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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같이 살집에 대한 이자부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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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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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31


BY 제인 2003-11-13

"미연씨 이혼했다며?"

"너...그 얘기 들었구나. 그래, 그랬어."

"언제 이혼했니?"

"2년쯤 되었을거야."

"왜 나한테 얘기 안했니?"

"영준아...너..."

"왜 이혼했는데?"

"글쎄..."

"너 그 진희라는 친구하고 친했었잖아. 왜 이혼했는지 몰라?"

"사실은...."

명민은 한숨을 깊게 쉬더니 말을 잇는다.

"아마...진희가 알았었나봐, 너희 둘 일."

"뭐?"

"너, 그때 기억나지? 회사 차리고 나랑 다른 애들하고 너희 회사 직원들하고 함께 개업축하파티한다고..."

"그래."

"그때 진희가 나타나서 행패부렸었잖아."

"........"

"그게 너희 둘 일 때문이었던 거 같아.....그랬을거야."

"어떻게? 네가 얘기했니?"

"아냐, 내가 그럴리가 있냐? 나중에 그놈하고 만나서 얘기를 좀 해봤었어. 미연이를 많이 의심하더라고. 확신은 못하고 그냥 의심만 하는 거 같았어. 그래서 모르긴해도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했던 거 같아. 그자식, 우유부단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결국 그렇게 이혼하더라. 그런데 친구지만 그 놈 너무하더군. 위자료도 한푼 안주고 유학가버렸어. 미연이가 애하고 고생이 많을텐데..."

영준은 두눈을 감아버린다.

명민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영준에게 묻는다.

"너... 미연이...요새 본 적 있니?"

감았던 눈을 뜨며 영준이 대답한다.

"응."

"어떻든?"

"H대 앞의 조그만 선물가게에서 일하고 있더군. 자기 가게는 아닌 것 같던데..."

영준은 전에 선아와 데이트를 하며 그 가게 앞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정류장 앞 횡단보도에 불이 들어와 차를 세우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차안에서 선아가 이렇게 말했다.

"아...저거, 오빠, 저거 보여?"

"뭔데?"

"고무고무 쿠션. 나 저거 갖고 싶어. 너무 예뻐."

"다음에 사줄께."

"그런데 저 선물가게 있잖아, 우리과 교수님거야."

"교수님이?"

"응. 이창숙 화백이라고 유명한 여류화간데..."

"아....알아."

영준은 자신의 누나도 여류화가였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영준은 그때 선아와 그런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나중에 선아를 만나러가면서 그 쿠션을 사려고 선물가게에 들렀던 것이었다.

이창숙 화백의 가게라고 한다면 미연은 거기서 그냥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 거기 어딘지 알려줘. 한번 들여다봐야겠다. 친군데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던 거 같아."

명민은 영준의 마음을 헤아리고는 미연을 도울 수 있는 한 자기가 도와주겠다는 뜻을 영준에게 보여준다.

영준은 끄덕이며 또 한숨을 내쉰다.

 

미연과 진희가 결혼식을 올리던 날, 영준은 추운 날 거리를 헤메며 술이 취해 밤늦게 집으로 들어가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었다.

그 후 일주일 이상을 고열이 시달리며 앓았다.

결혼식장에 온다던 영준이 나타나지도 않고 연락도 없자 명민은 궁금해 영준에게 전화를 했다.

영준이 많이 아프다는 소식이었다.

명민은 영준의 집으로 문병을 갔다.

침대에 누워있던 영준은 명민을 보더니 설움이 복받쳐 엉엉 울고 말았다.

명민이 놀라서 왜그러냐고 묻자 영준은 울면서 "미연을 사랑했었다"는 고백을 하고 말았다.

두 사람이 깊이 사랑하게 되어버린 내력을 들었으나 명민은 친구들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주었다.

 

그런데 미연이 낳은 아이가 돌이 되었을 때였다.

진희와 미연은 돌잔치에 여러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대부분이 같은 과 출신의 친구들이었고 몇명은 다른 과였던 친구들이었다.

그 중에는 명민도 끼어있었다.

커다란 돌상을 둘러싸고 앉아 떠들고 웃으면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공주님은 어디간거야? 왜 주인공은 안나타나냐?"

"우리 장미 자고 있어."

"주인공 얼굴도 못보고 가는 거 아니겠지?"

친구들이 돌을 맞은 아기의 얼굴이 보고 싶다고 투정을 하는데 마침 방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앗, 우리 공주마마 일어나셨나보다."하고 진희는 신이 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울음을 그친 후라 눈물 콧물에 얼굴이 발그레 한 아기를 진희가 안고 나타났다.

친구들은 "와하하!"하고 웃으며 박수를 쳤다.

"어디, 이리 좀 와봐라."

"이야, 벌써 걷는구나!"

"아이, 정말 예쁘다"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터져나왔다.

그런데 엉뚱한 소리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애기가 영준이 닮지 않았냐?"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칼날이 미연의 엄지손가락을 파고 들었다.

미연은 그때 주방에서 디저트로 내올 과일을 깎고 있어서 멀리서 오고가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아야!'

미연의 엄지손가락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미연은 손을 휴지로 감싸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편 돌상에 장미를 안고 앉아있던 진희는 친구가 하는 소리에 안색이 변했다.

옆에 있던 명민은 "무슨 소리냐? 헛소리 하지마!"하고 얼버무리려했지만, 명민 자신이 미연과 영준의 일을 알고 있었던 터라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당황해하고 말았다.

진희는 명민의 그런 태도에 의심이 생겼다.

잔치가 끝나고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진희는 웃옷을 걸쳐입고 밖으로 친구들을 따라나갔다.

친구들이 흩어질때 집에 가려는 명민을 불러 물었다.

"너, 영준이라는 애랑 친구지? 혹시 그 자식하고 미연이랑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냐?"

명민은 펄쩍 뛰며 부인을 하였다.

진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친구들을 전송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미연은 손가락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아까 붙였던 것에는 피가 많이 베어나와 새로 갈고 있었다.

"왜 그래? 손베었어? 조심하지 않고..."

"여보, 나 설겆이 하는 동안 장미 좀 봐."

진희는 마루에 앉아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고 노는 장미에게로 갔다.

미연이 그릇들을 치우고 있는 동안 진희는 장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미연도 아니고 자기도 아니고 누굴 닮았냐고 평소에 그렇게 말해왔었던 장미의 얼굴.

'박영준의 얼굴이었나?'하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다음날 진희는 퇴근 길에 음반가게에 들렀다.

"박영준 CD 있나요?"

"네, 잠깐만요. 여기있습니다."

점원은 박영준의 CD를 꺼내주었다.

"얼굴이 없잖아요."

"네?"

"얼굴 있는 건 없나요?"

"뜯어보면 그 안에 사진이 들어있을 거예요."

진희는 CD를 뜯어 안에 들어있는 작은 책자를 꺼내 속을 들추었다.

맨 뒷장에 영준의 사진이 있었다.

진희는 사진이 있는 부분을 뜯어 주머니에 넣고 책자의 나머지와 CD는 케이스째로 쓰레기통에 쳐넣어버렸다.

점원들은 "어머...뭐 저런 사람이 다있어?"하고 뒤에서 수근댔다.

진희는 집으로 돌아와 장미의 얼굴에 영준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았다.

'닮았어...닮았어....'

결혼할 무렵의 일을 떠올렸다.

'미연은 그때 아이를 낳지 말자고 했지. 그리고 결혼식날 그렇게도 울었다...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결혼 후에도 조금도 행복한 모습이 아니었어. 어떨 땐 멍하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고...어떤 날은 들어와 보면 울어서 눈이 부어있는 적도 있었다. 왜 그랬을까...왜...?'

진희는 그 후로 미연을 가까이 하기가 싫었다.

회사 일을 핑계로 늦게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함께 외출을 하는 적도, 함께 나란히 앉아 즐거운 대화를 하거나 놀이를 하는 적도 없었다.

장미에게도 그랬다.

안아주지도, 놀아주지도 않았다.

자다가 가위에 눌리기도 하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적도 많았다.

직장생활은 점점 무료해져갔다.

원래가 원치 않았던 직장생활이었다.

미연과 결혼을 하면서 생활을 위해 할 수 없이 선택했던 길이었다.

점점 직장생활도 짜증이 나고 엉망이 되어갔다.

 

그러던 중 어느날 친구들로부터 박영준에 대한 소식이 흘러들어왔다.

박영준이 음반회사를 차려 개업파티를 한다는 것이었다.

진희는 그 날 회사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가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술이 한창 취했을 때였다.

진희는 벌떡 일어나 파티가 있다는 술집으로 찾아갔다.

그리고는 다짜고자 영준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둘렀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 진희를 뜯어말렸다.

영준은 '혹시...'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 일은 자신과 미연, 그리고 명민밖에는 모르는 일이었다.

미연과 명민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으리라 믿었다.

미연이 혹시라도 불행해질까봐 가슴을 졸였던 것이다.

진희는 심중으로 의심을 했을 뿐이지, 미연이 확실히 영준과 어떤 관계였다는 증거를 얻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미연에게 따져봐야는 겠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그냥 피하고만 싶었다.

자기를 두고 미연이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미연에 대한 감정이 앙금처럼 쌓일대로 쌓여있던 어느날, 미연의 이혼 얘기를 화근삼아 결국은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그렇게해서 그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불행하게 끝나고 말았다.

진희는 미연과 어린 딸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고 유학을 떠났다.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않은 채.