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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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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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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아이


BY 이마주 2003-11-27

밤새 코를 골며 잤는지 따가운 햇살에 잠이 깰 즈음 코주변이 얼얼하게 느껴졌다.

숙취로 갈증이 났다.
주방에서 그가 뭔가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잘잤습니꺼? 갈증나지요? 고때가 술꾼들 악마의 시간 아닙니까? 아주 조갈이 나서 죽십니다. 자 이거 마시이소. 영화 칵테일 봤지예? 레드아이라고 그 영화에서도 오늘 같은 아침에 이거 안마십니꺼? 싸구려술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런데로 괘안타아닙니꺼?"

 

-RED EYE

 맥주 1/2 oz 같은 양의 토마토쥬스  
 영화에서는 물론, 실제로도 바텐더나 그 날의 상태에 따라 맥주나 쥬스의 양을 달리할 수 있으며 가볍게 저어서 마시면 된다.
  
레드아이는 시원했다.

단숨에 들이키는 나에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맥주 더 넣는 것인데 조금만 넣었습니다. 냄새안나지요? 좀 있으면 식사 올라올깁니다. 해장국 괘안습니까?"

"네. 번번히 ..감사합니다. 근데 일찍 일어나시네요. 그리고 책도 많이 읽으시나봐요?"

"뭐 모르겠습니다. 많이 읽는지는.그저 일하지않고 술 안마실때는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일고, 가끔 영화도 보면서 틈틈히 운동도 하고...그래 단순유식하게삽니다."

껄껄 웃는 그의 얼굴에 많은 주름이 생겼다.

몇살쯤일까?
어제밤에는 자세히 보지못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였다.
그는 생각보다 키가 컸고 운동으로 발달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봇봐줄 정도도 아닌 평범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저보다 나이 많으신거 같은데 말 놓으시죠."

"글라? 그래, 노께."

한 번의 거절도 없이 그는 말을 놓았다. '툭'하고 말놓는 소리가 들릴것만 같이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가볍게 머리 한쪽을 살짝 맞은 느낌이었다.

"집은 어데고? 서울이가?"

"네."

"니 제대한거 식구들은 아나?"

"네."

식구들이 알고있다는 말에 그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니 몇살이고?"

"스물둘이요."

"캬~ 끝내주는 나이 아이가? 니 복받았데이."

"형은, 아, 형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자식은. 그런걸 뭘 말로하나. 니 아저씨라 부르면 죽여뻐린데이. 농담이다."

말을 놓은 순간부터 우리의 대화는 놓쳐버린 실타래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형이나 나나 지독히도 외로웠던 모양이다.

"형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와? 궁굼하나? 니 한번에 맞추면 내 십만원 준다."

"못맞추면요?"

"니 돈 있나?"

"아뇨."

"그럼 못맞추면 청소 좀 해라. 난 지저분한 걸 아주 싫어하는 체질이거든."

"그정도쯤이야.  음. 아마 38살?"

그는 정말 아까운 표정으로 식탁을 잡고 흔들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어색한 서울 말씨로 말했다.

"병근이라고 했지? 어쩜 그리 착하니? 여기 십만원. 자."

그는 식탁위에 돈을 내려놓았다.

마음속에 생각한 나이는 40이었는데 그래도 줄여서 얘기한게 맞았나?

"어? 정말 제가 맞췄어요?"

"아니, 나 올해 생일되면 마흔아이가?"

"그럼 틀린거네요? 돈은 도로 넣으세요."

"마, 가지라면 가져. 기분이 좋잖아~ 어리게 봐주니까."

포장마차에서의 무게와 점잔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웅주형은 날 웃겼다.

그는 그 건물의 주인이었고 3층의 바를 직접운영했다.

형의 집은 무게를 지탱하는 몇 개의 기둥과 내력벽을 빼면 문부터 끝가지 거칠것이 없이 한 공간이었다.

특이하다고 해야하나? 멋지다고 해야하나..혼자만의 공상으로 들어가야할 즈음 웅주형의 목소리가 날 현실로 오게했다.

"니 집에 안가나? 식구들이 다 니 기다리다 기린된거 아이가?"

가긴 가야했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만들어진 어색한 가정이지만, 아버지나 동생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더우기 난 담임선생님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엄마로서가 아니어서 유감스럽지만.

"병근아, 니 앞으로 뭐할기고?"

"아직은...찾아봐야죠."

"니 학교다니나?"

"휴학하고 군대갔어요."

"전공은 모고?"

"컴퓨터공학이요."

"니 컴 도사겠네?"

"에이, 아니에요. 공부시작하자마자 얼마안되서 군대간걸요? 그냥 게임 남보다 더 잘하는 정도에요. 별로 컴 좋아하지도 않고."

"그래? 뭐 그건 그렇고 .. 니 말이다. 만약에 일자리나 뭐 필요한거 있슴 나한테 온나. 내가 도움이 되는거 있스믄 내 해준다. 뭐 이유는 없다. 그저 그렇게 살아야 하는게 내 할 일이다. 그렇게 사는게 젤로 날 행복하게 하고..알았제?"

난 웅주형네를 떠나 아버지의 집으로 갔다.

예상대로 그 어색한 가정에서 아버지는 행복해보였다. 다행이었다, 마치 단기휴가를 받은 군인처럼 나는 1박 2일을 지내고 웅주형네로 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살기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