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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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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46


BY 제인 2003-11-27

미연은 고수에게 점심으로 죽을 끓여 주었다.

고수는 따뜻한 죽을 한그릇 먹고 나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영준이었다.

- "미연씨 오늘 뭐해요? 장미데리고 놀러가고 싶은데... 어때요?"

미연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집에서 쉬고 싶어요."

영준은 미연의 목소리에 힘이 없자 물었다.

- "어디 아파요?"

"예...집에 있을래요."

- "그래요. 그럼 쉬어요."

미연은 영준이 전화까지 하여 장미를 챙기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영준씨가 왜 자꾸 장미한테 신경을 쓰는 걸까? 핏줄이 땡긴다더니 정말 그런 거 아닐까?'

전화를 끊고 미연은 자고있는 고수옆에 앉아 고수를 지켜보았다.

'고수 혼자서 살다가 이렇게 아프면 어떻게 하지? 불쌍한 고수...'

고수의 자는 모습이 천사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미연은 어젯밤 병원에서 지내느라 피곤하여 졸음이 몰려왔다.

고수의 옆에서 꾸벅 졸다가 잠을 이기지 못하고 고수곁에 장미의 베게를 베고 누워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밖에서 쿵쿵거리며 사람 목소리가 났다.

"문열어요!"하는 소리였다.

미연은 그 소리에 일어나 정신을 가다듬고 현관으로 나갔다.

"누구세요?"

"문 좀 열어보소!"

미연은 현관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았다.

밖에 웬 중년의 시골여자하고 촌스럽게 생긴 젊은 남자가 서있었다.

나이 든 여자가 "여기 고수 있소?"하고 물었다.

"고수를 찾아 오셨어요?"

그 여자는 화가 난 목소리로 "여기 있소?"하고 다시 물었다.

"네. 그런데, 누구세요?"

"누구냐고? 나 고수 애미요. 우리 애 어딨소?"하면서 고수의 어머니는 집안으로 들이밀고 들어와 다짜고자 방문을 열어본다.

고수가 이불 속에서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고수가 누워있는 옆에는 빈베게가 하나 더 놓여있는데 머리자국이 선명했다.

고수의 엄마는 눈이 뒤집혔다.

"고수야! 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일어나, 이놈아, 얼른 일어나!"

미연은 그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하였다.

'고수가 어머니가 있었어? 이게 어떻게 된거야?'

고수는 자다말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엄마! 여기 어떻게 왔어?"

미연은 고수가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더 깜짝 놀랐다.

고수의 엄마는 고수의 가슴을 막 때리면서 욕을 하였다.

"이놈아, 미친놈아! 이게 무슨 짓이야, 얼른 일어나!"

그러더니 일어서서 미연에게로 다가와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나이살이나 먹어서 이게 무슨 짓이요? 조카같은 애를 데리고 뭐하는 거냐고?"

고수의 엄마는 목소리가 하도 커서 집밖까지 다 들렸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영준이었다.

영준은 미연이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는 바로 미연에게로 달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미연의 집 현관은 열려있고 안에서는 시끄러운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하고 슬그머니 들어와 안을 들여다 보았다.

어떤 시골 여자가 미연에게 소리치며 욕을 하는 것이보였고 그 옆에는 젊은 남자가 서있고, 그리고 전에 본 그 청년이 비틀거리며 미연의 방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우리집 귀한 장손을 데려다가 이게 무슨 짓이야! 아이구 세상에, 우리 귀한 아들을..."

"엄마, 그게 아니라..."하며 방에서 나오는 고수는 엄마가 미연에게 몰아붙이는 것을 말리려한다.

고수엄마는 미연에게 마구 소리치더니 고수가 마루로 나오자 손을 잡아 끌고 문간으로 와 "비키소!"하고 영준을 밀치고 나갔다.

눈길이 고수 뒷모습을 쫓아가던 미연은 영준이 와있는 것을 보고 놀라 멈칫한다.

고수는 아직도 잠이 덜깨어 기운없이 끌려갔다.

"엄마, 이러지 마. 아야, 아퍼, 엄마 이 손좀 놔."

동생까지 뒤에서 형의 다른 한 쪽 팔을 잡고 등을 밀며 집밖으로 나갔다.

한바탕 소란이 끝났다.

미연은 놀라서 손으로 입을 막고 서있다.

영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미연에게 다가왔다.

"이게 무슨 일이예요?"

미연은 기운이 빠져 식탁의자로 돌아가 털석 주저앉았다.

"미연씨, 아까 그 남자랑... 동거했어요?"

"........"

"대답을 해봐요!"하고 영준이 소리쳤다.

영준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기가 본 지금의 장면은 영락없이 그런 것이었다.

미연이 젊은 남자와 동거를 했고 그 엄마가 나타나 아들을 데려간 그런 장면이었다.

미연은 표정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낯이 뜨거워 영준을 쳐다볼수가 없었다.

영준은 씩씩거리며 미연을 노려보다가 가버렸다.

미연은 서글퍼졌다.

'영준씨에게 이런 꼴을 보이다니....'

그리고 고수가 멀쩡히 부모가 있으면서 자기를 속이고 고아라고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난 왜 이리 어리석을까. 그렇게 깜빡 속다니...'

하지만 고수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자기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그랬을거라 생각하니 고수를 원망할 수가 없었다.

미연은 손을 펴서 손에 낀 반지를 한없이 바라본다.

 

다음날도 장미는 피아노를 배우러 가려고 아침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미연은 방에 쭈그리고 앉아 딴생각만 하고 있다.

회사에 가려고 하니 영준에게 그런 추한 모습을 보인 것이 창피해서 미칠것만 같았다.

"엄마, 안가? 오늘 회사 안가?"

"......."

"엄마...나...피아노 배우러 안가?"

"장미야, 이제 그 아저씨한테 배우지 말자. 엄마가 레슨 보내줄께."

"아이, 왜? 엄마는 돈 없잖아. 우리 가난한데..."

"걱정하지마. 너 피아노 레슨 꼭 보내줄께."

"그 아저씨가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다. 그럼 맨날 공짜로 배울수 있는데..."

장미의 그 말에 미연은 가슴이 덜컹하였다.

'아빠였으면 좋겠다구...? 영준씨도 그렇게 장미를 챙기더니, 장미와 영준씨가 서로 끌리고 있는 거 아닐까? 아...안돼. 장미가 그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돼. 안되겠다. 내가 그사람 앞에 나타나질 말아야지.... 내가 어리석었어. 영준씨하고 함께 일을 하다니...'

미연은 마음을 다잡고 회사로 나갔다.

노크를 하고 영준의 방으로 들어갔다.

영준은 미연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본체만체 한다.

미연은 아무말 없이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어 영준에게 내밀었다.

"뭐예요?"

"저번에 명민이한테서 받은 건데...돌려드리고 싶어요."

영준은 봉투안을 들여다본다.

전에 명민을 통해 전했던 천만원짜리 수표였다.

영준은 미연을 올려다본다.

미연은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전..."

"그만두겠다는 건가요?"

"네."

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미연에게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화난 얼굴로 미연의 왼손을 잡아 치켜든다.

미연은 깜짝 놀라서 겁먹은 눈으로 영준을 쳐다본다.

"이 반지, 그 친구가 끼워준 건가요?"

".......?"

"그가...그렇게 좋던가요?"

"......."

"그 친구가 미연씨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미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영준은 표정을 바꾸며 묻는다.

"그럼 뭔가요? 어제 있었던 일이 뭐였는지 얘기해봐요."

"그, 그건...."

미연은 입술이 떨렸다.

하지만 곧 목소리에 힘을 주고 영준에게 되물었다.

"그게 당신한테 왜 중요한데요? 내가 누구랑 사귀든 당신이 왜 상관하는건데요?"

"왜냐구요? 왜인지 몰라서 묻는 건가요?"

미연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내가, 왜 당신을 여기 나오라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미연은 영준은 똑바로 쳐다본다.

"내가..."

영준은 점점 숨소리가 거칠어져 갔다.

"........"

"....내가... 당신을... 아직도 사랑하는 걸 모르겠냐구요?"

미연은 그 소리에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영준은 다가서며 계속 물었다.

"당신...나를 잊은 건가요? 정말 나에 대한 마음, 다 사라지고 없는 거예요? 하나도?"

"........"

"말해봐요, 나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아요?"

미연은 얼어붙은 듯 영준을 바라보았다.

"한 순간이라도... 나를... 사랑하기는 했었어요?"하며 영준이 울먹이는듯 물었다.

미연은 무엇인가가 가슴을 깊이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영준은 서글픈 목소리로 "내 마음 아픈 거... 알아요?"하고 묻는다.

순간 눈물이 미연의 뺨을 타고 주루룩 흘렀다.

그때 누군가가 밖에서 노크를 하였다.

후배가 빼꼼히 문을 열고 들여다보며 "형, 선아왔어요. 다들 회의하려고 모였는데요."한다.

미연은 입술을 깨물고 뒤돌아서 영준의 사무실에서 나가버렸다.

 

영준은 미연때문에 마음이 산란하여 회의를 하면서도 집중을 하기가 힘들었다.

선아는 지난번 아버지에 의해서 임의적으로 계약취소를 하게 된 것이 무효라며 다시 영준의 회사에 소속되기를 희망했다.

회사 운영진들은 모두 선아를 반겼다.

인기가수는 곧  큰 자산이었기때문이었다.

영준은 선아가 돌아오려는 이유가 자기때문이라는 걸 알기때문에 탐탁치가 않았지만 혼자서 반대한다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선아는 다시 바람기획 소속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준은 그녀와 다시는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지도, 같이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