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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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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BY 이마주 2003-12-13

하지만 웅주형은 소주를 마셨다.

술에 관한 얘기를 줄줄꿰차고 있음에도 그는 술은 소주가 좋다며 마시곤 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그는 자기전과 일어나서 항상 책을 읽었다.
형은 다독주의자였다.
신간, 구간, 베스터셀러, 잡지 할것없이 닥치는 대로 책 못읽어 한맺힌 사람인양 읽어대곤했다.

형의 집의 전부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만큼 많은 책들은 그의 지나온 시간을 말해주는 듯했다. 거기엔 정말 최근에 볼수도없는 오래된 고서들이나 심지어 학교의 교과서까지도 섞여있기도 했다.

나이 마흔에 도서관같은 집에 살면서 바의 주인이기도 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형, 예전엔 뭐했어요?"

"옛날 언제?"

"술장사하기전"

"병근이 니 말잘했다. 지웅주의 인생은 BB와 AB로 나누어 지거든."

"그게 뭔데요?"
"B.B.는 곧 Before Bartender A.B.는 After Bartender.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년전까지 BB시대이고, 지금까지가 AB시대인기라. 막말로 그 BB시댄 내가 봐도 비리비리 했다아이가? 내 그 떄 뭐했을꺼 같노?"

"음, 그땐 30대 초반이니까 직장인?"

"니 Professional house worker라고 들어봤나?"


"아뇨."

"음, 한국말로 풀어서 얘기하자면 전문집짓는 사람, 더 쉬운 말로 노가다 아이가?"

"에이, 형 거짓말말구요."

"내 말안하믄 안했제 거짓부렁은 안하는 사나인기라. 보자,음....내가 공사장 따라다닌게 5년이다. 니는 몇살에 철들었는지는 몰라도 내 철든게 27살때거든?

이상한게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까 가슴이 마 꽈`악 막히는게 이상하더니만 고마 눈물이 콸콸 쏟아지는데 이부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는기라.

그때까지 나 정말 개 망나니로 안살았나? 그 전날도 술이 떡이 되게 마셔가가 울어무이 한테 등떼기 숱해 얻어맞고 잠들었다가 아침에 눈을 뜨니 죽겠는기라.

이상하재? 아무생각없이 띵가띵가 그 나이 먹도록 내 손으로 돈 한 번 벌어본적 없던 놈이 술쳐묵고 갑자기 인생이 후회스럼고 억울하고 미안코 부모님께 죄송하고..마 그 기분 니는 모를기다. "

형의 말에 난 그저 듣고만 있을수 밖에 없었다.

난 내가 일찍 철이 들었다고 믿고있었지만 아직도 아버지와의 거리를 유지하고있는 철없는 애송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때부터 할일을 찾으니 누라 내 같은 놈 써주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운동을 좋아해서 열심히 했다아이가. 그떄당시는 몸은 엄청 좋았대이. 그래서 인력시장가서 일자리 안구했나. 그때부터 노가다 인생이 시작됬다아이가."

 

처음엔 괜히 형이 웃기는 소리로 하는줄 알았다. 형의 BB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그의 눈을 본 후에야 난 그 말이 사실이었음을 알게되었다.

 

"와? 안믿어지나? 사실 나도 그렇다. 근데 재미있는거 뭔줄 아나? 나 일자리가 없어가가 막노동판에 뛰어드니까 동네 사람들이 그러더라. 저 집 아덜 망나니짓하더만은 노가다 한다꼬... 우리 부모님이 좀 유명하신 분이거든."

"뭐하시는데요?"

"두 분다 시인아이가? 니도 들어봤제? 사랑, 그 이유는 우리 라고 왜 베스트셀러아니었나? 예전에.."

"네..에"

"동네사람들 얄궃드라. 저집부부는 지들만 고상떨고 살더니만은 아 교육은 엉망이라꼬..근데 이 인간 지웅주가 막노동에 가서 인생의 바닥만 두드리고 살줄 알았는 사람들이 코가 납작해졌는기라. 내가 노가다 생활한지 딱 오년만이다. 니 이 건물 디자인 멋지다 했지? 맞다. 이 건물 진짜 멋진 건물이다. 니 우예 내가 이 건물 주인인지 아나?"

"형은..당연히 모르지요. 근데 정말 오년만에 이건물산거에요? 와."

"모르는게 당연해, 내 말한적이 없으니까.아 근데 이거 이렇게 한꺼번에 BB시대를 말하면 안되는데... 니 지루하재? 고마 자자."

 

형은 또 나를 안달라게 만들었다.

궁굼한걸 못참는 나로서는 그럴때마다 갖은 애교아닌 애교를 다 떨어서 그의 얘기를 듣곤했다.

형은 마치 남이 모르는 특별한 이야기 보따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술술술 많은 이야기를 잘도 풀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