데이.
그라고 보니 부터바우선생님 말씀처럼, 또 김회장님 말씀처럼 나도 이 일에서 전문가가 됬다아이가? 니도 알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컨설팅해준 칵테일바, 와인바 가 벌써 몇 개고?
게다가 장사도 잘되는 가게가 됬다아이가? 전문가가 되고 보니 세상이 틀려지는 기라.
그랄려면 마음을 모두 비우고 새로 시작할 때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니 병근이 내가 왜 널 만날 첫날 여기로 널 데려온줄 아나?
그 날 새벽에 포장마차에 앉아있는 전역군인인 니가 내 눈에는 말이다.
정말 막막한 눈빛밖엔 없었는기라. 더 이상 잃은 것이 없는 사람의 표정말이다.
그런 눈빛을 하기엔 닌 너무 어리고 또 똑똑해 보였는기라.
너라면 앞으로 무슨 일이던지 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 같았눈기라.
니 한 번 이 형 믿고 해보지 않을래? 나도 내가 받은 은혜를 베풀때가 된거 같단 이 말이다. 니 해볼기고?"
"형…"
"자슥은..내가 이 얘길 와 니한테 하는지 이제 알겠쟈? 병근아. 형말좀 들어봐라."
그 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문을 두두리는 소리가 들렸다.
건물의 잠금장치를 가지고 있는 건 형과 나 그리고 써니 누나 뿐이었다.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