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특유의 눈가주름을 실룩거리며 바텐으로 갔다.
영업이 끝난후 고즈넉한 바에서의 형과의 대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늘 나를 설레게 했다.
"병근아? 퀴즈하나 내까?"
"얼마던지요."
"니 칵테일의 제왕이 무슨 칵테일인지 아나?"
"하,하,하, 웅주형, 저를 물로 보시는 군요. 마.티.니 아니에요?"
"자스~윽, 잘도 아네. 니 내가 만든 마티니 한 번 마셔볼래?"
비록 파자마차림이었지만 바에 들어선 웅주형의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누구나 제자리에 있을때에만 빛이 난다지만 형에겐 바텐더의 자리가 최적의 자리인듯 싶었다.
형은 그 탄탄한 팔로 쿨러에 넣어둔 마티니글라스를 꺼내고 곧 마티니와 베르뭇을 저어 글라스에 따랐다. 그리곤 마지막 장식으로 올리브를 넣어서 나에게 권했다.
- 마티니(Martini)
진......... 3/4,
드라이베르뭇....... 1/4
두가지 재료를 스터어(잘저어서) 차게해둔 글라스에 채운후 올리브로 장식한다.
"마티니는 말이다, 무지하게 매력있는 칵테일이다. 진의 향기가 올라오면서 혀 전체로 전해오는 그 느낌한번 느껴봐라, 남성적이기도 하고 마지막엔 안타까운 입맟춤처럼 여운을 남기는 것 같기도 하고... 마티니를 식전에 마시는 경우도 많은거 니 알제? 내 얘기가 그런기라, 마티니처럼 오묘하고 내 옛날 야그를 시작하려면 꼭 마티니 한 잔을 마셔야 할것 같았다..하긴 뭐 사다논 소주도 없고... 웃지마라!"
형은 다시 의자에 앉아서 마티니를 한 손에 들고는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를 긁적였다.
"한 번 애기 해보자.음... 이 건물은 내가 노가다로 처음 지은 건물이다. 뭐 처음 시작할땐 일도 몰랐고 뭔가 해야했기에 시작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하면 정말 행운이었던기라. 남들은 노가다 일이 힘들다카지만 뭐 난 좋더라. 몸은 힘들었지만 그렇게 맘이 편할 수 없었어. 니 머리속의 생각을 완전히 비우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나? 근데 땅을 파고 모래를 나르고 빈약한 사다리를 벽돌을 지고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27살 먹도록 날 괴롭혀온 여러 감정이나 생각들이 땀방울 사이로 솔솔 나가는거 같은 기라. 그거이 기분 째지데. 그래서 난 늘 하루 일이 끝나는게 아쉽더라."
"아, 형 근데요, 막노동판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이 건물 사장이 됬어요? 빨리요."
"자식은 참을성 없게시리.... 암튼 일하니까 너무 좋은 거야. 하루 일당 생기지, 마음편하지, 하루는 이건물 건축기사가 완성된 건물의 예상도를 가지고 왔거든? 실제 공사야 뼈대만 올라가있는데 내가 그 날 그 그림보고 이 건물에 반해버렸다 아이가?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바 않있나? 너 우리 가게 어대가 젤로 멋있노?"
"창문이요, 난 항상 그걸 보면 마음이 시원해지는걸요."
"그래? 니도 그렇나? 내가 처음 그림을 봤을대 난 깜짝 놀랐다. 다른 경력있는 아제들이 그랐거든.ㅁ자가 창문 작업하기는 좋다꼬... 근데 그 그림은 작은 창문도 아니고 그래 큰 원형창문을 그것도 여섯개나 만들거라니, 그게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는게 너무 멋진기라."
진짜 그랬다. 형의 건물은 외관도 멋있었지만 실내의 기본 구조들이 너무도 아름답고 조화로웠다.
애초에 누가 어떤 의도로 이 건물을 디자인했고 설계했는지는 몰라도 그 사람은 분명히 멋진작품을 남긴것이 확실햇다.
놀랍게도 커다란 원형창문을 여섯개나 갖고있는 이 건물은 각종 건축잡지나 인테리어 잡지에도 여러번 실릴만큼 독특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전면과 후면에 거의 천정까지 닿을 만한 큰 원형창문이 각 하나씩 있고 그 창문을 통해 내다보는 서울시내는 예사 뿌연하늘과 빽빽한 건물틈을 교모히도 피해 나무숲과 한옥의 기와들만이 운치있게 내다보였다.
웅주형은 얘기 도중에 얼음을 채운 글라스에 생수를 가득담고 라임을 스퀴즈한 후에 나에게도 한 잔 내밀었다.
마티니는 이미 바닥이 나 있었다.
"어디까지했노?"
"창문"
"그래 그 사진 본 후로 일과가 끝난뒤도 난 남아서 조금씩 일을 더했다. 돈이 나오는 것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이 빌딩이 좋아져서리 한개라도 내 손길이 조금더 닿았으면 싶었던기라. 근데 어느날 밤엔데 열심히 화장실 타일을 붙이고 있는데 누군가 나타난기라?"
"형? 혹시 괴기스러운 얘기 아니에요?"
"니 tv좀 그만봐라. 누가 밤에 나타나면 다 괴신이가? 그게 아니고 이 건물 주인이 나타나기라, 그것도 사위하고."
"누가누구하고요?"
"근까..이 건물 주인이 장인이고 건축가 사위가 이 건물을 디자인한기라.그 날 밤에 현지확인겸 하루일과가 끝날시간쯤 들려본거라 하더라. 그러니까 그게 내 인생의 두번째기회였던기라."
"잠깐, 형 느닷없이 왠 두번째? 그럼 첫번째는요?"
"니 와그러노? 이 중요한 시점에서 자꾸 샅바걸기 시도할래? 야그의포인트를 들어라, 포인트를! 확 그만 두까?"
"에이, 형 어차피 얘기해줄거면서..헤헤"
형이 날 한대 쥐어박고는 우리는 형의 27살의 어느날 밤으로 돌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