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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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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39


BY 제인 2003-11-20

영준은 미연을 집에 데려다 주고나서 미래클럽으로 향했다.

낮에 명민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명민은 무엇인지 중요한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클럽안으로 들어가니 명민이 먼저 와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왔구나. 덥지? 너도 한잔 할래?"

"아니, 난 괜찮아. 무슨 일인데?"

명민은 맥주를 컵에 가득부어 꿀꺽거리며 마셨다.

바닥이 보일때까지 마시더니 한숨을 돌리고는 말을 이었다.

"안 좋은 소식이다."

"뭔데?"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회사가 있어. 주식회사 YS라는 곳인데...우리나라 굴지의 제강회사지. 그 회장 이름이 유학선이라고 해."

"유학선이라고??"

"아는 사람이니?"

"얼마 전에 알게 되었어."

"무슨 일이 있었구나, 그 사람하고."

"그 사람 딸하고 사귀게 되었지. 유선아라는... H대학을 다니는 학생인데 가수가 되겠다고 나를 찾아왔었어. 그애 첫음반을 내주고 나서 그애에게 청혼을 했었어. 그런데 그 집안과 우리 어머니와 어떤 원한이 있었나봐. 양가부모가 만난 날 바로 파혼하고 말았어."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그 사람이 어쨌길래?"

"그 사람이 너의 회사를 인수하려는 거 같아."

"뭐라고?"

"음반사를 하나 물색하고 있다며 인수건을 우리한테 의뢰했어. 그런데 보니까 네 회사더라구. 음반사라면 우리나라에 600개도 넘는데 왜 하필 너희 회사인지...게다가 그런 제강회사에서 말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역시 그랬구나."

유학선의 비서는 회장의 지시를 받고는 회사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명민의 법률회사에 바람기획에 관한 재무조사와 인수절차를 의뢰했던 것이다.

"어머니와 원한이 있다고 나한테까지 그럴수가..."

"어떤 원한이 있었던 거니?"

"그건 나도 자세히 몰라. 하지만 우리 어머니...너도 알잖아. 대강 짐작은 가. 헌데, 어떤 식으로 인수를 한다는 거야?"

"....공정한 방법은 아닐거야."

"그렇다면?"

"아마...내 짐작인데...감사가 나갈 것 같다."

"어떻게 해서? 그 회사가 뭔데 우리 회사를 감사한단 말야?"

"그 유학선이라는 사람, 정재계에 인맥이 든든한 사람이지. 그런 자들이 회사를 공정한 방법으로 인수할리가 없어. 국세청같은데 힘을 썼을 거다."

"감사가 나온다해도 어떻게 되는 건 아니잖아."

회사 경영을 깨끗하게 해온 영준으로서는 겁날 것이 없었다.

"그렇지가 않아. 감사 자체로도 얼마든지 투자자들 날려버릴 수 있고...또 그것만은 아닐거다. 원한관계였다면 어떻게서는 너를 걸고 넘어져서 회사를 빼앗아 갈거야. 어쩌면 그 이상의 일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영준은 안색이 변하였다.

"너...그런 사실 알고도 이 일을 추진하고 있는 거니? 이건 옳은 일이 아니잖아. 단지 원한때문에 그렇게 남의 공들인 회사를 빼앗아가다니...이 일을 막을 수는 없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한다든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야?"

"영준아. 내 얘기 잘 들어. 나는 변호사야. 변호사는 고객의 정보를 어디서도 발설해서는 안된다는 거, 너도 그런 것 정도는 알고 있지않니? 내가 오늘 너를 만나서 이런 얘기하는 거....변호사 자격증 박탈되는 그런 일이야. 하지만, 네가 친구이기 때문에 너한테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래. 미안하다. 나 살자고 너를 죽게 할 수는 없지. 이야기 해줘서 고맙다."

"네 심정 이해해. 너한테 그 회사가 네 인생이나 다름없다는 거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빠져나갈 방법 없겠니?"

명민은 고개를 젓는다.

"영준아,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있어."

영준은 기분이 참담해졌다.

얼마전 유선아가 계약취소를 한 뒤 휘청거렸던 회사를 일으켜보려고 무리를 해서라도 장미래와의 기획을 잡았고,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는 판인데, 이제보니 그런 것이 다 소용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명민은 명민 나름대로 역시 기분이 참담했다.

가장 친한 친구의 회사를 다른 회사에 넘어가게 만들어야하는 마당이었다.

그것도 친구와 원한관계에 있다는 사람에게.

명민은 오로지 입신양명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법대에 입학한 후, 곧바로 집에서 나와 학교 뒤 고시원에 들어가 수년간을 고시에 매달렸었다.

몇번의 낙방을 거쳤지만 결국 좋은 성적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연수원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적을 받아 국내에서는 가장 크다는 법률회사에 스카웃되어 가슴 뿌듯한 변호사로서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자랑스러운 직업에는 명민이 생각하지 못했던 그 어떤 것이 있었다.

명민은 상법을 전공하였고 기업합병이 전문이었다.

고시를 꿈꾸던 때부터 머리속에 그려왔던 기업합병전문변호사라는 것은 너무나도 멋있는 직업이었다.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그 주인공들의 직업이기도 하였고 영화에서 그려진 그들의 능력이란 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자기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명민은 지금 몸담고 있는 그 법률회사에 처음부터 가고 싶었었다.

그들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을때 그것이 바로 인생의 성공을 몸으로 느꼈던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명민이 입사 후 해온 일들은 기업합병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갖다 대기가 민망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욕심많은 거대기업들이 먹고 살겠다고 바둥거리는 조그만 회사를 상대로 횡포를 저지르는 그런 일에 법적 근거를 대주는 일이 바로 자신의 주 업무였던 것이다.

인생을 걸고 키워온 분신같은 회사를 빼앗긴 중소기업 사장들은 절망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하였다.

그런 험한 꼴을 보아온 명민은 자신의 직책에 대한 회의가 점점 깊어져가고 있었다.

명민은 차라리 판, 검사 쪽으로 진로를 정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하였다.

명민의 고지식한 성격에는 그 편이 훨씬 잘 맞았을 것을 애당초 자기 자신이 잘 알지를 못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풀이 죽은 얼굴로 말없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영준이 입을 열었다.

"명민아. 만약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응, 그래, 얘기해봐."

"우리 어머니하고....그리고....미연씨 좀 돌봐줘."

"너 미연이 만나니?"

"사실은 우리 회사에 다니게 했어. 옆에 두고 싶어서."

"미연이랑... 결혼하고 싶어서 그래?"

"응. 미연씨만 좋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

"미연이는 어떤 거 같니?"

"글쎄....잘 모르겠어. 시간을 두고 지내면서 서로 자연스러워지면 그때 청혼을 할 생각이었는데..."

"미연이 너의 회사까지 다니는 걸 보면 네가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 청혼해봐."

"....이번 기획 끝나면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그런데...지금 이런 일이 생겨서...."

"그렇구나..."

 

명민을 만난 후 영준은 기운이 빠질대로 빠져 일을 하는데 무척 힘이 겨웠다.

어쩌면 이번 음반이 바람기획의 마지막 음반이 될지도 모른다.

이번 주 안이면 녹음이 끝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과연 장미래와의 음반이 시장으로 나갈 수나 있을런지...

그런 처참한 기분에도 불구하고 영준은 마지막 남은 작업에 몰두하였다.

 

고수는 미연에게 청혼을 한 후 학기말 시험으로 한 주일이 바빴다.

시험이 끝난 날 병문이 저녁때 집으로 찾아왔다.

"고수야, 너 이번 여름방학 때 집에 내려가냐?"

"아니."

"그럼 그 선물가게에서 계속 일할 거야?"

"아니, 그만두려고."

"그래? 잘 됐다."

"왜?"

"다른 일 할 거 많냐? 취직공부랄까...그런거."

"쳇, 디자이너가 무슨 취직공불해? 포트폴리오 만들어야지."

"그거 말고는 없지?"

"글쎄...? 디자인회사에 일자리 있나 찾아보려고 하는데, 왜?"

"이번 여름방학때 우리 가게 나와서 일좀 할래?"

"자동차 정비하라고?"

"우리 가게 차린지 얼마 안되잖아. 그래서 잘 몰랐는데 다른 정비소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여름방학때 무지 바쁘다고. 사람들이 바캉스 떠나느라 가기전에 정비 맡기고 갔다와서 맡기고 한다던데. 하지만 여름방학동안에만 일할 사람을 구할 수가 있어야 말이지, 통. 그러니까 네가 좀 도와줘. 응?"

"아이 싫어. 손에 기름때 묻히면서 일하기 싫다구."

"그러지 말고 좀 도와줘. 내가 많이 줄께."

"얼마나?"

"백만원 줄께."

"겨우?"

"한달에 백만원이 겨우라니?"

"야, 나같은 사람 쓰면서 백만원 주겠다면 내가 일을 하나? 응? 미쳤냐? 손에다 시커멓게 기름 묻혀야하건만..."

"그럼 얼마?"

"이백은 줘야지."

"뭐야? 쳇, 안벌고 말지, 야, 너 월급 다주고 나면 난 뭐 남냐?"

"아쭈? 한달에 2백이 뭐가 다야? 솔직히 2백이면 이틀매상밖에 더 되냐?"

"....백오십하자. 백오십이면 너, 다른 애들 두배는 받는 거야."

"백오십...? 그럼 이달 중순부터 8월말까지 두달 반하면 4백?"

"그래."

"그렇담 좋아. 그렇게 하지 뭐."

고수는 병문에게 튕기는듯 굴었지만 속으로는 신이 났다.

그러지 않아도 돈을 벌려던 참이었던 것이다.

미연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고 싶어서였다.

작은 선물가게 아르바이트로는 값비싼 반지를 살 수 없을 거 같아서 그 일을 그만두고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 하고 있었다.

병문은 두달 반에 4백만원을 주기로 한 것이 좀 과했다 싶었는지 거기에 토를 단다.

"일요일도 나오면 안될까?"

"일요일? 일요일도 일하는 직장이 어딨냐? 이거 완전 착취하려 드네?"

"아이, 일이 밀리면 나올수도 있지 뭘."

"일요일은 무조건 안돼."

"왜? 교회도 안가는 놈이 일요일날 뭐하길래?"

"누나 만나야해."

"그 아줌마? 그 아줌마 아직도 만나?"

"당연하지."

"그 여자 참 이상하네...고아라고 했는데도 여지껏 좋아하는 거냐? 아니면 뽀롱났냐?"

"그게 뭐가 중요해? 고아던 말던 좋으면 좋은 거지."

"그 아줌마 맘씨는 고운가보네?"

"당연하지."

"쳇, 맘씨 고운 아줌마가 새파란 젊은 놈하고...?"

고수가 째려보자 병문은 입을 다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